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죽지세로 오르던 엔비디아가 조정을 맞으면서 인공지능(AI) 관련주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닷컴버블과 금융위기를 예측한 존 허스먼, 미국 경제학자 해리 덴트 등은 연이어 ‘제2 닷컴버블’을 경고하고 나선 반면,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평균적으로 12%가량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본다. 투자자들은 버블 붕괴론이 제기되는 엔비디아를 대신할 ‘제2 엔비디아’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AI 전문가인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엔비디아를 포함한 데이터센터 인프라 종목들이 조정받고 있지만 온디바이스 AI 관련 종목의 주가 흐름은 괜찮다”면서 “하반기에는 온디바이스 AI 시장을 이끄는 ARM, 퀄컴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6월 24일 이 대표를 만나 급변하는 AI 반도체 시장 트렌드를 분석하고 투자전략을 들었다.
온디바이스 AI 종목 상승
“6월 10일 열린 애플 세계개발자회의(WWDC)가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애플 인텔리전스가 기술적으로는 새로울 게 없어서 테크 전문가들은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내놓은 반면, 시장은 ‘이 정도도 괜찮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주가가 상승했다. 또한 최근 ARM, 퀄컴 등 온디바이스 AI 기업 주가도 상승세다. 반면 그동안 AI 시장을 주도했던 엔비디아를 비롯한 데이터센터 인프라 종목은 조정받기 시작했다. 국내 엔비디아 수혜 종목인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도 조정 국면이다. 다만 이번 조정으로 상승 추세가 꺾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온디바이스 AI 관련주 투자가 낫다고 보는 건가.
“단기적으로는 애플, ARM, 퀄컴, 시놉시스 등 온디바이스 AI 관련주 흐름이 괜찮을 것 같다. 다만 국내 온디바이스 AI 수혜주는 HBM(고대역폭메모리) 관련주가 엔비디아와 동조 흐름을 보였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HBM은 엔비디아의 직접적인 수혜 시장인데, 범용 D램이 들어가는 온디바이스 AI는 수혜 기업을 선별하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국내 온디바이스 AI 수혜 기업으로 꼽히는 리노공업 주가가 지지부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온디바이스 AI에는 어떤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가나.
“온디바이스 AI에는 LPDDR5X나 DDR5 같은 범용 D램이 들어간다. 향후 LLW(저지연고대역폭) 같은 메모리 반도체가 온디바이스 AI용으로 적용될 전망이다.”
최적화된 온디바이스 AI용 메모리는 언제쯤 적용될까.
“현재는 하드웨어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온디바이스 AI에 최적화된 메모리 반도체가 양산된다 해도 온디바이스 AI 특성상 소비자에게 제품 가격이 전가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 같은 클라우드 사업자는 칩 성능만 좋으면 가격이 비싸도 칩을 구입한다. 반면 AI 스마트폰이나 AI PC(개인용 컴퓨터)는 고성능 칩 가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킬러 애플리케이션(앱)이 없는 시점에서 수십만 원을 더 내고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AI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이 인텔리전스를 발표하자마자 비판에 나서기도 했는데.
“빅테크 기업은 지금도 스마트폰으로 빅데이터를 쪽쪽 빨아들이고 있다. 개인 스마트폰에서 데이터를 가져가면 개인정보 같은 민감한 정보가 노출될까 우려하지만, 빅데이터는 비정형이고 비식별 데이터다. 그 데이터에 스마트폰 소유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통화를 하는지 담겨 있지 않다는 얘기다.”
AI PC 시장 장악 나선 ARM
올해 초 주간동아 ‘투벤저스 스페셜’ 인터뷰에서 ARM을 주목하라고 했는데 그 후 ARM 주가가 2배가량 상승했다.“전 세계 모바일 AP(Application Processor·스마트폰용 중앙처리장치) 시장의 90~95%를 장악하고 있는 ARM 아키텍처의 독점력이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인텔 x86 아키텍처가 장악한 PC용 CPU(중앙처리장치) 시장도 AI가 적용되면서 ARM 아키텍처가 도입되는 상황이다. ARM 아키텍처가 PC 시장도 장악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가가 한 단계 점프했다. ARM 아키텍처의 가장 큰 장점은 저전력이다. 저전력을 무기로 모바일 시장을 넘어 PC, 서버에까지 ARM 아키텍처가 진입하고 있다.”
ARM 주가가 더 상승할 여력이 있다고 보나.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 결국 ARM 기반 칩들이 AI용 반도체를 장악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1년 6개월간 랠리를 펼친 것처럼 ARM도 장기 랠리 가능성이 있다.”
퀄컴 주가도 강세인데.
“AP 시장 최강자 퀄컴이 인텔이 꽉 잡고 있는 PC용 CPU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주가가 상승세다. 기존 PC는 대부분 인텔의 x86 아키텍처 기반이다. 그런데 퀄컴 ARM 기반의 스냅드래곤×엘리트 칩이 AI PC에 탑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일부 게임이나 소프트웨어가 잘 실행되지 않는 문제가 발견됐지만 이는 초기 시장 진입에 따른 노이즈로 보인다. 결국 AI PC 시장도 ARM 기반의 퀄컴 칩이 장악할 것으로 예상된다.”
퀄컴 스냅드래곤×엘리트 칩의 강점은.
“온디바이스 AI를 구현하려면 인터넷 연결 없이도 초당 40조 회 정도 연산 처리를 해야 하는데, 스냅드래곤×엘리트는 45조 회 연산을 처리하는 NPU(신경망처리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력 소모가 적다.”
투자자 사이에서 제2 엔비디아로 불리는 브로드컴은 어떤 기업인가.
“와이파이, 블루투스, GPS 등 통신칩을 설계하는 곳으로 인터넷 시대에 촉망받은 기업이다. 모바일 시대에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AI 시대가 시작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데이터센터는 병렬로 연결된 서버들이 마치 한 개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브로드컴이 서버 통신용 주문형 반도체를 잘 설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구글 AI용 반도체 TPU를 브로드컴이 주문형 반도체(ASIC)로 설계해주고 있다. 브로드컴이 AI 칩 설계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면서 그 비즈니스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인텔과 AMD 주가는 왜 약세를 보이나.
“인텔과 AMD는 시스크(ClSC) 컴퓨팅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ARM의 리스크(RISC) 방식 대비 전력 소모가 많다. 인터넷 시대 PC와 서버 시장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최근 이 시장에도 AI가 적용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반면 저전력이 강점인 ARM 아키텍처 기반 칩을 생산하는 퀄컴이 PC와 서버 시장에까지 진출한 이유기도 하다. 엔비디아 역시 자체 ARM 기반 CPU를 설계하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CPU 악시온도 ARM 기반이다. 따라서 인텔과 AMD는 계속 시장을 뺏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얼마 전까지 AMD가 엔비디아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는데.
“AMD가 엔비디아 GPU 일부를 대체할 수 있어 보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원치 않았다. 물론 AMD도 성장하고 있지만 엔비디아에 비해 미미한 상황이다.”
M7 EPS 증가율 추정치 43%
그렇다면 투자자는 ARM 기반 기업을 주목해야 하나.“그렇다. 더불어 M7(매그니피센트7: MS·애플·아마존·엔비디아·알파벳·메타·테슬라)도 여전히 상승 여력이 있어 보인다. AI는 선두 기업이 철저히 유리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M7의 EPS(주당순이익) 증가율은 73%인 반면, M7을 뺀 S&P500의 EPS 증가율은 10% 정도다. 올해 M7의 EPS 증가율 추정치도 43%나 된다. 나머지 S&P500의 올해 EPS 증가율 전망치는 5%도 안 된다. 또한 통상 M7의 PER(주가수익비율)은 27~28배 수준인데, 주가가 많이 오른 현재 30배 정도밖에 안 된다. 그만큼 실적이 뒷받침되고 있다. AI 기업과 아닌 기업의 실적이 철저히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율 박빙이다. 대선 때까지 단기적으로 경기부양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빅테크 주가는 더욱 상승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어떤 기업을 주목해야 하나.
“미국 대선 전까지는 국내 주식보다 미국 빅테크 종목이 유리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국내 주식에 투자한다면 테스트 소켓을 생산하는 리노공업, AI PC 기판 생산업체 심텍 등 온디바이스 AI 관련 업체를 주목하길 권한다. 또한 온디바이스 AI 최대 수혜 기업은 TSMC인데, TSMC의 밸류체인 얼라이언스(VCA) 8개 기업 가운데 유일한 국내 업체인 에이직랜드도 주목할 만하다.”
AI 산업 사이클은 언제쯤 정점을 찍을까.
“AI 산업은 10년 사이클로 판단된다. 주가는 5년 사이클로 보는데, 초창기인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주가 상승폭이 가장 가파르게 나타났다. 엔비디아와 밸류체인 기업들이 최근까지 급등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앞으로 3년 6개월 정도는 주가 흐름이 괜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AI 종목 투자 키포인트는.
“간단하게 쇼티지(공급 부족)를 따라가면서 투자하면 된다. 2022년 11월 오픈AI가 챗GPT를 공개하면서 엔비디아의 AI용 GPU(그래픽처리장치) 쇼티지가 시작됐다. 이제 엔비디아 병목현상이 좀 풀릴 기미가 보이니 데이터센터 부족이 이슈다. 이어 전기, 학습할 데이터, 통신 인프라 부족 얘기가 나온다. 내년쯤에는 빅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들릴 것이다. 컴퓨팅 파워가 높아지는 속도를 빅데이터 확보 속도가 못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AI 종목에 투자할 때는 이런 쇼티지 이슈를 주목하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안녕하세요. 한여진 기자입니다. 주식 및 암호화폐 시장, 국내외 주요 기업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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