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제공]
김한진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는 5월 31일 “엔비디아를 단순히 ‘반도체 대장주’로 정의해선 안 된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엔비디아가 제조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경제적 해자가 있는 것은 해당 제품에 담긴 알고리즘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시장 평가도 이와 유사하다. 엔비디아는 투자자 사이에서 반도체 대장주인 동시에 인공지능(AI) 대장주로 분류된다. 대세 테마의 동시 대장주로 여겨지면서 시장 수급도 ‘쌍끌이’하고 있다.
전고점 돌파 성공한 1조 달러 기업
5월 30일(이하 현지 시간) 주가가 419달러까지 급등하면서 한때나마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해본 기업으로는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의 모기업) △메타 △테슬라 등이 있다. 이 중 메타와 테슬라는 지난해 주가가 하락해 ‘1조 달러 클럽’에서 방출되는 불명예를 겪었다. 반도체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이 1억 달러를 넘겨본 곳은 엔비디아뿐이다.
엔비디아의 기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엔비디아는 시가총액이 1조 달러에 육박하는 기업 중 유일하게 코로나19 버블 당시 전고점을 돌파했다. 전 세계 1위 기업 애플과 챗GPT 열풍을 이끈 마이크로소프트마저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엔비디아 역시 지난해 경기 한파를 혹독하게 겪었다. 주력 상품인 GPU가 암호화폐 채굴에도 쓰이는데, 관련 시장이 초토화되면서 주가가 반토막 난 것이다. 당시 1년도 안 돼 엔비디아 주가가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엔비디아가 부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AI 붐에 최적화된 사업 모델이 있다. 생성형 AI 챗GPT 열풍으로 AI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투자자들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도 자리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빙’과 구글 ‘바드’ 중 어느 서비스가 향후 대세로 자리 잡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제3 기업의 등장으로 AI 시장 판도가 바뀔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투자자들이 엔비디아에 열광하는 이유는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빙이 승리하든, 구글 바드가 이기든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어서다. AI 기업들에서 매출이 발생하는 독특한 사업 구조 덕분이다.
GPU 90% 공급
엔비디아는 ‘AI 산업의 쌀’이라 할 수 있는 GPU 시장을 꽉 잡고 있다. AI가 고도화될수록 처리해야 할 정보량은 급증한다. 단, 기존 중앙처리장치(CPU)는 직렬연산 방식으로 가동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GPU는 병렬연산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단순 연산에서는 작업 속도가 월등하다. CPU가 여러 명령을 순서대로 처리한다면 GPU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정보를 처리하는 구조다. 엔비디아는 전 세계 GPU의 90%를 공급하고 있다. 사실상 독점 시장을 구축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한동안 엔비디아의 독주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GPU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병목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5월 23일 ‘WSJ CEO 카운슬 서밋’에 참석해 “현 시점에서 GPU를 구하는 것은 마약을 구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평가했다. AI 스타트업 라미니의 샤론 저우 CEO 역시 “(GPU) 부족 때문에 업계의 누구를 아는지가 중요해졌다”며 “(GPU는) 팬데믹 시기 화장지와 같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 엔비디아 GPU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최신 GPU를 주문하더라도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동아DB]
엔비디아의 성공은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엔비디아는 1분기 매출 71억9000만 달러(약 9조5000억 원)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65억2000만 달러)를 10% 상회했다. 엔비디아는 2분기 매출 가이던스(전망치)도 110억 달러(약 14조5000억 원)로 올려 잡았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71억5000만 달러(약 9조4400억 원)를 54% 상회하는 규모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 JP모건(500달러)과 뱅크오브아메리카(450달러) 등도 실적 발표 이후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대폭 상향했다.
SK하이닉스 최대 수혜 전망
엔비디아가 올해 호실적을 예고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국내 기업 가운데 엔비디아와 협업이 두드러지는 곳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생성형 AI에 사용되는 D램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제품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4세대 HBM인 HBM3를 공급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트렌드포스는 GPU 수요가 급증하면서 여기에 탑재되는 HBM의 수요가 지난해 대비 58%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삼성전자 역시 엔비디아의 고객사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HBM에 인공지능 프로세서를 결합한 HBM-PIM(프로세싱인메모리)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고(高)밸류에이션 논란’은 엔비디아가 넘어야 할 과제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6월 1일 기준 엔비디아 주가수익비율(PER)은 208배에 달한다. 미국 S&P500 지수의 평균 PER(24.2)과 비교할 때 월등히 높은 수치다. 김한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인하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며 “거시경제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AI 시장의 성장 등) ‘재료’의 설득력이 굉장히 높아 특정 종목군을 중심으로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한 주가에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도 적잖다. 실제로 엔비디아 주가는 5월 31일 5.68% 내렸다.
하지만 AI 시장이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고밸류에이션 부담이 점차 완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재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로 갈수록 데이터 센터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엔비디아는 다른 반도체 기업보다 밸류에이션이 높지만 AI를 통한 고성장이 지속된다면 할증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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