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제조업은 사면초가라고 표현하기에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문제에 둘러싸여 있다. 2010년 18.5%에 달하던 매출액 증가율이 2015년에는 -3.0%로 역성장했다. 글로벌 제조 경쟁력 순위도 2010년 3위에서 2012년과 2015년 각각 5위로 떨어졌고, 2020년 6위로 내려갈 전망이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새로운 역량을 확보해야 하는 것도 큰 숙제다. 차세대 제조업은 기존 제품·기술력에 정보통신, 바이오, 환경 등 신기술과 신서비스가 융합된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재(경기)에만 국한돼선 안 돼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성 증대, 비용 절감 등 내부 역량에만 의존하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은 역부족이다. 기업 M&A(인수합병) 같은 외부 역량에 기반을 둔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비유기적 성장 전략은 고비용-고위험을 동반하지만 성장 정체를 극복하고 융합기술을 활용한 주력사업을 고도화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최근 전 세계적으로 M&A가 급증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11~2013년 3년간 거의 정체 상태를 보이다 2014년부터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M&A는 2014년 전년 대비 약 2배 급증하는 실적을 보였다. 최근에는 거래금액이 1조 달러(약 1126조3000억 원)를 웃돌면서 2014~2016년에는 이전 3년과 비교해 115% 증가했다. 거래 건수도 10%가량 상승했으며, 건당 금액 또한 97% 증가하면서 대형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제조업은 M&A를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을까.
선진국인 미국, 독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비교할 때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다. 이전 3년과 비교해 2014~2016년 거래 금액은 29%밖에 늘지 않았다. 반면 독일은 307%, 중국 257%, 미국 107% 증가했다(표 참조). 건당 금액 증감률 면에서도 한국은 3% 늘었지만 독일은 289%, 중국 231%, 미국 88% 상승했다. 이들 국가의 제조업 M&A는 점점 더 대형화하고 있다.
인수 업종을 살펴보면 한국 제조업은 금융업과 자동차, 유통, 식품, 섬유 등 주로 소비재(경기)업종에 국한해 M&A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비해 비교국은 소비재(경기)업종은 물론이고 생명공학, 식음료, 제약 등 비경기 소비재업종과 제철, 화학제품 등 기초소재업종에서도 M&A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 제조업 M&A 가운데 금융업은 2014~2016년 이전 3년과 비교해 678.8% 증가했고, 소비재(경기)업은 175.1% 늘었다. 미국과 일본 제조업이 소비재(비경기)업종, 독일이 기초소재업과 소비재(경기·비경기)업종에서 M&A가 많이 이뤄진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편 중국은 제조·상사업, 기초소재, 금융, 통신 등 다양한 업종에서 M&A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제조업은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국경 간 M&A가 낮은 수준이다. 2014~2016년에는 이전 3년에 비해 33%가량 늘긴 했지만 이는 독일 442%, 중국 199%, 미국 40%에 비하면 결코 높은 수치가 아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지역의 기업을 인수했는지 살펴보면 한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신흥국에 72.5%가 집중된 데 비해 일본과 독일은 북미지역 비중이 각각 44.8%, 76.6%였다. 실제로 M&A로 인수된 기업의 국가를 살펴보면 북미지역이 51.3%로 절반을 차지하고 그다음이 서유럽 24.0%, 아시아·태평양 신흥국 17.9%이다. 북미는 차세대 정보기술(IT)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역이다.
한국 제조업은 M&A 유형 가운데 피인수 기업의 지배력을 확보하는 ‘기업 매수’ 유형이 많이 늘긴 했지만, 비교국(일본 제외)에 비해서는 미흡한 수준이다. M&A 유형에는 지분 50% 이상을 인수하는 기업 매수, 인수 지분 50% 미만인 소규모 투자와 사모펀드 투자 등 지분 투자를 의미하는 전략적 투자, 그리고 기타 합작투자 등 세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은 이 세 유형 가운데 기업 매수 유형이 2014~2016년 기준 이전 3년과 비교해 51% 늘었고 이는 전체 M&A에서 81%에 해당하는 수치다. 하지만 이 역시 독일(334%), 중국(288%), 미국(12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전체 M&A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따져봤을 때도 독일 97%, 중국 89%, 미국 88%로 나타나 우리나라보다 높다.
스타트업·벤처기업 대상 M&A 활성화돼야
더욱이 한국 제조업은 기술, 통신, 생명공학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업의 M&A가 저조하다. 2014~2016년에는 이전 3년과 비교해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비해 중국은 624% 늘어났고 미국 115%, 독일 122%, 일본 37% 증가를 보여 모두 한국보다 높은 수치를 자랑한다.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소프트웨어업종의 M&A가 522%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제조업에 요구되는 융합화, 서비스화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제조업 내부에서 개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간적으로도 지체될 공산이 크다. 그렇기에 한국 제조업의 M&A는 국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문제다. 국가가 직접 국내 제조업에 요구되는 핵심 기술을 보유한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로 국부펀드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확보하고,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이 나서서 제조업체들이 공통적으로 활용할 차세대 기술 또는 사업 기반을 보유한 해외 업체를 인수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국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대상의 M&A 시장을 활성화해 우수 기업을 조기 발굴 및 육성하고, 투자자금을 회수한 뒤 재투자하는 방식의 M&A 선순환 사이클이 구축돼야 한다. 제조업 변혁을 이끌 제품과 서비스, 공정과 관련된 기술 창업을 활성화하는 것뿐 아니라 기존 제조업체가 스타트업, 벤처 제조업체를 인수합병할 수 있는 여건 조성도 절실하다.
제조혁명을 정책적으로 강화 중인 중국, 독일, 일본은 4차 산업혁명 대응 및 제조업 고도화를 목표로 M&A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히 동북아 주변국의 핵심 정책 이슈인 일본의 초고령화 사회 대응, 중국의 제조혁명 강화 등에 맞서 국내 업체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전략적 M&A를 적극 시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