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선사한 김연경(왼쪽) 등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뉴스1]
영대 뭐가요?
현모 남편이요. 올림픽 보면서 소리를 질러대 깜짝깜짝!
영대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저도 그런데. ㅎㅎ 한국 대표팀이 점수를 올리거나 하면 평소 지르지도 않는 함성을 막 질러요. 가족뿐 아니라 강아지까지 깜짝깜짝 놀란다고요.
현모 ㅎㅎㅎ 로키(김영대의 반려견)도 가족이라고요! 근데 올림픽의 힘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평소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걸 보면요.
영대 다들 그래요. “아니, 높이뛰기가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예전엔 올림픽을 보면서 씁쓸하기도 했어요. 어차피 올림픽 끝나면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도 식으니까. 딱 ‘냄비’ 그 이상이 아닌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희망을 좀 본 거 같아요.
현모 어떤 면에서요?
영대 올림픽이 기본적으로 국가대항전 성격을 띠지만, 한편으로는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아마추어리즘을 선보이고 경쟁하는 대회잖아요. 예전에는 올림픽이라는 이벤트를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뭔가를 ‘해냈다’ ‘승리했다’는 관점으로 접근한 측면이 컸다면 지금은 조금이나마 바뀌고 있는 거 같아요.
현모 맞아요. 올해는 전반적으로 ‘무조건 이겨라! 죽기 살기로 이겨라!’ 같은 분위기가 많이 줄어든 거 같지 않아요? 예전에는 금메달 아니면 ‘실패’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잖아요. 이제는 언론도, 대중도 결과보다 얼마나 멋지게 잘 싸웠는지 그 도전 과정과 거기에 담긴 스토리를 중시하는 거 같아요.
영대 맞아요. 왜 그런 변화가 생기고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경기를 뛰는 대표선수들의 태도나 마인드가 바뀐 점이 가장 큰 거 같아요. 예전에 외국 스포츠 선수들을 보면 동메달을 따고도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현모 그죠. 우리 선수들은 그 어려운 은메달을 따고도 서럽게 울거나, 심지어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그랬잖아요.
영대 ‘이제 우리 선수들도 다른 마음가짐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메달을 따지 못해도 원하는 기록을 달성했을 때는 환하게 웃고, 설령 기대만큼 결과가 안 나와도 열심히 했으니 후회 없다는 태도도 좋고요.
현모 국민 반응도 예전에는 우리 선수가 좀 못하면 아쉬움을 넘어 욕하고 질책하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올림픽은 전체적으로 ‘잘했다, 수고했다’는 톤인 거 같아 훈훈해요. 올림픽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즐기고 응원할 뿐이지, 굳이 국운이 걸린 이벤트라고 생각하거나 내 운명과 결부 짓진 않는 거죠.
2020 도쿄올림픽에서 육상 높이뛰기 한국 신기록을 세운 우상혁 선수. [뉴스1]
현모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즐긴 첫 올림픽이 된 거 같아요. 그 전까지는 생중계를 시청하거나 적어도 방송으로 뉴스 정도는 봤는데 요번엔 모바일로도 확인할 수 있더라고요. 온라인상에 올라온 요약 영상이나 하이라이트를 보고, 또 SNS로 재가공된 포스팅들을 보면서 ‘아, 이런 사람들이 회자가 되는구나’ 알게 됐어요.
영대 그래서 “올림픽 중계는 K, M, S 본부보다 트위터가 최고”라는 말도 나왔죠. ㅎㅎ 이번 올림픽이 특히 그랬던 거 같은데, SNS로 접하는 경기 또는 선수에 관한 수많은 영상과 사진이 오히려 본 게임보다 더 재밌게 느껴질 때가 많더라고요. 꼭 케이팝 아이돌 팬질을 보는 거 같지 않아요?
현모 맞아요. ㅎㅎ 성적이나 순위에 초점을 맞춘 기계적인 정보보다 선수 개개인의 인간적 면모나 스타로서 카리스마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이 인기인 거 같아요. 카메라 화질과 중계 기술이 발전한 덕분이기도 하고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순간적인 표정이나 뒷모습까지 섬세하게 잡아주니까요. 그게 인터넷 유저들의 시선에 포착되면서 새로운 캐릭터와 서사가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영대 선수들의 스타성과 인간미 같은 부분이 부각되면서 단순히 승패보다 그 선수의 플레이 자체를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 같아요. 메달 색깔이 어떻든 그 선수의 고유한 매력이나 실력에는 변함이 없으니까요.
현모 그죠. 내가 사랑하는 가수가 꼭 1등, 1위를 해야 의미 있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죠. 다만 한일전은 예외고요. ㅋㅋ
영대 ㅎㅎㅎ 그거는 특별한 경우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도 이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스포츠를 국가 간 대결로 과몰입하다 보니, 특히 한일전에서 지면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비난이 과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직은 변하지 않은 부분인 거 같아요.
현모 ㅜㅜ 그럼 안 되죠. 그래도 부인할 수 없는 건 요즘처럼 힘든 시국에 태극기를 걸고 하는 대회가 한마음으로 결속하고 열띤 호응을 자아내는, 그런 환기 효과는 확실히 있더라고요.
영대 국가주의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올림픽에선 중요한 요소인 건 맞아요. 선수들도 평소보다 더 힘을 내니까 명승부도 많이 나오고요. 근데 과거엔 선수들이 그런 국가적 사명감 때문에 과도한 중압감에 시달린 측면도 있죠.
현모 그때는 바깥 세계에 우리를 어필할 수 있는 기회나 수단이 적었던 게 이유라고 봐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코리아’라는 나라를 알릴 수 있는 시대가 더는 아니니까요!
영대 저는 우리나라가 올림픽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날이 오면, 오히려 그게 우리나라가 진짜 선진국이 되는 날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현모 근데 선진국이 스포츠도 더 잘하는걸요! ㅎㅎ
영대 하긴 그렇죠. 훈련 시스템이나 스포츠 과학이 훨씬 뛰어나니까요.
현모 관건은 져도 괜찮다는 느긋한 자세가 아니라, 최종 경쟁 상대를 누구로 보느냐가 아닐까요? 남이 아닌, 나 자신과 승부라 생각하고 임하는 자세요. 특히 기록 스포츠는 더 그렇고요.
영대 이제 사람들이 그런 측면에 더 환호하기 시작했다는 게 긍정적인 신호 같아요. 여자 배구를 보면서 느낀 건데, 메달을 못 따 너무 아쉬웠던 건 사실이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를 이겨낸 선수들이 준 감동이야말로 그 아쉬움보다 몇십 배는 컸어요.
현모 오스카에서 윤여정 배우님이 한 말씀도 생각나요. “1등 되기 싫다. 왜냐하면 1등이 있으면 반드시 2등이 있으니까.” 모두가 각자 스스로와 묵묵히 싸우고 있는데 누구는 승자고, 누구는 패자로만 이름 붙여진다면 안타깝죠.
영대 승패라는 게 정말 상대적이에요. 이번에 여자 배구 터키전을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터키 선수들이 경기에 져 눈물을 펑펑 흘렸는데, 알고 보니 최근 터키에 산불이 크게 나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꼭 이기고 싶었다고….
현모 그렇게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냥 기쁘진 않아요. 그들에게는 우리가 느끼는 환희와 감동만큼의 슬픔이 주어지는 거니까요.
영대 좀 낭만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런 코스모폴리탄적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팬데믹 시대가 가져온 변화이지 않을까요? 저는 코로나19가 가져온 가장 큰 깨달음이 ‘우리 모두는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여전히 강대국과 약소국이 나뉘고 방역과 백신이 국력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 인류가 동시에 똑같은 고통을 받았으니까요.
현모 동감이에요. 그렇기에 앞으로도 진짜 특별했던 팬데믹 올림픽으로 기억될 거 같아요. 지난 1년 반 동안 전 지구가 바이러스와 사투를 통해 국력 차이가 무색하도록 너나없이 인류의 한계를 체감하고 겸손해졌으니까요. 올림픽이 애초에 전쟁 때문에 생겨난, 세계 평화와 화합을 위한 행사인데, 어쩌면 그 정신이 다시금 제대로 재연된 거 같기도 하고요. 다음은 파리네요.
영대 2024 파리올림픽 때는 ‘파리(party·파티)’ 느낌이 물씬 나길….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