주간동아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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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졸업한 청년, ‘유기농 쑥 재배’로 인생 2막 열다

선무영 찐촌바이브 대표 “세계인이 사랑하는 쑥차, 쑥향수 만들겠다”

  • 괴산=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5-10-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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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괴산에서 쑥, 복숭아 등을 키우는 청년 농부 선무영 씨. 이상윤 

    충북 괴산에서 쑥, 복숭아 등을 키우는 청년 농부 선무영 씨. 이상윤 

    충북 괴산군 문광면 광덕3리. ‘청년 농부’ 선무영 씨(35)가 사는 곳이다. 옥수수와 고추가 유명한 이 마을의 주민은 모두 45명이다. 그중 65세 미만은 선 씨 포함 2명에 불과하다. 선 씨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이 동네로 2022년 이사 왔다. ‘농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찾아온 청년을 동네 어르신들은 친절하게 맞이했다. 하지만 선 씨의 농사 방식에는 마뜩잖은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얼마 전 옥수수를 수확하는데 일손이 모자라 이웃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농약 한 번 안 쳐서 크기가 작고 벌레까지 먹은 옥수수를 보시더니 ‘너 이렇게 농사지을 거면 당장 그만둬라’ 하시더군요.”

    선 씨가 싱긋 웃으며 전한 일화다. 다행인 건 그렇게 꾸중 들어가며 거둔 옥수수가 불티나게 팔렸다는 점이다. 한 구매자는 선 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가 늘 그리워하던 옛날 옥수수 맛을 되살려줘 고맙다. 내년에도 꼭 다시 팔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농사지으며 찾은 희망

    선 씨가 농약 없이 키운 복숭아도 시장 반응이 괜찮았다. 그는 올해 처음으로 복숭아 농사에 도전했다. 여름 내내 잡초 무성한 과수원에서 땀을 뻘뻘 흘렸다. 동네 어르신들은 오가며 그를 볼 때마다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느냐. 다른 과일은 몰라도 복숭아는 무농약 재배가 안 된다”고 혀를 찼다. 하지만 선 씨는 농업에 뛰어들면서 품은 다짐, 즉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땅에서 작물을 길러내겠다’는 뜻을 꺾지 않으려 버텼다.

    “다행히 기대보다 결실이 좋아 내년을 기약할 수 있게 됐어요. 사실 올해 농사로 수익을 많이 올린 건 아니거든요. 쑥·고추·마늘 등등 작물 13종을 키워 번 돈이 4000만 원 수준이에요. 그래도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을 많이 얻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고요.”



    선무영 씨가 농장에서 쑥을 채취하고 있다. 이상윤

    선무영 씨가 농장에서 쑥을 채취하고 있다. 이상윤

    선 씨는 이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씩 웃었다. 특히 그가 기대를 걸고 있는 작물은 쑥이다. 많은 한국인이 봄이면 쑥을 뜯어 쑥떡, 쑥국, 쑥차를 만들어 먹은 추억을 갖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는 이런 낭만을 앗아갔다. 이제는 환경오염에서 자유로운, 건강하고 맛있는 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선 씨는 이 지점에 주목했다. 

    ‘찐촌바이브’라고 이름 붙인 그의 농장에는 쑥 재배에 최적화된 비닐하우스가 있다. 선 씨는 여기서 키운 쑥을 고추밭과 복숭아 과수원 곳곳에도 옮겨 심어 가꾼다. 향긋한 쑥으로 만든 차는 농산물 박람회 등에서 늘 인기 만점이다.

    그는 내친 김에 식용으로 쓰기엔 다소 억센 가을 쑥을 활용해 향수도 개발했다. 쑥 증류수와 아로마 오일 등을 섞어 만든 이 제품 이름은 ‘향수라기엔 쑥스럽지만’이다. 선 씨는 “최근 한국 문화와 음식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이 많아진 만큼 쑥 제품 판로가 세계 각국으로 확대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쑥을 달여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우리 쑥을 알리고자 쑥차 티백 제조 준비도 마쳤다고 한다. 선 씨는 “내년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한 쑥 제품을 본격 생산할 것”이라며 브랜드 ‘게으른 밭’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쑥을 비롯해 그가 판매하는 모든 농산물에 첨부되는 설명서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게으른 밭 이야기-밭은 게을러도 괜찮습니다. 아니, 밭은 게을러야 합니다. 본디 자연은, 땅은, 흙은 사람과는 다른 시간에 삽니다. 흙에게 성실하라, 부지런하라 성내지 않겠습니다. 충분히 시간을 가져라. 게을러도 괜찮다. 오롯이 너의 시간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담담하지만 힘 있는 글을 읽다가 어쩌면 이것은 선 씨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농부가 되기 전 세상의 시간을 따라잡지 못해 뒤처졌던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꿈꾸다 농부로 방향 전환

    선 씨는 로스쿨 출신 농부다. 명문대 졸업 후 서울 한 로스쿨에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머잖아 변호사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토할 만큼 공부해도 원하는 성적을 얻기 어려웠다. 변호사시험에 연거푸 두 번 떨어진 뒤 선 씨는 시험공부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2021년 일이다. 생애 처음 맞닥뜨린 좌절 앞에서 그가 한 일은 자신의 꿈에 대한 성찰이었다. “나는 왜 변호사가 되려한 걸까”를 수없이 질문한 끝에 그는 ‘자유’라는 답을 얻었다. 

    “일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삶,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 꿈에 변호사 자격이 도움이 되리라 본 거였죠. 이걸 깨닫고 나니 ‘그래 변호사가 되지 않아도 그런 삶을 살면 되잖아’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대안으로 ‘농부의 길’을 택한 데는 일본 언론인 곤도 고타로가 쓴 책 ‘최소한의 밥벌이’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서 곤도는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쓰되 굶어 죽지 않는 삶’을 목표로 시골행을 택한다. 하루 한 시간씩만 농사지어도 혼자 먹을 쌀 정도는 수확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곤도의 계산이었다. 선 씨도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농촌진흥청이 발간한 보고서를 보니 고추 생산에 투여되는 노동시간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다 따져도 연간 150시간 수준이었다. 

    “다른 작물의 경우 필요 노동시간이 이보다 더 짧더군요. 지금 제가 옥수수와 복숭아, 쑥부터 고추, 감자, 양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물을 한꺼번에 키울 수 있는 것도 그런 덕분이에요. 농촌에서는 하루 종일 밭에 매달려 있지 않아도 충분히 삶을 꾸릴 수 있습니다. ” 

    결심을 굳힌 그는 농협중앙회 농협창업농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청년농부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땅 일구고, 트랙터 운전하고, 비닐하우스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강사들은 영농 기획, 판로 개척, 마케팅 방법도 전수해줬다. 

    “농촌은 청년에게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라고 말하는 선무영 씨. 이상윤

    “농촌은 청년에게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라고 말하는 선무영 씨. 이상윤

    “저는 청년이 거의 살지 않는 농촌이 역설적으로 청년에게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도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어요. 만 40세 미만인 사람이 농업에 뛰어들면 3년간 총액 3600만 원까지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어요. 최대 5억 원까지 연리 1.5%에 5년 거치 조건으로 대출도 받을 수 있고요. 저도 이런 지원을 활용해 농경지와 과수원을 마련한 겁니다.”

    선 씨는 “급속한 고령화로 머잖아 농촌에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 농업을 시작하면 다가오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고 앞서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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