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하늘을 보니 학 한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무를 피해 제대로 찍으려고 몇 걸음 옮기는 사이, 벌써 몸체가 흐트러지고 꼬리가 날아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흩어졌다. 학이 아니었다. 구름이었다.
너무나 빠른 구름 속도에 놀랐다. 그 덕에 짧은 순간 마음 한쪽에서는 행복의 물결이 일었다. 앞으로 뭐든 다 잘될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학은 예부터 ‘길조’를 뜻하는 새이니 말이다. 늦은 학업으로 고생하는 후배는 학이 ‘학업과 명예의 상징’이라며 내가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다. 학처럼 보이는 구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테다.
미치오 카쿠의 책 ‘마음의 미래’에서 소개하는 신경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박사의 실험은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설명한다. 우뇌에 ‘바나나’라는 단어를 보여주고 우뇌의 지배를 받는 왼손으로 어떤 그림이든 그려보라고 하자, 피실험자는 바나나를 그렸다. 그리고 그에게 왜 바나나를 그렸는지 물었다. 우뇌의 언어중추는 바나나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왜 바나나를 그렸는지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와야 하지만, 피실험자는 이유를 모르면서도 엉뚱한 대답으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합리화했다.
혼란 속 규칙 찾기의 묘미
가자니가 박사는 “인간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 모든 것을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로 엮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좌뇌가 관장한다. 아무런 규칙이 없는 풍경에서 어떻게든 패턴을 찾아내려 애쓰고 다양한 가설을 내세우는 것은 이와 같은 성향 때문일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논리의 틈새를 메워 하나의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은 혼란스러움 속에서 ‘내가 안다’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가지려는 의도다.
혼란 속에서 규칙을 찾으려는 성향은 시지각 이론에서도 잘 나타난다. 형태심리학자 멕스 베르트하이머(M.Wertheimer)가 처음 만든 그루핑 법칙(rules of grouping)은 혼란스러운 이미지들 사이에서 닮은 정도에 따라 같은 부류를 엮는다는 단순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시각적으로 비슷한 대상끼리 그룹을 지어 인지하는 법칙으로, 모양이나 밝기 또는 색상, 크기, 무늬, 위치 등 유사한 정도를 기준으로 관계를 파악한다. 예를 들어 같은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해석하고, 도로에 그려진 점선도 하나의 선으로 인식한다. 자유롭게 흩어진 연못 속 잉어들 사이에서 같은 방향으로 줄지어 움직이는 잉어를 익숙한 선으로 파악한다. 과거 경험으로 저장된 기억들을 불러내 비교하고 해석해 편안한 상황을 만든다.
사람 얼굴은 눈, 코, 입을 포함한 동그란 모양이다. 위쪽에 눈 2개가 나란히 위치하고 아래로 기다란 코, 그 아래에 입이 자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만약 사람이 아닌 사물이 사람의 눈, 코, 입과 같은 위치에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사진작가 벨라 보소디(Bela Borsodi)는 온라인 쇼핑몰 야룩(YaLook.com)과 함께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었다. 눈, 코, 입처럼 보이는 옷의 부분들이 하나의 얼굴이 돼 영상에 등장한다. 재킷의 칼라 부분은 입이 되고, 소매 구멍 부분은 눈으로 변신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커다란 입을 크게 벌리고 야룩, 야룩 쇼핑몰 이름을 부르짖는 패션 페이스(fashion face)의 표정이 재미있다. 이러한 사물 의인화는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준다.
부부가 닮는 이유
브라질 가구 쇼핑센터 ‘Lar Center Decoration Mall’의 광고는 보는 순간 웃음이 난다. 광고에는 별다른 카피가 없다. 그저 평범한 가정집의 침실과 거실에 놓인 낡은 서랍장만 보인다. 손잡이 한쪽이 떨어져 처져 있고, 서랍 하나가 튀어나와 기울어져 있으며, 정리되지 않은 옷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그런 서랍장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위 칸에 있는 작은 서랍 2개는 사람의 두 눈처럼 보이고, 아래 칸의 긴 서랍은 입처럼 보인다. 열린 서랍에서 튀어나온 옷들은 축 처진 혓바닥 같다. 서랍장은 이제 지친 자신을 바꿀 때가 됐으니 가구 쇼핑센터로 달려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서랍장은 손잡이 모양에 따라, 서랍 길이에 따라, 열린 정도에 따라 표정이 제각각이라 더 재미있다. 힘든 하루에 지친 우리의 표정을 보는 것 같다. 어느새 무생물 가구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애정을 보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시로 닮은꼴 찾기 놀이를 한다. 얼마 전 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했던 한 지인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사진 속 부부들의 얼굴은 아무리 자리가 뒤섞여도 한눈에 찾을 수 있을 만큼 눈과 입의 생김새뿐 아니라, 얼굴 전체 분위기가 비슷했다. 부부는 서로 닮아서 끌린 것일까, 아니면 같이 살다 보니 닮아진 것일까. 유난히 눈에 잘 들어오는 상대의 모난 마음이 나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닮은꼴이 주는 위안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