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선진국은 매년 또는 3년마다 갱신
이번 글에선 동물등록과 관련된 해외 정책 가운데 국내 도입 필요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동물등록 갱신제’입니다.현재 한국은 동물등록 갱신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반려견 동물등록을 처음 한 번만 마치면 그걸로 끝입니다. 주소·연락처 변경, 소유권 이전·사망 등 특이사항이 있지 않으면 첫 등록 후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죠. 하지만 해외는 다릅니다. 미국, 독일, 호주, 영국, 싱가포르 등 선진국에선 반려견 보호자가 매년 혹은 3년에 한 번꼴로 동물등록을 갱신해야 합니다. 일정 비용을 내고 갱신 절차를 밟아 주소·연락처 등을 가장 최신 정보로 유지하도록 하는 거죠.
호주 퀸즐랜드주 짐피시의 동물등록 갱신제 홍보물. [호주 퀸즐랜드주 짐피시 페이스북 캡처]
선진국이 동물등록 갱신제를 도입한 데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동물등록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동물등록제는 유기동물 발생을 줄이고 반려견을 잃어버렸을 때 빨리 되찾을 수 있게 하려고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동물등록을 했음에도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지 못하는 불상사가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내장형 칩(마이크로칩)이 아닌 외장형 태그로 동물등록을 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외장형 태그는 떨어지거나 손상되면 반려견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반면 내장형 칩은 훼손 가능성이 거의 없어 외장형보다 동물등록 실효성이 높고 보호자에게 다시 돌아갈 확률이 큽니다. 문제는 내장형 칩으로 동물등록을 해도 반려견을 찾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인데요. 바로 동물등록 정보가 잘못돼 있는 경우죠. 동물등록 갱신제를 시행하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 비영리단체 도그스 트러스트(Dogs Trust)의 ‘2018~2019 유기견 보고서(Stray Dogs Report)’에 따르면 이 기간 내장형 칩이 있음에도 보호자에게 돌아가지 못한 유기견(유실견 포함)은 78%가 ‘등록된 정보가 갱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장형 칩으로 동물등록을 했더라도 관련 정보를 갱신하지 않으면 동물등록제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는 겁니다.
반려동물 정책 재원으로 활용 가능
둘째는 반려동물 관련 정책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한국 정부는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을 검토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고 계획을 철회한 바 있습니다.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일정 세금을 부과해 양육 책임감을 높이고 해당 세금을 반려동물 관련 정책에 활용하겠다는 게 정부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보유세라고 하니 보호자 입장에선 정부가 반려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것 같고 마치 사치품을 소유해 세금을 내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거죠.반려동물 관련 행정 서비스 요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동물보호·복지 예산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관련 세금 도입은 분명히 필요해 보입니다. 이때 동물등록 갱신제를 도입해 재원을 마련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반려견 동물등록이 의무이기에 정기 갱신을 통해 세금을 걷으면 ‘보유세’에 비해 보호자의 거부감이 낮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법인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실시한 ‘2023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선 응답자의 93%가 ‘정기적인 동물등록 갱신제’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이제 한국도 동물등록 갱신제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