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막걸리는 서양에서 유래한 와인·맥주와는 발효법이 다르다. [GettyImages]](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7/ae/cd/71/67aecd7104b2d2738250.jpg)
한국 막걸리는 서양에서 유래한 와인·맥주와는 발효법이 다르다. [GettyImages]
막걸리, 전분→당 변환해야
자연사 측면에서 본다면 막걸리보다 와인이 먼저 탄생했을 개연성이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술이 만들어지려면 당과 충분한 수분이 필요한데, 와인 주원료인 포도는 이미 그 요소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포도 껍질을 벗겨 공기 중 효모와 만나게 하면 효모가 당을 머금고 알코올과 탄산을 배출한다. 이런 발효 방식을 한 번만 발효시킨다는 의미에서 ‘단발효’라고 한다.
반면 막걸리 같은 곡주는 ‘복발효’가 필요하다. 막걸리를 만들려면 쌀 같은 곡물 속 전분을 쪼개 당으로 바꿔야 한다. 여기에 수분을 더하면 술이 된다. 말하자면 와인은 컴퓨터 속 일반 파일이고, 막걸리는 압축 파일인 셈이다.
그렇다면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당화’ 과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이 단계에 필요한 건 효소다. 효소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속 침에는 탄수화물 소화효소인 아밀라아제가 들어 있어 음식 속 전분을 당으로 바꾼다. 그래서 밥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고,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밥을 씹다가 뱉어 술을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문득 와인 양조에 필요한 효모는 뭐고, 막걸리를 만들 때 필요한 효소는 또 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많은 이가 효모와 효소를 혼동한다. 일단 이름부터 비슷하기 때문인데, 한자 뜻을 풀어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효소는 삭힐 효(酵)와 흴 소(素)를 조합한 단어다. 삭힐 효의 부수는 항아리(酉·유)다. 즉 효소는 항아리 속에서 흰 쌀을 삭히는 물질이다. 반면 효모는 삭힐 효 뒤에 어미 모(母)를 붙여 만든 단어다. 이미 삭힌 것을 품고, 그것을 통해 술을 낳는 어머니가 효모라고 할 수 있다. 과일 또는 삭힌 곡물로 알코올을 생성하는 구실을 하는 게 바로 효모인 셈이다.
청주·소주도 시작은 막걸리
![막걸리 발효를 담당하는 누룩에는 효모와 효소가 모두 들어 있다. [GettyImages]](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7/ae/cd/7b/67aecd7b0e34d2738250.jpg)
막걸리 발효를 담당하는 누룩에는 효모와 효소가 모두 들어 있다. [GettyImages]
맥주 제조 방식은 이와는 다소 다르다. 맥주 원료인 보리는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전분을 당으로 바꿔 에너지를 얻는다. 이때 효소를 분비한다. 그래서 맥주를 빚을 때는 싹 틔운 보리를 건조한 ‘맥아’를 끓여 보리즙을 만들고, 이후 한꺼번에 발효를 진행한다. 이른바 ‘단행 복발효’다.
병행 복발효는 발효에 시간이 좀 더 걸린다. 그 결과 효모가 알코올에 적응하는 시간이 넉넉해 지속적인 발효가 가능하고, 맥주보다 더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 수 있다. 보리보다 쌀에 당분이 더 많은 것도 도수 높은 술을 생산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발효주의 최고 도수는 원재료 당도에 0.57을 곱한 값이다. 쌀 자체 당도가 높다 보니 막걸리 원액은 14~15도 이상인 경우가 많다. 보통은 여기에 물을 타 마시기 좋은 도수(5~6도)의 술을 빚는다. 원액의 맑은 부분만 걸러 약주나 청주로 만들기도 한다.
막걸리 발효법은 한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주종인 소주로도 이어진다. 막걸리 혹은 막걸리를 걸러 만든 청주를 증류하면 소주가 된다. 증발한 알코올이 액체 상태로 변해 똑똑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바로 소주다. 이 제조 방식 때문에 예부터 소주는 ‘이슬’로 불렸다. 조선 명주로 유명한 감홍로, 홍로주 이름에 ‘이슬 로(露)’가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증류주로 알려진 소주도 그 시작은 병행 복발효를 통한 막걸리인 셈이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