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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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냐 배터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삼성전자’ 산 외국인, ‘포스코’ 고른 개미 간 혈전… 2차전지 지나친 낙관 경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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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3-04-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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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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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런 버핏이라면 2차전지 기업에 손대지 않을 것이다. 2차전지 관련 주식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역사적 데이터가 부족해 가치를 계산하는 것이 어려워서다. 시간이 지나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판명이 날 것이다. 단, 중간 과정은 부침이 클 수밖에 없다. 이 진폭을 감내할 수 있느냐가 본질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4월 5일 ‘주간동아’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성장주에 속하는 만큼 누구도 2차전지 열풍의 결말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만의 고민이 아니다. 연초부터 상승세를 이어가는 주식시장을 두고 투자자들은 심경이 복잡하다. 주식시장 전통의 강자 ‘반도체’와 떠오르는 신흥 강자 ‘2차전지’ 산업 가운데 어느 쪽에 투자할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해서다. 버핏이라면 2차전지주를 사지 않을지 몰라도, 2차전지주를 사지 않으면 버핏 꽁무니도 못 쫓을 분위기다. 개인투자자(개미)와 외국인 투자자가 두 산업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는 등 시장 참여자들은 제각각 판단을 내리고 있다.

    동학개미들 외인에 설욕하나

    올해 주식시장에서 개미와 외국인 투자자가 서로 카드를 바꿔 들고 맞붙었다(표 참조). 지난해 개미들은 반도체 기업을 사고 2차전지 기업을 팔았다. 당시 개미들의 순매도 1위는 ‘LG에너지솔루션’이었고, 순매수 1위는 ‘삼성전자’였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2차전지 기업을 사고 반도체 기업을 팔았다. 삼성전자를 개미에게 팔면서 ‘삼성SDI’를 산 것이다. 결과는 외국인 투자자의 승리였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29.37% 하락한 반면, 삼성SDI는 9.77% 하락하는 데 그치며 코스피(-24.89%)를 상회했다.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동학개미들이 역사대로 공주 우금치에서 격퇴당했다”는 자조가 나온 배경이다.

    올해 상황은 반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개미 순매수 1위 기업은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든 포스코홀딩스다. 포스코그룹은 계열사 포스코케미칼 사명을 ‘포스코퓨처엠’으로 변경하고, 전남 광양에 수산화리튬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등 2차전지 시장에 진심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 순매수 1위는 전통의 반도체 강자인 삼성전자였다. 개미와 외국인 투자자 각각의 순매도 1위 종목 역시 삼성전자와 포스코홀딩스로 엇갈렸다. 주식시장의 두 주체가 1년 사이 포지션이 정반대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승기는 개미들이 잡고 있다. 4월 6일 기준 포스코홀딩스의 주가 상승률은 31.10%로 삼성전자(12.66%)를 2배 가까이 앞질렀다. 포스코의 상승세는 약과다. 개미들의 ‘최애픽’인 2차전지 기업의 주가는 매섭게 오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2차전지테마’ ETF(상장지수펀드)는 연초부터 4월 6일까지 79.33% 올랐다. 해당 ETF는 △에코프로비엠(14.06%) △에코프로(13.11%) △엘앤에프(10.65%) △포스코퓨처엠(9.10%) △LG에너지솔루션(7.57%) 등 한국의 주요 2차전지 관련 기업들로 구성됐다. 같은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11.57%, 28.42% 올랐지만 2차전지 섹터의 수익률에는 한참 못 미친다. 사실상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지수를 끌고 가는 모양새다.



    실제로 2차전지 산업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국내 주요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차전지는 지난해 99억8100만 달러(약 13조1500억 원) 상당이 수출됐다. 반도체 수출액(약 169조9361억 원)의 7.72%에 그치는 규모지만 전년도 대비 수출액이 15.1% 증가하는 등 매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는 같은 기간 수출 규모가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고금리 여파로 경기가 둔화되면서 지난해 8월부터 전년 대비 수출 규모가 감소하는 양상이 이어진 탓이다.

    전기차 시장, 2030년까지 20%대 성장

    2차전지 성장세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부지침이 3월 31일(현지 시간) 공개됐는데 한국 2차전지 산업에 긍정적인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큰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상자기사 참조). 관련 시장의 성장 전망도 밝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의 합산 전기차 시장 2022~2026년 연평균 26% 성장할 것으로 분석된다. 2027~2030년 연평균 성장률이 20%로 낮아진다지만, 전체 경제성장률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다.

    2차전지 산업이 지금보다 더 성장할 것이라는 시각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현 주가가 성장에 대한 기대를 어디까지 반영하고 있는지 확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 역시 “가치평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2차전지 산업 지형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주가가 조정받을 여지가 있다며 주의를 요했다. 김학균 센터장은 “핵심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안은 2차전지 기업들이 완성차업계로부터 지금의 마진율을 지켜낼 수 있을지, 박리다매 구조로 산업이 재편되지 않을지 등인데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차전지 산업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배터리 관련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줄어들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에코프로비엠의 글로벌 경쟁력, 특히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 부문에서 탁월함은 당분간 대체불가”라면서도 “향후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K-양극재 업체 간 경쟁만 남아 있다고 보는 시각은 지나친 낙관”이라고 평가했다. 한 연구원은 “중국, 유럽, 일본 업체가 한국 업체들에 대항하기 위해 합종연횡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올해 ‘반도체주’ 매수에 나선 배경에도 2차전지와 달리 과거부터 데이터가 충분히 쌓였고,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 또한 성숙해 가치 평가가 안정적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둔화기에 반도체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전례 역시 반도체주 매수에 힘을 더했다. 한국 반도체 대장주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9월 30일 장중 기록한 5만1800원이 사실상 바닥이라는 시각이 중론이다. 반도체 ETF SOXX는 연초부터 4월 5일까지 22.17%상승하며 지수를 상회했다.

    ISM 지수 50↓ 지속

    경기지표 역시 지난해 4분기부터 ‘반도체 매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제조산업의 업황을 알려주는 미국 ISM 제조업 구매관리자 지수(ISM 제조업지수)는 지난해 11월 49.0을 기록한 후 50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그래프 참조). 일반적으로 해당 지수가 50을 웃돌 경우 경기 확장을, 밑돌 경우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투자업계에서는 ISM 제조업지수가 47을 밑돌 경우를 투자 적기로 본다. 경기 위축이 상당 부분 주가에 반영된 만큼 경기 회복기에 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ISM 제조업지수는 41.5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각 산업의 특성을 이해한 후 매수할 것을 권했다. 2차전지 산업의 경우 스스로 가격 부침을 견딜 수 있을지를 숙고한 다음 투자에 나서라는 것이다. 김학균 센터장의 말이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닷컴버블 당시 시가총액 최상위를 차지하던 기업이다. 이후 버블이 꺼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식자 아마존은 주가가 90% 하락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60% 떨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주가는 그 이상으로 뛰어 지금 자리에 올랐다. 성장주는 안 가본 길을 걸어가고, 그중 위대한 기업이 탄생한다. 2차전지 기업들이 버블이라는 것도, 위대한 기업이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성장주에 속해 가격 변동이 클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

    한숨 돌린 IRA 세부지침, 공급망 다각화가 변수

    미국 재무부가 3월 31일(현지 시간) 전기차 보조금 지급과 관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지침 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추출 및 가공한 배터리 광물을 40% 이상 쓰거나, 생산·조립한 부품을 50% 이상 사용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는 최대 3750달러(약 494만 원) 보조금을 받는다.

    IRA 세부지침에는 양극판·음극판을 ‘배터리 부품’으로 규정하고, 양극 활물질을 구성 소재(광물)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기는 등 한국 기업에 유리한 내용이 상당히 반영됐다. 그간 한국 기업들은 중국,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에서 관련 광물을 수입해온 만큼 IRA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이번 세부지침 발표에 따라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추출·가공 중 한 과정에서만 50% 이상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르헨티나처럼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광물을 수입하더라도 국내에서 이를 가공해 부가가치 기준을 충족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다만 중국산 광물의 사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여전해 공급망 다각화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 5일 “이번 하위규정에는 양·음극재를 부품에서 제외하고, 반도체 지원법 가드레일 조항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는 등 우리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면서도 “반도체 보조금 수령 조건, 신청 과정에서 제출 정보 범위,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상존한다”고 평가했다. 추 장관은 이와 관련해 “범정부적으로 미국과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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