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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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발효주 막걸리, 그 발효법의 비밀

[명욱의 술기로운 한국사] ‘단발효’ 와인, ‘단행 복발효’ 맥주와 달리 ‘병행 복발효’ 거쳐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입력2025-02-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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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막걸리는 서양에서 유래한 와인·맥주와는 발효법이 다르다. [GettyImages]

    한국 막걸리는 서양에서 유래한 와인·맥주와는 발효법이 다르다. [GettyImages]

    와인이 서양을 대표하는 발효주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발효주는 막걸리다. 와인은 조지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서유럽 등을 거쳐 기독교 문명을 토대로 발전한 술이다. 반면 막걸리는 한국 농경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술 중 어느 것이 먼저 세상에 나왔을까.

    막걸리, 전분→당 변환해야

    자연사 측면에서 본다면 막걸리보다 와인이 먼저 탄생했을 개연성이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술이 만들어지려면 당과 충분한 수분이 필요한데, 와인 주원료인 포도는 이미 그 요소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포도 껍질을 벗겨 공기 중 효모와 만나게 하면 효모가 당을 머금고 알코올과 탄산을 배출한다. 이런 발효 방식을 한 번만 발효시킨다는 의미에서 ‘단발효’라고 한다.

    반면 막걸리 같은 곡주는 ‘복발효’가 필요하다. 막걸리를 만들려면 쌀 같은 곡물 속 전분을 쪼개 당으로 바꿔야 한다. 여기에 수분을 더하면 술이 된다. 말하자면 와인은 컴퓨터 속 일반 파일이고, 막걸리는 압축 파일인 셈이다.

    그렇다면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당화’ 과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이 단계에 필요한 건 효소다. 효소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속 침에는 탄수화물 소화효소인 아밀라아제가 들어 있어 음식 속 전분을 당으로 바꾼다. 그래서 밥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고,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밥을 씹다가 뱉어 술을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문득 와인 양조에 필요한 효모는 뭐고, 막걸리를 만들 때 필요한 효소는 또 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많은 이가 효모와 효소를 혼동한다. 일단 이름부터 비슷하기 때문인데, 한자 뜻을 풀어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효소는 삭힐 효(酵)와 흴 소(素)를 조합한 단어다. 삭힐 효의 부수는 항아리(酉·유)다. 즉 효소는 항아리 속에서 흰 쌀을 삭히는 물질이다. 반면 효모는 삭힐 효 뒤에 어미 모(母)를 붙여 만든 단어다. 이미 삭힌 것을 품고, 그것을 통해 술을 낳는 어머니가 효모라고 할 수 있다. 과일 또는 삭힌 곡물로 알코올을 생성하는 구실을 하는 게 바로 효모인 셈이다.

    청주·소주도 시작은 막걸리

    막걸리 발효를 담당하는 누룩에는 효모와 효소가 모두 들어 있다. [GettyImages]

    막걸리 발효를 담당하는 누룩에는 효모와 효소가 모두 들어 있다. [GettyImages]

    막걸리 발효의 매개체인 누룩에는 효소와 효모가 모두 들어 있다. 이 중 효소가 먼저 활동해 쌀 속 전분을 당으로 만들면 효모가 그 당을 머금고 알코올을 배출한다. 이렇게 두 단계로 술을 빚는 방식을 ‘병행 복발효’라고 한다.

    맥주 제조 방식은 이와는 다소 다르다. 맥주 원료인 보리는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전분을 당으로 바꿔 에너지를 얻는다. 이때 효소를 분비한다. 그래서 맥주를 빚을 때는 싹 틔운 보리를 건조한 ‘맥아’를 끓여 보리즙을 만들고, 이후 한꺼번에 발효를 진행한다. 이른바 ‘단행 복발효’다.

    병행 복발효는 발효에 시간이 좀 더 걸린다. 그 결과 효모가 알코올에 적응하는 시간이 넉넉해 지속적인 발효가 가능하고, 맥주보다 더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 수 있다. 보리보다 쌀에 당분이 더 많은 것도 도수 높은 술을 생산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발효주의 최고 도수는 원재료 당도에 0.57을 곱한 값이다. 쌀 자체 당도가 높다 보니 막걸리 원액은 14~15도 이상인 경우가 많다. 보통은 여기에 물을 타 마시기 좋은 도수(5~6도)의 술을 빚는다. 원액의 맑은 부분만 걸러 약주나 청주로 만들기도 한다.

    막걸리 발효법은 한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주종인 소주로도 이어진다. 막걸리 혹은 막걸리를 걸러 만든 청주를 증류하면 소주가 된다. 증발한 알코올이 액체 상태로 변해 똑똑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바로 소주다. 이 제조 방식 때문에 예부터 소주는 ‘이슬’로 불렸다. 조선 명주로 유명한 감홍로, 홍로주 이름에 ‘이슬 로(露)’가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증류주로 알려진 소주도 그 시작은 병행 복발효를 통한 막걸리인 셈이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