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가계에서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비중이 60%를 넘는다. 부동산이 오랫동안 안전자산으로 인식돼온 영향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경우 1987년 이후 36년 동안 연평균 6.7% 올라 안전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 평균은 5.8%다. 하지만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역사상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지금은 안전자산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파트를 적정 가격에 매입할 때만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 [지호영 기자]
아파트 적정가 알았다면 ‘영끌’ 탄생 안 했을 것
채 대표는 2011년부터 10여 년간 LIG증권(현 케이프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현 하나증권) 건설부동산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베스트 애널리스트로서 명성을 얻었다. 아주대 건축공학과,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주택건설시장의 현업 경험을 토대로 금융시장과 연계성이 높은 리포트 및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부심-채상욱의 부동산 심부름센터’, 네이버 프리미엄 채널 ‘아파트 가치&가격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10여 년에 걸쳐 연구해온 아파트 가치평가 방법을 담은 책 ‘아파트, 이 가격 오면 사라’를 펴냈다.‘적정가를 알면 아파트는 안전자산’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적정가를 모르면 위험자산’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되는데.
“그동안 한국에서는 아파트 가격에 대한 논의가 너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판단 기준이 없어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어디까지 오를지, 내리면 어디까지 내릴지 몰라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하락장에서 아파트 가격이 -30%, -40%씩 하락한 단지에 가보면 집을 사서 1년 안에 매도한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심지어 7월에 사서 9월에 판 경우도 있었다. 고점에 집을 샀는데 대출금리가 빠른 속도로 오르니 큰 손해를 감수하고 바로 매도한 사례였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하락폭이 -40%를 넘어가는데도 ‘더 빠질 것 같다’ ‘반토막이 나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지금 아파트 가격이 어느 수준인지 알면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파트를 안전자산, 위험자산으로 구분 짓게 하는 요소는 바로 ‘가격’이다.”
아파트 가격의 적정성을 어떻게 계산하나.
“주식시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으로 볼 때 개별 자산에 대한 가치평가(밸류에이션)는 쉬운 방법일수록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처럼 시가총액이 큰 회사는 PBR(주가순자산비율: 주가를 기업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이 0.8배에서 1.6배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경기전망이 좋으면 1.6배까지 올랐다가 안 좋으면 0.8배까지 떨어지는 식이다. 그래서 지금 PBR이 1.2배면 중간이구나, 1.4배면 약간 높구나, 0.9배면 역사적 최저점 구간이니 굉장히 싸구나 하면서 대응한다. 아파트는 ‘전세가×전세가배율’(전세가 대비 매매가 비율)로 밸류에이션을 해봤다. 서울의 경우 25년 동안 아파트 가격이 가장 높았을 때는 전세가배율이 2.6배, 가장 낮았을 때는 1.3배였다. 전세가 6억 원을 기준으로 가장 쌌을 때는 7억8000만 원(6억 원×1.3), 가장 비쌌을 때는 15억6000만 원(6억 원×2.6)이었다. 그런데 이런 적정 가격을 몰랐기에 지난해 아파트 가격이 역사상 최고점인 15억 원대를 넘어가는 시점에 ‘영끌’로 매수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본다. 지금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배율은 7월 기준으로 2배에서 2.1배로 넘어가고 있다.”
부동산 투자는 타이밍과 가격이 좌우
부동산 투자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타이밍과 가격이다. 현재는 두 가지 모두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뉴스1]
“서울 아파트의 장기 평균 적정가가 전세가의 1.8배였던 점에 비춰보면 2배를 넘어가는 것은 비싼 구간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격이 비싼 구간에 들어갔다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책에도 설명해놓았는데 주식과 마찬가지로 부동산도 투자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타이밍(시점)과 가격이다. 일단 현재는 집값이 많이 올라 집을 매입하기에 좋은 가격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대출에 우호적이라면 좋은 시점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집값은 1998~2005년, 2014~2021년 대출이 완화됐을 때 가장 많이 올랐다. 올해도 부동산시장이 너무 침체되자 한시적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만들어 소득과 무관하게 돈을 빌려주다 보니 집값이 오르긴 했는데, 정부가 가계대출을 계속 열어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이제는 가격으로도, 시점으로도 집을 사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정부 정책에 좌우되는 타이밍을 맞출 수 없다면 가격이 가장 쌀 때 사면 되지 않나.
“그렇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가장 쌌던 시기는 2016년이다. 2012년에서 2016년으로 가는 과정에서 매매가는 전세가 기준 1.6배에서 1.3배까지 내려가며 바닥을 찍었고, 이후 다시 2018년까지 1.7~1.8배로 올랐다. 그러다 2019년 말부터 장기 평균을 넘어서며 2020년, 2021년, 2022년까지 비싼 구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2021년까지는 가계대출이 굉장히 우호적이었기에 타이밍은 좋았다.”
코로나19 발생에 따른 유동성 증가는 부동산시장에 어떻게 버블을 만들었나.
“적정 집값을 얘기할 때 전세가의 몇 배라고 하는데, 기준이 되는 전세가는 금리의 영향을 받기에 금리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올라가는 상관관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1년에 2400만 원을 내야 하는 월세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대출금리가 6%면 같은 금액의 이자를 부담하고 4억 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대출금리가 3%면 8억 원까지 대출이 나온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같기 때문에 8억 원 전세까지 수용할 수 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 때 기준금리가 0.5%까지 내려가 전세가와 집값을 밀어 올리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고, 지난해에는 반대로 급격히 오르며 역전세 환경까지 부르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소름공식’으로 명명한 적정 집값 계산법을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앞서 얘기한 대로 전세가와 전세가배율이 중요한데 전세가배율은 경제성장률이 상승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 올라가고, 경제성장이 둔화하면 내려간다. 서울은 1.8배, 부산은 1.7배, 대구를 비롯한 나머지 광역시는 1.5배가 평균이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주 지역의 장기 평균 전세가배율을 계산하면 지금이 평균보다 한참 높은지, 낮은지를 판단할 수 있다. 물론 같은 서울이어도 선호도에 따라 전세가배율이 달라져 강남이나 서초의 경우 2.2배까지도 적용될 수 있다. 그 지역 매매가와 전세가를 놓고 계산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또 전세가는 금리가 6%에서 3%가 되면 2배 오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한국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금리가 계속 낮아졌고 또 잠깐이지만 제로화 금리 수준을 경험했기 때문에 앞으로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시 0%대가 될 가능성이 무척 낮다고 보기 때문에 금리인하에 대해 너무 공격적인 생각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세자금대출 먹으며 치솟은 전세가
지난해 하락한 집값이 다시 반등하고 있다. 현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보나.“2020년 하락장을 전망했는데 반대로 역대급 강세장이 왔다. 내가 대출 데이터를 잘 챙겨 보지 못한 결과였다. 주택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좌우되고, 수요는 소득과 대출로 구성된다. 결과적으로 주택 가격은 대출을 따라간다. 지난해 하반기 전국적으로 매입 수요가 없었는데, 이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때문이다. 한국 가계대출 전체가 이미 DSR 40%를 넘은 상태다 보니 수요 자체가 증발해버렸다.
반면 올해는 특례보금자리론이 등장해 9억 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는 소득 제한 없이, DSR 제한 없이 대출을 열어줘 가격 상승이 일어날 수 있었다. 1년에 80조 원이면 부동산시장을 강세장으로 돌릴 수 있는데, 상반기 44조 원에 달하는 돈을 풀어 한시적으로 시장 분위기를 돌려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낙폭이 컸던 지역 위주로 강세를 띨 뿐 전국적으로는 수요가 여전히 빈약하다. 지금 서울과 서울 근교를 제외한 지방은 광역시까지도 모두 약세다. 특례보금자리론이 끝나면 수요가 또다시 위축돼 부동산시장에서는 올해와 어느 정도 유사한 환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가계는 이미 소득 초과 대출 상태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전세가는 오랫동안 한국 부동산시장에서 집값 폭락을 막는 하방 지지선이 되기도 하고 집값을 밀어 올리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이 전세가는 전세자금대출 규모가 늘어나면서 전세가 자체도, 집값도 밀어 올리는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렇다. 지금 전세가는 전세자금대출을 먹으며 자랐다고 볼 수 있다. 전세자금대출은 MB(이명박) 정부 때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박근혜 정부 때 5억 원까지 상승했는데 실제 서울 전세가도 2008년부터 2016년까지 2배 상승하며 가장 많이 올랐다. 그런 점에서 적정 집값 계산의 출발점이 되는 전세가도 20%가량 고평가돼 있다고 본다. 따라서 고평가된 전세가에 다시 전세가배율을 곱해야 하는 매매가는 훨씬 더 비싼 레벨에 들어서 있다.”
2020년부터 부동산 사이클이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올해도 정부 개입으로 일부 지역 집값이 올랐고, 올가을 본격화될 예정되던 역전세난도 역전세 반환대출 규제 완화로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다. 향후 부동산시장은 어떻게 될까.
“2010년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과 정부는 저금리라는 시스템을 깔아놓고 경제나 특정 자산시장이 잘 안 돌아가면 개입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양적완화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부동산시장에 문제가 생기자 특례보금자리론에 이어 특례역전세론(역전세 반환대출 규제 완화)을 도입했다. 자산시장이 자동으로 작동하게 두지 않고 인위적으로 개입하다 보니 자산이 점점 고평가되면서 침체와 부양이 반복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부동산이 안전자산이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분명 그렇지 않을 때이니 이 기간에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한다. 시장 변화는 전세가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전세가를 주목하면 되는데, 가까운 시일에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임대료 가장 높은 아파트 가장 선호
그렇다면 그때가 언제일까.“지금 한국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3%다. 원래는 80%만 넘어도 경제에 안 좋다고 보는데 말이다. 그래서 부채 비중이 내려가려면 국민소득이 몇 년간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DSR 규제를 받지 않는 대출 44조 원을 올해 또 풀었으니 최소 2년 정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과거 정부가 가계대출에 대해 완화적인 정책을 펼 때는 1998년이나 2014년처럼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당시에는 시점이 나빠도 집값이 쌌기 때문에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매입에 나섰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보니 수요층이 굉장히 얇다. 거래량이 10분의 1 토막이 났다가 올라와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일 뿐, 평년 거래량에 못 미치고 있다. 이제 역전세를 막으려고 또 프로그램을 돌릴 텐데, 이렇게 한다고 리스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연될 뿐이다.”
살기 좋은 아파트는 어떻게 고르면 될까.
“아파트 가치는 입지 가치(교통·교육·편의시설·자연환경)와 상품 가치의 종합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일일이 분석할 필요가 없다. 이미 시장에서는 살기 좋은 아파트가 임대료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임대료는 오늘의 가격이고 매매가는 미래 가치가 반영된 내일의 가격이라고 한다면 지금 가장 좋은 동네는 임대료가 가장 비싼 동네라고 보면 된다. 물론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입지 가치 요소들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점은 현재 가장 좋아하는 여건들이 다 포함된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광주를 잘 모르지만, 지금 가장 선호되는 지역은 분명 아파트 34평형 기준 전세가가 가장 높은 곳이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다만 부산의 경우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 선호되는 지역 가운데 전세가는 동래구가 높지만 전세가배율은 수영구가 더 높다. 개발이 본격화되면 미래에 더 좋아질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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