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75

..

“스타트업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기업, 어려울 때일수록 반드시 성과내야”

김학주 한동대 교수 “경쟁력 갖춘 스타트업은 어려운 시기 끝나면 더 강해질 것”

  • reporterImage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3-02-06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이 ‘지금처럼 어려울 때는 복지부동하며 일단 견디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얘기한다. ‘어차피 돈이 없어 투자도 어렵지 않느냐’는 이유에서다. 잘못된 생각이다. 스타트업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기업’이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없으니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 시간을 버는 것 아닌가. 반드시 주어진 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우선순위를 잘 가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학주 한동대 ICT창업학부 교수는 1월 30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주간동아’와 인터뷰를 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고금리 시기가 지속되면서 스타트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투자심리가 얼어붙어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2017년 본격적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이래 지금 같은 혹한기는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한동대에서 ICT창업학부장을 맡으며 스타트업 6개를 창업해 운영 중인 스타트업 전문가다. 바이오와 핀테크(금융+기술), 친환경 등 신성장 분야 기업을 두루 운영하고 있다.

    김학주 한동대 ICT창업학부 교수. 
 [지호영 기자]]

    김학주 한동대 ICT창업학부 교수. [지호영 기자]]

    연구, 투자, 그리고 창업

    처음부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삶의 경로가 특이하다. 증권계와 학계. 스타트업계를 종횡무진했다. 1989년 현대증권(현 KB증권)에서 증권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2년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6년부터 4년 동안 리서치센터장을 맡았다. 2006년부터 3년간 ‘아시아머니’의 한국시장 최우수 애널리스트로 선정되는 등 ‘업계 최고’로 인정받던 그가 발길을 돌린 곳은 자산운용사다. 기업 연구를 하산하고 기업 투자에 뛰어든 셈이다. 2013년까지 우리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맡아 자산 운용을 총괄했고, 이후 회사를 옮겨 2015년까지 한가람투자자문 CIO 겸 부사장을 지냈다. 연구, 투자, 그다음은 창업이었다. 이쯤 되면 ‘기업 전문가’로 불릴 만하다. 고금리 시기를 맞아 기업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스타트업은 올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김 교수에게 ‘스타트업이 고금리 시기를 슬기롭게 보낼 수 있는 법’을 물었다.



    스타트업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

    “펀드매니저로 일할 때는 여러 제약을 받았다. 투자처에 제약이 생기고, 사고 싶었던 주식도 충분히 못 사게 되는 일이 생겼다. 흥미가 점점 떨어지더라. 지금이야 한국에 상장기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2010년대만 해도 공부할 만한 종목이 많지 않았다. 비상장기업 투자를 시작했는데 이쪽 영역은 공부한 만큼 성과가 나오더라. 결국 벤처캐피털(VC)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장순흥 당시 한동대 총장이 창업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후학 양성을 하면서 창업을 같이해보라’고 권했다.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창업하는 일을 50 대 50으로 병행하고 있다.”

    가장 먼저 창업한 스타트업은 어떤 회사였나.

    “미생물 관련 회사였다. 투자할 때 인구 구조를 많이 본다. 특히 노화에 관심이 많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뇌 관련 질환이 많아질 것 같았다. 뇌가 무척이나 예민한 만큼 기존 약물이나 화학약품, 항체 등의 활용에도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생물의 분비물은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효과는 떨어질 수 있지만 부작용도 적다. 미생물을 잘 관리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과거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일한 덕분에 신성장산업에 대해 두루 알 수 있었다. 세계적인 미생물학 권위자 빌헬름 홀자펠 교수도 한동대에 있어 도움을 받았다.”

    스타트업을 처음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나뿐 아니라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어려움이 있다. 스타트업은 VC 측에 ‘투자해주면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VC 입장에서는 ‘스타트업이 예수도 아니고 보지 않고 어떻게 믿느냐. 보여주면 투자하겠다’고 말한다(웃음). 이 때문에 스타트업이 보여줄 수 있는 성과물의 우선순위를 정해 잘 정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려주는 데이터를 먼저 보여줘야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그다음에 초기 투자금을 활용해 더 나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를 통해 더 큰 자금을 구하면 생산시설을 깔거나 기술이전 계약, 납품 계약 등을 해 회사를 더 키우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스타트업이 가진 것은 결국 사람”

    초기에 잠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처음부터 대규모 투자금을 펀딩받으려고 기업 지분을 희석하는 경우가 있다. 30억 원 상당의 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자금 15억 원을 마련하려고 지분 절반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행위를 몇 번 하다 보면 설립자와 핵심 연구 인력의 지분이 매우 미미해진다. 이는 인력 유출로 이어지기 쉽다. 일할 때 신바람이 나겠는가.”

    창업 그룹이 스타트업 지분을 어느 정도 보유하는 것이 좋은가.

    “미국은 5% 미만의 지분을 보유하더라도 대주주가 용서하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은 적어도 30% 지분은 가지고 있어야 ‘스타트업에 애정을 갖고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면 내부 트러블을 겪지는 않나.

    “스타트업이 가진 것은 결국 사람뿐이다. 창업은 굉장히 힘들다. 직원들이 정말 일을 사랑하고, 워커홀릭이 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다. 비전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것이 종종 간과되곤 한다. 스타트업은 조직이 작고 불안정한 상태다 보니 종업원들이 자기 일이 아닌데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일이 아닌데 왜 해야 하느냐’며 싸우기 쉽다. 회사가 쪼개지는 사례도 꽤 봤다. 조직원들을 잘 설득해 VC에 약속한 성과가 나올 때까지 조직을 끌고 가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다. 각자가 자신을 조금씩 희생하더라도 일단 조직을 살려놓아야 다음에 큰 성과가 오지 않겠나.”

    성과에 대한 평가도 갈릴 것 같다.

    “스타트업 내부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고객들에게 피력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핀테크 기업을 창업했는데, ‘소비자가 원하는 맞춤형 보험상품과 대출상품을 소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물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면 소비자들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지갑을 열 정도는 아니다. 금융업에서 수익을 내려면 이용자의 경제적 이익을 확실히 보장하거나 편리성을 혁신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은 스타트업 옥석 가리는 시기”

    스타트업은 최근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의 ‘2022년 연간 벤처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벤처투자는 6조764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9% 감소했다(그래프 참조). 1·2분기 동안 증가세를 보이던 투자 액수는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벤처투자 금액이 전년 동기 대비 43.9% 감소하는 등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폭은 더 커지고 있다. 중기부는 “시장 경색 전 검토한 투자 건들이 상반기까지 집행된 반면, 3분기 들어 고물가-고금리가 벤처투자 시장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분위기가 반전되지 못한 만큼 올해 역시 쉽지 않은 시기가 예상된다. 그렇지만 김 교수는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런 혹한기가 한 번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금리 국면을 맞아 스타트업 업계가 특히 버거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스타트업은 시중 자금에 굉장히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장은 돈을 못 벌겠지만 미래에 이것을 하겠다’며 나중을 얘기하는 기업이다. 투자를 받지 못하면 미래를 얘기할 수도 없다. 다만 지금 같은 긴축 상황은 소중한 때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중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어서다. 스타트업을 키워 힘들게 상장시켰지만 내실이 부족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기업이 많다. 지금 시기는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자원을 낭비하기 전 기업이 어떤 상태인지, 내부에 문제는 없는지, 재도약을 위한 새 아이디어는 없는지 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기다. 무너지는 경쟁사가 있다면 관련 자원들을 싸게 구할 수도 있다.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이라면 지금 시기가 끝나면 오히려 더 강해질 것이다.”

    해외에서도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의 감원이 스타트업 인재 충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스타트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인재를 싸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소식이다.”

    그렇더라도 업무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 같은데.

    “자금이 부족해 일을 할 수 없을 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중에 돈이 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리서치라도 계속 하고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투자자와 소통이다. 넋 놓고 있지 말고 ‘내가 이렇게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VC에 알려야 한다. 그래야 VC가 스타트업을 신뢰하고 투자할 수 있다. VC에 어필할 수 있는 일을 골라내는 것이 중요하다.”

    “창업이 직장생활보다 낫다”

    김학주 교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스타트업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건전한 스트레스라는 입장이다. [동아DB]

    김학주 교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스타트업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건전한 스트레스라는 입장이다. [동아DB]

    운영 중인 스타트업 가운데서도 경영 전략이 조정된 곳이 있나.

    “세계적으로 핀테크업계가 어렵다. 좀 더 냉정하게 업무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고객들이 지갑을 열 만한 비즈니스를 만들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내부에 해당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경쟁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할 수도 있다. 두 스타트업의 역량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고객들에게 근사한 비즈니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한 핀테크 스타트업을 다른 곳과 M&A하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에 불안감을 느끼는 청년도 많다.

    “창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스트레스는 모두 비슷하게 받는다. 다만 스트레스 종류가 다르다. 후자의 경우 동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흔한데, 이는 불건전한 스트레스다. 반면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건강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보상 역시 창업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대기업과 비교하면 스타트업 임금이 당연히 낮겠지만 스타트업은 ‘월급보다 지분’이다. 인공지능(AI)가 발달하면서 향후 많은 사업이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변화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물이 들어오는 곳에서 노를 젓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최진렬 기자

    최진렬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 바이오 사업 ‘조 단위 매각’ 추진

    ‘트럼프 2기’ 핵심 실세는 장남 트럼프 주니어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