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열린 ‘단통법 대폭 보완 및 단말기 가격 거품 제거, 통신비 획기적 인하 촉구’ 공동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단말기 유통법 망치로 스마트폰 사용자를 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 3주를 넘긴 10월 21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23길 아이파크몰 8층 휴대전화 매장. 점주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간간이 진열대 앞에서 물건 값을 물어보고 흥정하는 이는 중고 휴대전화를 구매하러 온 외국인이 전부였다. 손님인 척 한 매장 앞으로 다가갔다. 진열된 물건을 훑어보며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물으니 점주는 “단통법 때문에 손님이 10분의 1로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표 보이나. 이게 법적으로 정해진 휴대전화 지원금이다. 이거대로 안 하면 법을 어기는 게 되니까 파는 사람이 값을 깎아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고 덧붙인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신형 휴대전화 가격을 물어보며 구매할 듯한 태도를 보이자, 점주는 본격적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단통법을 어기지 않고도 좀 더 가격을 할인해줄 방법이 있다며 쓰던 중고 단말기를 갖고 오라고 한다. 그는 “중고 기기 구매 가격까지 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아니니, 본래 내 몫인 이익금을 떼어내 중고 기기 매입가에 붙여주겠다. 이렇게 하면 손님 부담이 좀 더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중고 기기가 없다”고 하자“그럼 월 통신료를 높이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통신비 지출을 늘려 휴대전화 가격을 낮추라는 건, 사실 하나마나한 얘기다. 어차피 최신 휴대전화는 대부분 LTE 전용이라 최저 요금제를 사용해도 월 부담이 3만5000원 이상이다. 소비자 부담은 높아지고, 상인들은 매출이 떨어져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에서 이익은 누가 보는 걸까,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휴대전화 매장 손님 발길 ‘뚝’
“지금 여기 상인들은 휴대전화 사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어떻게든 가격을 맞춰 한 대라도 팔아보려고 눈에 불을 켠 상황이에요. 요즘엔 우리끼리 말도 안 해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눈치만 보는 거죠.”
한 상인의 말이다. 휴대전화 시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데는 ‘폰파라치’도 한몫하고 있다. 폰파라치는 보조금을 많이 주거나 가입비 면제, 위약금 면제, 현금 제공, 1만 원 이상 고가 사은품 제공 등의 방법을 쓰는 매장을 찾아내 신고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폰파라치의 신고 대상과 포상 기준도 바뀌었다. 이동전화 파파라치 신고센터에 따르면 10월 1일부터 지원금 초과 지급 구간이 10만 원 이하인 사례를 적발하면 포상금 50만 원, 10만 원 초과~20만 원 이하면 포상금 70만 원, 20만 원 초과일 경우 포상금 100만 원을 지급한다. 또 지원금 차별 지급이나 개별계약 체결 같은 사례를 적발하면 각각 5만 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온라인을 통해 약식신청 가입을 받은 것을 적발하면 10만 원을 준다. 이러다 보니 폰파라치 활동은 크게 늘었고, 휴대전화 매장 상인들은 간간이 드나드는 손님조차 폰파라치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다른 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취재하러 온 기자라고 밝히고 요즘 분위기를 물었다. 매장 주인은 언론이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단통법 때문에 휴대전화 가격이 비싸져서 손님이 없다는 내용의 기사 좀 제발 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지금 휴대전화를 사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소문이 돌아, 정말 휴대전화가 필요한 사람조차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고 했다. 보조금 혜택이 줄어든 건 맞지만 그렇다고 휴대전화를 아예 살 수 없을 정도로 길이 막힌 건 아니라는 얘기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자꾸 휴대전화 비싸졌다, 휴대전화 안 팔린다는 얘기만 쓰지 말고 왜 휴대전화 가격이 비싸졌는지 정확히 써줘야죠. 자, 여기 보세요. 이게 최근 출시된 삼성 갤럭시S5 광대역 LTE-A G906 모델 출고가입니다. 89만9800원이에요. 근데 이게 외국에선 50만 원도 안 되게 팔리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보조금 10만 원 붙여준다고 해도 누가 제값 주고 이걸 사겠습니까. 이렇게 해외랑 국내 출고가가 차이 나는 이유가 뭔지, 진짜 출고가가 어떻게 되는지, 이걸 명확히 밝히고 휴대전화 제조사가 출고가를 낮추도록 해야죠. 보조금을 많이 주는 거나, 제품 출고가를 낮추는 거나 소비자로서는 마찬가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출고가는 높게 책정해놓고 무조건 그 가격대로 안 팔면 불법이라고 하는 구조예요.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와 우리 같은 영세상인뿐입니다. 어차피 제조사랑 통신사는 손해 안 봐요.”
점주와 대화를 나누는데 검은색 양복을 입은 건물 안전요원이 다가왔다. 모든 취재는 공식 허가를 받고 진행해야 하니 취재를 중단해달라는 것이다. 그는 “단통법 시행 전후로 모든 언론이 용산에 몰려들었다. 취재 때문에 영업에 방해를 받았고 지금은 ‘용산 장사 안 된다’는 기사 때문에 장사가 안 돼 또 타격을 입고 있다. 꼭 인터뷰를 하고 싶으면 상우회 회장과 해달라”고 했다. 방영훈 아이파크몰 상우회 회장은 상가 8층 가장자리 매장에서 휴대전화와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는 상인들 사이에서 단통법 찬성과 반대 의견이 반반 정도라고 전했다.
“우리같이 휴대전화 장사하는 사람도 휴대전화를 한 번 바꾸면 2년 이상은 써요. 그걸 생각하면 우리나라 소비자의 휴대전화 교체 주기가 너무 짧았던 게 사실이죠. 우리야 많이 팔면 좋지만 멀쩡한 휴대전화를 자꾸 바꾸는 건 낭비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잘됐어요. 법이 잘 정착만 하면 판매자끼리 과도하게 경쟁하는 일도 줄어들 거고요.”
단통법 시행 첫날인 10월 1일 오후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내 휴대전화 매장에 손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이다(왼쪽).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 상우회 소속 상인들이 10월 13일 오전 서울 을지로 SKT타워 앞에서 단통법과 관련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문제도 적잖다고 지적했다. 특히 휴대전화 보조금을 묶으면서 요금제를 그대로 둔 점이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예전엔 출고가 90만 원짜리 휴대전화도 이런저런 혜택을 받으면 거의 공짜로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게 불가능해진 거다. 차를 예를 들면, 예전엔 형편 안 되는 사람도 다 그랜저를 탈 수 있었는데 이젠 티코 타면서도 그랜저 유지비를 내야 하는 격이 된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방 회장은 최근 출시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은 갖고 있으면서 폴더폰처럼 접었다 펼치는 방식을 채택하고 버튼식 자판을 장착한 LG전자 와인샤베트였다.
“이 휴대전화 가격이 26만 원입니다. 저렴한 제품을 찾는 학생이나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연세 드신 분에게 인기가 있어요. 문제는 요금제죠. 휴대전화 요금에 따라 보조금이 차등 지급되는데 연세 드신 분들이 보조금 받자고 비싼 요금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럴 경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데요. 외국처럼 다양한 가격대의 휴대전화가 출시되고, 요금도 그에 맞게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휴대전화 유통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단통법 취지에 맞는 시장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고 휴대전화 판매상 쪽은 어떨까. 중고 휴대전화 매매업체 아이비에스 박준식 대표는 “중고매매상의 경우 새 제품을 판매하는 곳처럼 매출에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다만, 딱히 수요가 늘어나지 않았는데도 매매가는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단통법 시행 후 공급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생긴 현상이다.
“중고 휴대전화 판매가격이 단통법 시행 이전보다 10%가량 오른 듯합니다. 구매 문의도 많아졌고요. 요즘엔 중고 단말기에 대한 인식도 좋아져 잘만 고르면 새 제품 못지않게 깨끗하게 쓸 수 있다는 걸 많은 분이 알잖아요. 무엇보다 중고 기기를 구매하면 약정제도에 발목 잡힐 일이 없고, 요금제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장점이죠.”
박 대표는 중고 휴대전화 매매의 경우 단통법 후폭풍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거래가 음성화되는 건 문제라고 밝혔다. 수출 분야에선 자동차 등 다른 품목에 비해 세제 혜택이 적고 내수의 경우 10% 부가세 납부 등으로 마진율이 낮아 현금거래를 선호하면서 거래가 음성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휴대전화 거래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 단통법 제정 목적이라면 신제품과 중고품 구분 없이 모두가 수긍할 만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0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단말기유통법 해법 모색 토론회’.
일부 언론은 단통법 시행 후 국내 휴대전화 매장의 매출은 감소하는 대신 구매대행업체나 해외직접구매(직구) 사이트를 통해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이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회사원 조형진(41)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최근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일본과 대만에서만 판매되는 삼성전자 갤럭시J를 구매했다. 조씨는 “갤럭시J는 갤럭시S5와 갤럭시 노트3의 중간 정도 되는 비교적 고기능 제품이다. 일본에서 아이폰에 밀려 단말기 가격이 떨어진 걸 싸게 구매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삼성은 해외구매제품도 국내에서 AS가 가능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비싼 국내 스마트폰을 구매하면서 비싼 약정 요금제에 발목 잡히는 것보다 이익”이라고 밝혔다.
조씨는 해외직구 등을 통해 구매한 휴대전화로 국내 이동통신사(이통사)에 가입하면 통화료 12%를 할인해주는 약정제도가 있지만 이조차 이용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이통사와 약정을 하면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거나 망가져서 사용하지 못하게 돼도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 해외구매대행 서비스를 통해 아내가 사용할 소니 휴대전화를 구매한 회사원 강민철(42) 씨도 국내 이통사 요금제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지금 아내가 한 달에 사용하는 휴대전화 요금이 2만 원이 채 안 되는데 요즘 휴대전화를 구매하면 최소 3만5000원짜리 요금제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에 부가세까지 붙으니 한 달에 약 2만 원은 사용하지도 않는 요금을 더 내는 셈”이라고 했다. 강씨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휴대전화 한 대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잡으면 약 48만 원을 이통사에 헌납하는 꼴인데, 보조금 몇 푼 받고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저렴한 가격에 합리적인 요금제를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를 해외에서 구매하는 게 훨씬 낫죠. AS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설 수리업체를 이용하면 수리비가 공식 AS센터보다 오히려 적게 나와요. 어차피 국내에서 구매한 스마트폰도 1년 지나면 무상 서비스가 안 되거든요.”
인터넷 해외구매대행 사이트.
“우리는 미국 배송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라 좀 다른가 하고 다른 배송대행 사이트나 구매대행 사이트 운영자들과 얘기를 나눠봤는데, 알려진 것처럼 중국산 저가 휴대전화를 구매하려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해외직구나 구매대행은 최신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려는 분이 주로 이용하거든요. 그런데 휴대전화의 경우 배송비와 관세, 환율 등을 고려하면 국내 구매 가격과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매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블랙베리처럼 마니아층이 형성된 휴대전화는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구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제 막 작동하기 시작한 단통법이 우리나라 휴대전화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예상보다 큰 상황이다. 이통사를 빼고 소비자, 판매자, 제조사 모두 불만이 가득하다. 서로 수긍할 수 있는 대안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