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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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쿠르드족, 이번엔 독립 염원 이룰까

이라크, 시리아서 IS 격퇴에 혁혁한 공 세워 … 주변국 반대로 분쟁 뇌관 될 수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7-10 16: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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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드족은 전 세계에서 국가가 없는 최대 단일민족이다. 4000년 역사, 3500만여 명 인구, 고유 언어와 문화 등 단일민족 국가를 세울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쿠르드족은 ‘중동의 집시’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국가를 세우지 못했다. 이들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 국경에 걸쳐 있는 ‘쿠르디스탄’이라는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평균 고도 3500m 산악지대인 쿠르디스탄은 말 그대로 척박한 땅이다. 이 때문에 쿠르드족은 중동 각국은 물론 유럽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다. 터키 1600만 명, 이란 600만 명, 이라크 500만 명, 시리아 200만 명을 비롯해 아르메니아, 레바논, 아제르바이잔 등에 각각 60만~70만 명이 살고 있다.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에도 각각 10만여 명씩 이주해 있다.



    캅카스 계통 ‘중동의 집시’

    아랍 민족과는 전혀 다른 캅카스(코커서스) 계통인 쿠르드족은 7세기 무렵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흥한 이슬람이 세력을 확대하자 이민족으로선 최초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이후 쿠르드족은 이슬람에 없었던 음악을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1세기 십자군이 점령했던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훗딘(살라딘)도 쿠르드족 출신이다. 쿠르드족은 그동안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지만 강대국의 배신과 주변국의 반대,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 오죽하면 ‘쿠르드족에게는 친구가 없고 산(山)만 있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다.

    이라크 정부군이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이라크 내 최대 근거지인 모술을 3년 만에 사실상 탈환하면서 쿠르드족의 독립 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이어 제2 도시인 모술은 터키와 시리아를 잇는 교통 요지인 데다 유전과 가까워 경제수도로도 불리는 곳이다. 특히 모술은 IS가 국가를 선언한 상징적 장소다. IS 최고지도자 아부바크르 알바그다디는 2014년 6월 29일 모술에 있는 기울어진 첨탑 ‘알하드바 미나렛’으로 유명한 알누리 모스크에서 ‘칼리프 국가’ 창설을 선언한 바 있다. 이후 IS는 모술에서 행정조직을 운영했고, 화폐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라크 정부군은 2월부터 모술 탈환 작전을 벌여 강력하게 저항해온 IS를 패퇴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등공신은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가 운영해온 ‘페슈메르가’(peshmerga · ‘죽음에 맞서는 자’라는 뜻)라는 일종의 민병대였다. 이라크 정부군이 모술 남서쪽에서 순조롭게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은 페슈메르가가 모술 동쪽에서 IS의 주의를 끌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이었다. 페슈메르가 대원 1만여 명은 모술 탈환 작전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IS 전사들과 전투를 벌였다. IS가 이라크에서 세력을 확대하지 못한 것은 쿠르드 자치정부가 북부지역에서 버텨줬기 때문이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미국을 지원한 대가로 북부지역에 자치정부를 세웠다. 인구 3800만 명의 이라크는 북부 쿠르드족, 남부 시아파 아랍계, 서부와 북부 일부의 수니파 아랍계 등 3개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영토는 공식적으로 다후크, 아르빌, 술라이마니야 등 3개 주이지만 정부군이 IS와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후퇴한 니나와, 키르쿠크 등 북부 4개 주도 현재 페슈메르가가 통제하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모술 탈환을 비롯해 IS 격퇴 작전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점을 앞세워 독립국가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마수드 바르자니 수반(대통령)은 9월 25일 쿠르드족 주민들을 대상으로 독립 찬반을 묻는 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공포했다. 투표에선 독립 찬성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쿠르드 자치정부가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이라크를 통치하는 시아파는 물론, 수니파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인 터키와 이란도 주민투표 실시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특히 터키는 그동안 쿠르드 자치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자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독립에는 반대한다는 의견이다. 미국 역시 독립을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우려하는 분위기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독립으로 이라크 연방이 붕괴할 경우 중동지역에서 이란의 패권이 커지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쿠르드 자치정부의 독립을 지지한다면 터키와의 관계 악화도 감수해야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다.  



    인민수비대, 미군의 지상군 구실

    시리아의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민주군(SDF)은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주축으로 한 반군 연합으로 2015년 10월 결성됐다. SDF는 IS의 수도 격인 락까를 포위하고 있다. SDF는 지난해 11월 ‘유프라테스의 분노’란 작전명으로 락까 탈환 작전을 시작했으며, 6월 말 락까로 향하는 모든 통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시가전을 벌이며 점령을 코앞에 두고 있다. SDF에는 수니파 아랍계, 아르메니아계 반군 조직도 참여하고 있으며 사실상 미군의 지상군 구실을 해왔다.

    하지만 터키는 YPG를 자국 내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해온 무장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관된 군사조직으로 보고 있다. 터키 남동부에서 1978년 설립된 PKK는 84년부터 터키 정부와 무력 충돌을 벌여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터키는 PKK와 YPG를 모두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터키는 YPG가 유프라테스 강을 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고 미국의 YPG 지원을 묵인해왔다. 터키는 5월 초 미국이 YPG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YPG가 자국의 PKK와 손잡고 시리아 북부지역에 독립국가를 창설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도 자국 내 쿠르드족의 독립을 줄곧 반대해왔다.

    쿠르드족은 시리아 북부 알레포 주의 코바니와 아프린, 하사카 주의 자지레 등 3개 지역을 통제하고 있으며, 지난해 3월 이 지역에 자치정부를 수립한다고 선언했다. 쿠르드족은 이 지역에다 IS로부터 되찾은 북부지역을 더해 시리아에서 독립된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쿠르드족은 이라크, 시리아, 터키에서 각각 독립국가 창설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해당국과 주변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이를 지지하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

    쿠르드족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제국과 전쟁을 벌인 대가로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독립 약속을 얻어냈지만, 유전을 보유한 강력한 국가가 중동에 출현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연합국과 자국 영토의 4분의 1을 내줘야 하는 터키의 강력한 반대로 독립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비운의 민족’인 쿠르드족의 독립 문제가 IS 격퇴 이후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분쟁의 뇌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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