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천 파동을 겪은 만큼 무조건 이겨야 하는 처지다. ‘야권에 유리한 선거 여건을 전략공천으로 날렸다’는 비판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수도권 승부처에서 이기는 길뿐. 안철수 공동대표가 “서울 동작을과 수원에서 먹고 자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야가 사실상 무승부를 기록한 것과 달리, 이번 재보선에서는 어느 한쪽에 민심이 쏠릴 공산이 크다. 정면승부다.
‘주간동아’는 재보선 최대 승부처인 서울 동작을과 경기 수원벨트, 김포를 밀착 취재했다.
얼굴 알려진 유력 후보 3인방 ‘낙하산 전투’
서울 동작을
‘동작을’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7·30 재보선을 치르는 지역이다. 상징성이 높아 여야 모두 전력을 집중한다. 그러나 유권자의 시선은 곱지 않다.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와 새정치연합 기동민 후보, 정의당 노회찬 후보 등 유력 후보 3인이 모두 선거를 앞두고 ‘날아온’ 외지 정치인이기 때문.
7월 16일 서울 동작구 흑석로 중앙대병원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낯선 후보들이 찾아와 ‘지역 발전’을 얘기하는 게 넌덜머리가 난다”면서 “우리가 그렇게 힘없고 ‘배알’ 없어 보이나 수치심이 들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역 시민단체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는 ‘동작은 철새 도래지가 아니다’라는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동작을 지역구 내 사당·남성시장과 지하철 남성역, 이수역 등지에서 만난 유권자들 상당수가 전략공천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선거일까지 따져보겠다는 반응이었다.
어쩌면 당연지사다. 동작을은 공천 과정에서 유난히 잡음이 심했다. 새누리당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내세우려고 ‘삼고초려’하다 중구 국회의원 출신인 나경원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새정치연합도 광주 광산을 출마를 위해 광주에 선거사무소까지 열었던 기동민 후보를 서울로 불러 올렸다. 정의당 노회찬 후보 역시 노원병 지역구에서 당선한 인물. 또 다른 출마자인 통합진보당 유선희, 노동당 김종철 후보 중 19대 총선 때 동작을에 출마했던 김 후보가 그나마 지역 연고를 내세운다.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나경원·기동민·노회찬 후보(왼쪽부터).
재보선 초반 여론조사에서는 나경원 후보가 크게 앞서가는 형국. 이런 분위기를 파악한 듯 나 후보는 몸을 낮췄다. 앞서가는 만큼 무리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7월 16일 당 지도부의 방문 없이 조용히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치렀고, 경로당에 들러 큰절을 올리는 등 대면 접촉에 시간을 쏟았다. 자신이 노량진에서 태어났다는 걸 강조하면서 “동작의 딸이 엄마가 돼 돌아왔다. 대한민국 어머니의 힘으로 지역의 어려운 숙제들을 해나가겠다”고 인사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기동민 후보는 거물급 정치인을 활용하는 전략을 꺼내들었다. 일종의 ‘거물 연계 마케팅’이다. 7월 15일 남성역 앞에서 퇴근길 시민에게 인사하며 “박원순 시장과 일했던 서울시 부시장 기동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도 14일 사당동 남성시장을 방문하는 등 지원에 나섰고, 17일에는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 등이 기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의원총회를 여는 등 당 지도부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노회찬 후보는 ‘낡은 정치판을 바꾸자’며 여야를 싸잡아 낡은 정치판이라고 공격한다. “서민을 위해 정치해온 만큼 동작을의 머슴이 되겠다. 잘 부려달라”며 머슴론도 설파중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 지역 민심이 변화무쌍하다는 점. 최근 네 번의 총선에서 동작을은 여야 후보에게 두 번씩 기회를 줬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정몽준 전 의원을 선택했지만, 6·4 지방선거 때는 동작구에서 새정치연합 박원순 시장이 57.9%를 득표해 정 전 의원(41.4%)을 크게 앞섰다. 이 때문에 선거일 전 악재가 발생한다면 민심이 급격히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학규 vs 임태희 거물급 야전사령관 격돌
경기 수원벨트
7월 15일 선거운동 중 한 어린이가 사은품으로 받은 저금통을 유심히 살펴보는 손학규 후보(위). 7월 15일 임태희 후보가 유권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초인적인 일정에 몸은 이미 반응을 나타냈다. 수원정(영통)을 누비는 임태희 후보는 이미 입술이 터졌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수원병(팔달) 손학규 후보는 몸무게가 쑥쑥 줄어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로부터 “날씬해졌다”는 인사를 듣고 있다. 빠른 속도로 지역을 누비는 그의 ‘파워워킹’을 따라잡느라 수행원들도 숨이 가쁜 모습이다.
수원 주민은 이런 분위기를 반기고 있다. 두 거물의 화려한 경력과 ‘개인 브랜드’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된다. 아파트단지가 밀집해 학교 배치 및 대지 문제 등에 관심이 많은 영통구 광교 주민들은 임태희 후보의 경력에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비서실장까지 했던 여당 소속 인물이 우리 동네에 오면 여러 과제가 해결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다.
팔달구 우만1동 상인들이 손 후보를 만나자마자 한 말도 “아이고, 우리 손 지사님”이었다. 이들은 “예전에 경기도 투자 유치나 일자리 정책도 많이 했으니 이번에도 뭔가 성과를 내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당세가 약한 지역에 출마한 탓에 서러움도 겪고 있었다. 커피전문점에 들어선 임태희 후보가 명함을 내밀면 중·장년층은 웃으며 받아 들었지만, 이어폰을 낀 젊은 남녀는 명함 자체에 당황스러워하거나 ‘새누리당’ 마크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손학규 후보의 경우 반대 상황이 눈에 띄었다. 장년층의 경우 명함을 받으며 “지사님,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했지만, 손 후보가 자리를 뜨자 “우리는 야당은 별로…”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지역 정가 관계자들은 6·4 지방선거 당선인 ‘후광 효과’도 이번 선거에 반영될 것으로 전망한다. 새누리당 임태희(수원정), 정미경(수원을), 김용남(수원병) 후보는 같은 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당선에 대한 기대감을, 새정치연합 손학규(수원병), 백혜련(수원을), 박광온(수원정) 후보는 염태영 수원시장 재선 효과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역별 인물 경쟁 구도와 홍보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보수와 진보 두 여성 검사 출신 후보가 격돌하는 수원을(권선)에서는 마주 보는 건물에 각각 걸린 대형 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경기 수원을에 출마한 정미경, 백혜련 후보 선거사무소에 내걸린 플래카드.
수원정(영통)에서 전략공천을 받은 새누리당 임태희, 새정치연합 박광온 후보는 ‘유권자 밀착 경쟁’에 공을 들이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지역 연고가 없어, 본인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 ‘경제통’ 출신 임 후보는 지역구 곳곳을 돌며 부동산 업체나 젊은 엄마들과 대화하면서 교통·지역 문제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고 있다.
반면 언론인 출신 박 후보는 ‘과거 대 미래’를 강조하고 ‘국민의 대변인’이 되겠다는 포부다. 박 후보는 최근 주요 기업 사업장을 방문해 근로자들에게 구애 작전도 펼치고 있다. 정의당 천호선 후보 역시 버스정류장을 돌며 ‘야권 혁신’과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를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수원병에서는 새누리당 정치 신인 김용남 변호사와 민주당(새정치연합 전신) 대표 출신 손학규 후보가 경쟁 중이다. 김 후보는 ‘수원 토박이, 지역 일꾼’을 강조하며 시장과 교회, 경로당 등을 훑고 있다. 손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인지도를 높이려고 언론 인터뷰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손 후보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팔달 전통시장을 돌면서 작은 식당과 맥줏집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는 “수원 화성 세계문화유산과 연계로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상인들의 손을 꼭 잡았다.
공천 당시 기대와 달리 임태희, 손학규 투톱 카드가 나머지 두 지역 선거전을 이끄는 분위기는 크게 감지되지 않았다. 선거운동 초반 여론조사 결과 각자의 선거구가 박빙인 데다, 수원정 지역 박광온 후보와 천호선 후보 간 야권연대론이 피어나면서 본격 선거구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지역 정가의 분석이다.
한편 중앙일보-엠브레인 여론조사(7월 10~15일, 각 성인남녀 800명 대상 유무선 임의걸기(RDD)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 결과 △경기 수원을은 정미경 44.3%, 백혜련 20% △수원병은 김용남 36.1%, 손학규 34.7% △수원정은 임태희 33.7%, 박광온 21.5%, 천호선 7.3%였다.
토박이 성공 신화 vs 이장 출신 잠룡
경기 김포
“홍 후보는 여기 토박이 마당발이라 지역 현안을 잘 알고 지역사회에 기부도 많이 했죠. 김 후보는 도지사 출신 정치 거물인 만큼 김포의 교통·교육 문제를 빨리 해결할 거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폭염 특보가 내린 7월 15일 오후 경기 김포시 풍무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준호(62) 씨는 “조용하던 김포에 김두관 전 지사가 출전하면서 7·30 재보선이 재밌게 됐다”며 선거 이야기를 풀어냈다.
경기 김포는 ‘지역 일꾼론’과 ‘큰 인물론’의 한판 승부처다. 새누리당 홍철호 후보는 김포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고, 25년간 김포에서 ‘굽네치킨’이란 브랜드로 연매출 1000억 원이 넘는 프랜차이즈 회사를 키워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지역 장학사업과 축구단 단장을 맡는 등 오랜 기간 바닥 민심을 다졌다. 새정치연합 김두관 후보 역시 마을 이장에서 행정자치부 장관, 도지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힌다. 여기에 시민운동가 출신 정의당 김성현 후보와 기업인 출신 무소속 고의진 후보, 탤런트 출신 이재포 후보가 표밭을 다지고 있다. 이 후보는 7월 6일 선거운동 중 테이블에 가슴이 부딪혀 갈빗대 3대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지만 진통제를 맞으며 선거운동을 강행 중이다.
선거전략 역시 ‘지역 일꾼론’과 ‘큰 일꾼론’이 맞부딪친다. 홍 후보는 ‘바람인가? 의리인가? 김포의리!’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토박이를 강조했고, 김 후보는 ‘큰 일꾼, 더 큰 김포’를 슬로건으로 인물론을 내세운다.
7월 15일 오후 홍철호 후보는 신도시 아파트 밀집 지역 식당가를 누비며 토박이 일꾼론 점화를 이어갔다. 중학교 학부모 모임이 한창인 식당에선 “상대 후보(김 후보를 지칭)는 자기 미래 때문에 김포에 왔지만, 나는 김포의 미래를 위해 왔습니다. 김포의 시급한 교육·보육 문제를 야당 국회의원이 해내겠습니까”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의 말처럼 김포는 몇 개 신도시를 넓은 농촌지역이 감싼 도농복합지역. 2011년 12월 25만6994명에서 6월 말 현재 32만5333명으로 급격히 인구가 증가하면서 교육·보육시설 확충과 교통인프라 개선이 지역 현안으로 떠올랐다. 김포는 유정복 인천시장이 내리 3선(選)을 하면서 여당 텃밭으로 인식되지만, 6·4 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연합 후보가 시장에 당선한 곳이기도 하다. 한강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개발로 청년층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어느 한 정당의 텃밭이라고 예단하기도 어렵다.
김두관 후보 역시 지역 사정을 감안해 ‘큰 일꾼론’을 앞세운다. 같은 날 김포시민회관에서 열린 푸드뱅크 나눔 행사에서 김 후보는 독거노인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일일이 눈을 맞췄다. 김 후보는 “홍 후보는 기업가 출신으로 행정과 정치 경험이 없다. 국비를 끌어들여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협의해 교통 문제를 해결하면서 김포 소외시대를 김포 전성시대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강점인 이재포 후보는 “정당 후보는 싸우기 바쁘지만 무소속 후보는 일하기 바쁘다”며 “도시철도, 환경 문제, 기반시설 문제 등을 깔끔하게 설거지해 정리하겠다”고 여야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날 기자가 만난 김포시민 역시 50대 이상에선 대체로 여당 지지 성향을, 40대 이하는 야당 지지 성향을 보였지만, 산적한 지역 현안이 많은 만큼 야당의 ‘박근혜 정부 심판론’보다 ‘생활정치’ ‘지역 일꾼론’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였다.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광주 광산을 전략공천이 야당에겐 악재로 작용하는 듯했다. 고촌읍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박종웅(45) 씨는 “권 전 과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축소, 은폐 의혹을 제기했지만 1, 2심 재판 결과는 달랐다”며 “이런 사람을 ‘광주의 딸’이라고 치켜세우며 무리하게 전략공천을 한 야당 지도부가 과연 새 정치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중앙일보-엠브레인 여론조사 결과는 새누리당 홍철호 후보가 37.0%, 새정치연합 김두관 후보가 28.9%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