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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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여행의 백미, 카파도키아

[재이의 여행블루스]다른 행성 불시착한 듯한 버섯 바위… 종교의 자유 일깨우는 암굴교회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5-03-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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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풍광을 가진 카파도키아 괴레메 마을. GettyImages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풍광을 가진 카파도키아 괴레메 마을. GettyImages

     “평생 여행자의 삶을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튀르키예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처음 여행할 때 했다. 이스탄불에서 야간버스를 탄 뒤 경유지를 수도 없이 들러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도착한 어느 낯선 시골 마을 오토가르(버스터미널). 현지인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고 나 홀로 대합실에 남겨졌다. 이른 새벽이라 거리에 사람도 없었다. 해발 1200m에 위치한 고원지대라 매우 춥고 배도 고팠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신은 맑았다. 그때 나는 ‘공포’보다 ‘기대’를 먼저 떠올렸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나 자신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노마드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순도 100%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카파도키아. 그런데 지도에는 그 이름이 없다. 카파도키아는 광활한 아나톨리아 지역을 지칭하던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라는 의미의 페르시아어 카파투카에서 기원했다. 이 때문에 카파도키아는 하나의 도시 이름이 아니라 괴레메, 네브셰히르, 카이세리, 아바노스 등 여러 마을을 포함한 지역 이름이다.

    ‘스타워즈’ 등 SF 영화 배경지로 유명

    카파도키아를 여행할 때는 지역이 워낙 넓다 보니 볼거리가 몰려 있는 괴레메에 숙소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카파도키아를 감상하는 방법은 걷기 외에도 낙타, 말, 스쿠터, 버스, 열기구 타기 등 다양하다. 이 지역 어디를 가더라도 며칠은 머물 것을 권하고 싶다. 아침과 점심, 오전과 오후, 그리고 기상 여건에 따라 아름다움이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정들의 굴뚝’이라는 뜻의 페어리 침니로 불리는 버섯 바위들. GettyImages

    ‘요정들의 굴뚝’이라는 뜻의 페어리 침니로 불리는 버섯 바위들. GettyImages


    옛 지하도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괴레메 야외 박물관과 300여 개 석굴교회가 있는 파샤바 계곡,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뾰족한 바위라는 뜻의 천연요새 우치히사르, 비둘기 집처럼 작은 구멍이 수없이 있는 피존 밸리는 자유여행을 해도 무방하다. 다만 지하도시 데린쿠유와 카이마클리, 괴레메 남서쪽에 자리한 으흘라라 계곡 등은 교통이 불편하니 현지 여행사가 진행하는 투어를 이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여건상 먼 거리 이동이 어렵다면 괴레메 인근에 위치한, 꽃송이처럼 겹겹이 겹쳐진 붉은 사암 바위가 장관인 핑크빛 계곡 로즈밸리는 놓치지 말자. 석양에 물든 바위 경치가 일품이다.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괴레메에는 자연의 경이와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풍광이 숨겨져 있다. 마을 전체가 뾰족하게 올라온 버섯 모양의 기묘한 바위로 가득 차 있는 것인데, 아이스크림 스쿠프로 떠낸 것 같은 바위가 있는가 하면 지형 전체가 물결치듯 흘러내리는 곳도 있어서 우주선을 잘못 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불시착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카파도키아를 상징하는 버섯 바위들은 페어리 침니(요정들의 굴뚝)로 불리는데, 경이롭고 압도적인 풍경이 감탄과 탄성을 넘어 전율·환희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 풍경들은 ‘스타워즈’를 비롯한 SF 영화의 배경지로 등장해 더욱 유명해졌다. 이 기묘한 풍광은 수백만 년 전 활화산이 폭발하면서 흘러내린 용암이 굳고, 그 위에 바람과 재들의 풍화작용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다.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은 매우 부드러운데, 오랜 세월 지하수와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무른 부위는 깎여 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남아 지금 같은 기암군이 형성됐다. 또 여기에 인간이 연출한 형상이 더해졌다. 사람들이 1950년대까지도 이 버섯 모양 바위를 파고 들어가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이 중 일부는 당국 허가를 받아 관광객을 위한 호텔이나 커피숍 등으로 개조돼 사용되고 있다.

    카파도키아 사람들은 왜 이런 곳에 살게 됐을까. 이를 알려면 카피도키아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동서양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카파도키아는 늘 전쟁에 휘말렸다. 기원전 5000년 전 이미 여러 소왕국이 있었고, 인류 최초 철기 문명으로 알려진 히타이트 제국을 시작으로 프리기아·페르시아·알렉산더·로마·비잔틴 제국을 거쳐 셀주크·오스만 제국에 차례로 점령당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끝없는 전쟁에 시달렸고 살아남기 위해 굴을 뚫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것도 부족해 아예 땅을 파서 지하도시를 만들었다.

    11세기 인구 7만 명 카파도키아

    지하도시가 언제 처음 생겼는지는 역사적으로 확실치 않다. 다만 로마시대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 산 것은 틀림없다. 이들은 그 시기에 데린쿠유나 카이마클리 같은 암굴도시를 건설했다. 개미굴처럼 지하 85m 깊이에 건설된 데린쿠유는 12층 규모로 방만 1200여 개에 달하며 인구는 2만~3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도 암굴 지하도시에는 주택과 학교, 헛간, 와인창고, 식당, 교회, 식량 저장고, 환기용 굴뚝, 우물 등 옛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1세기 카파도키아 인구는 7만 명에 달했으며, 기독교인들이 바위를 파서 만든 암굴교회도 카파도키아 전역에 2000여 개나 된다.

    카파도키아를 감상하는 가장 환상적인 방법은 열기구를 타는 것이다. 하지만 지상에서 카파도키아의 매력을 충분히 경험한 뒤 열기구를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발로 걷고 눈으로 이미 담아놓은 모든 기억을 하늘에서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의 감격이 훨씬 더 치명적이니까 말이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