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지난 옷들로 터질 듯한 옷장. 옷은 많은데 입을 만한 옷이 없어 늘 고민이라면 ‘의류 공유 서비스’로 눈을 돌려보자. 정수기, 공기청정기처럼 옷도 렌털하는 시대가 열렸다. ‘금수저’가 아니어도 명품 옷과 가방을 큰 부담 없이 착장할 수 있으니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 면에서 단연 최고다.
특히 날마다 출근복 전쟁을 치르는 직장 여성에게 의류 공유 서비스는 단비와 같다. 1분 1초가 아까운 아침시간에 ‘오늘은 뭘 입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업체에서 배달돼온 신상 옷과 가방으로 날마다 ‘힙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렌털 품목 가운데 ‘데일리룩’ ‘오피스룩’이라 부르는 일상복이 가장 인기를 끄는 이유다.
이용 방법도 간단하다. 해당 업체 온라인 사이트에서 월 단위로 정액권을 끊거나 1회 이용권을 구매해 자신에게 맞는 옷을 고르면 된다. 업체에 따라서는 고객의 체형과 취향을 고려해 전문 스타일리스트들이 여러 벌의 옷을 직접 코디해 보내주기도 한다.
의류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소유보다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일명 ‘테이스트(taste) 소비’로, 물건을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맛보기’ 경험만으로 충분히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명품 · 중고가 브랜드 등 종류도 다양
이러한 소비 패턴에 발맞춰 최근에는 대기업에서도 패션 렌털 사업에 뛰어들었다. SK플래닛은 지난해 9월 ‘프로젝트 앤’(PROJECT ANNE·www.project-anne.com)을 출범했다. 출시 후 8개월 만에 가입자 15만 명을 돌파했으며 누적 이용권 판매 건수도 1만3000건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구매자의 80% 이상이 재이용객이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현재 보유 중인 상품 수는 2016 F/W 100개 브랜드 1만2000점, 2017 S/S 150개 브랜드 3만여 점이다.SK플래닛 관계자는 “저가 브랜드보다 백화점에 입점한 해외 명품 브랜드, 중고가 브랜드, 국내 신진 디자이너 물품이 주를 이룬다. 최신 트렌드를 선별해 합리적 가격에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렌털 종류는 총 5가지로 나뉜다. 먼저 옷 한 벌씩 4번에 걸쳐 빌릴 수 있는 이용권(월 8만 원)과 옷 두 벌씩 4번을 고를 수 있는 이용권(월 13만 원), 가방을 한 번에 하나씩 3번에 걸쳐 빌릴 수 있는 이용권(월 8만 원)이 대표적이다. 세 가지 모두 아이템당 최장 보름간 렌털이 가능하다. 의류 1회 이용권은 3만 원, 가방 1회 이용권은 5만 원으로 열흘간 물품을 사용할 수 있다.
SK플래닛 관계자는 “음악·영화·VOD 시장이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로 재편되고 있듯이, 패션도 소유하지 않고 가볍게 즐기는 시대가 됐다. 특히 패션은 끊임없이 새로운 옷을 입어보면서 자기 고유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어 의류 공유 서비스는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 앤은 경기 이천시 SK플래닛의 물류센터에서 배송부터 회수, 세탁, 수선, 검품 등 패션 스트리밍 서비스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고가 명품을 취급하지 않는 대신 좀 더 합리적인 가격대를 제시하는 업체도 있다. 3월 론칭한 ‘윙클로젯’(WING CLOSET·www.wingcloset.com)이 대표적이다. 윙클로젯은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빌리고 싶은 기간만큼, 횟수 제한 없이 옷을 받아볼 수 있다. 오픈 초기 유료회원 5000명을 돌파한 윙클로젯은 준비해놓은 물량이 초과 주문되면서 한 달 동안 부득이하게 신규 가입을 중단했다, 6월 중순 선착순으로 다시 유료회원을 받았다. 유료회원은 대부분 옷 때문에 고민이지만 쇼핑할 시간이 없는 직장 여성과 육아에 바쁜 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윙클로젯 이용권은 크게 ‘프리미엄 요금제’와 ‘1회 이용권’으로 나뉜다. 이용 횟수가 무제한인 프리미엄 요금제 회원은 정기 결제 시 월 9만9000원에 자신이 고른 5개 아이템 가운데 3개(piece)를 빌릴 수 있다. 새로운 옷을 빌리려면 아무 때(단, 렌털 후 최소 사흘 이후)나 기존 렌털 물품을 반납하고 새 물건을 고르면 된다. 입던 옷이 마음에 들면 회원 할인 가격으로 구매도 가능하다. 회원 가입 후 체형 등 정보를 입력한 뒤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5개 고르면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그중 고객의 취향과 스타일, 직업에 어울리는 3개를 추려 보내준다. 배송비, 세탁비는 모두 무료. 고객 스타일링은 전속 스타일리스트 5명이 전담하고 있다.
윙클로젯 관계자는 “원래 의류 제조 및 판매 업체였는데 온라인 쇼핑몰이 확대되면서 경쟁력이 떨어졌고, 지금은 해외 직접 구매까지 가세해 온라인 시장마저 포화 상태다. 새로운 기회를 잡고자 렌털 시장에 뛰어들었다. 앞으로 윙클로젯은 여성 의류뿐 아니라 남성복, 아동복, 패션 잡화, 아기용품 등으로 품목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선 이미 보편화
지난해 9월 오픈한 국내 1호 패션 공유 스타트업 ‘더클로젯’(www.theclozet.co.kr)은 의류 공유 서비스 가운데 처음으로 월정액권을 이용해 명품 가방을 빌려줬다. 또한 단순 렌털을 넘어 고객이 사용하지 않는 가방이나 원피스를 업체에 위탁해 공유하는 방식도 택했다. 사업비가 적은 스타트업이다 보니 당장 구매할 수 있는 물품 수가 적어 생각해낸 묘안이었다.월 7만9000원에 원피스 6벌 또는 명품 가방 3개까지 대여 가능한데, 고객이 자신의 가방을 1개 맡길 때마다 월정액권 비용에서 3만 원을 깎아준다. 원피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벌당 1만5000원이 할인된다. 실제로 180만 원 상당의 프라다 토트백과 90만 원 상당의 코치 백팩을 내놓고 4개월째 월정액권을 무료로 이용하는 고객도 있다.
성주희 더클로젯 대표는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고 싶어 하는 명품 가방을 저렴한 가격에, 그것도 매번 다른 것으로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다는 데 고객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옷과 가방만 잘 매치해도 누구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멋쟁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O2O(Online to Offline) 방식의 의류 공유 서비스는 해외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 대표적으로 미국 ‘렌트 더 런웨이’(www.renttherunway.com)의 성공을 꼽을 수 있다. 2009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동기인 제니퍼 하이먼과 제니퍼 퓰라이스가 창업한 렌트 더 런웨이는 회사 설립 8년 만에 회원 고객이 600만 명에 달했고, 지난해에만 총 1억 달러(약 1142억 원) 매출을 기록했다. 오픈 초기에는 파티복 중심으로 일회성 렌털만 가능했지만 중고가, 명품 브랜드 위주의 일상복 서비스(월 139달러)를 개시하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그 밖에도 2012년 오픈한 프랑스 패션 공유 업체 ‘르토트’(www.letote.com), 2014년 서비스를 시작한 ‘에어클로젯’(www.air-closet.com), 2015년 론칭한 중국 ‘MSPARIS 뉴쉔포(女神派)’(www.msparis.com) 등이 대표적인 해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한편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아마존은 최근 아마존 프라임 워드로브를 통해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의류 제품을 구매하기 전 미리 입어볼 수 있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에 한해 온라인에서 선택한 의류와 신발, 액세서리 등을 집에서 미리 착용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료로 반품할 수 있는 서비스다. 패션 렌털 산업의 빅뱅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