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인(死因), 사망 장소 및 시간과 관련해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 권력 내부의 말 못할 사정 때문에 사인과 사망 시간 및 장소를 조작했을 수도 있다”는 ‘음모설’까지 제기되는 상황. 북한 매체의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진 김 위원장의 사인은 ‘중증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성 쇼크의 합병’이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몇 꼭지의 보도 기사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12월 17일 열차 안에서 서거했다”며 김 위원장의 죽음이 과로로 인한 것임을 애써 강조했다. ‘현지지도의 길에 나섰다 죽음을 맞았다’는 내용과 사망 장소가 ‘열차 안’임을 몇 번씩 반복했다.
응급치료 안 했나 못 했나
처음 의혹을 산 부분은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한 북한 매체의 이례적 보도 태도였다. 김 위원장 사망 이틀 후인 12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은 특별방송을 예고하고 그 첫 기사로 ‘김정일 동지의 질병과 서거 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라는 제하의 보도를 내보냈다. 그 보도에는 “18일 진행된 병리해부 검사에서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 대북전문가는 “자칭 민족 영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을 알리는 첫 보도가 사망 원인에 대한 의학적 보고서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더욱이 ‘위대한 영도자’가 죽은 다음 날 바로 부검까지 하고 그걸 첫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알린 이유가 무엇일까. 뭔가 말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첫 보도였다. 김 위원장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 말하기 껄끄러운 내용을 숨기거나 권력 내부에서도 그와 관련된 의문이 도출됐음을 증명하는 보도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 사망 첫 보도의 이례성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비교하면 금세 알 수 있다. 그해 북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 주요 언론은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심장혈관과 동맥 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던 중 겹쌓이는 정신적 과로로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했고 심장쇼크가 합병됐으며 모든 치료를 다했으나 심장쇼크가 악화돼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은 이틀 후에 알린 반면, 김 주석은 하루 만에 사망 사실을 보도했다. 응급치료를 받고 하루나 한나절을 견디다 죽은 점과 부검 시간(병리해부 검사)이 필요했음을 감안하면 기민한 대처였다. 부검 사실도 김 주석의 경우 공개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추후에 알린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첫 보도의 제목은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 동지 서거’로 ‘의학적 결론서’라는 이번 보도와는 천양지차다.
또 하나의 의문은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의 사인이 놀랍게도 똑같다는 점이다. ‘심근경색+심장쇼크’와 과로. 한 가지 다른 점은 김 주석의 사망 보도에는 “심장혈관과 동맥 경화증을 앓아 치료를 받아왔다”는 그간의 병력 사실을 공개했지만 김 위원장의 경우에는 그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는 것. 김 위원장은 ‘육체적 과로’였고, 김 주석은 ‘정신적 과로’라는 표현만 다를 뿐이다. 또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김 주석은 응급치료를 받고 하루나 한나절 동안 숨을 쉬다 죽은 반면, 김 위원장은 ‘심근경색과 심장쇼크가 온 야전열차 안에서 죽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3의 장소 사망설에 대한 진실
바로 이 대목에서 ‘과연 김 위원장이 열차에서 그 시간에 사망한 게 맞는가’라는 의문이 도출된다. 음모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진 병력이 있고 고혈압에 당뇨까지 있는 사람을, 그것도 일반인도 아닌 위대한 영도자를 영하 12℃의 추운 열차에 타게 했다면 일부러 죽이려 한 거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심근경색이 활동적인 사람에게, 또한 추운 날씨 상황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김 위원장은 이미 2008년 뇌졸중 등 치명적 혈관 질환을 앓았는데, 이런 사람은 3년 안에 심장 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열차 안 사망설이 의심을 받는 의학적 근거는 또 있다. 김 주석의 사망 당시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그사이 심장 혈관 관련 응급의술은 놀랍도록 발전을 거듭했다. 북한 의료 수준이 열악한 상황임을 감안해도 김 위원장이 이미 혈관 질환으로 응급 상황을 겪은 만큼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즉사했다는 것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 실제로 김 위원장이 탔다는 열차의 객차 총 20량 중 4량은 ‘병원열차’였다. 응급 상황에 대비하려고 그 나름대로 준비해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움직이는 대학병원이었던 셈. 그가 평소 머물던 주석궁을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병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변모시켰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박창규 고려대 구로병원 심혈관센터 교수(심장내과 전문의)는 “중증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정지 상태(심장쇼크)에 대한 응급조치의 성패는 환자가 처한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심장정지가 발생한 즉시(5분 이내) 우리 대학병원 수준의 응급실에 도착했다면 막힌 혈관을 뚫어 살려낼 수 있다. 우리 수준의 의학 기반과 대학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했다는 조건을 두고 보면 살아날 확률은 95% 정도다. 5%는 막힌 혈관을 뚫는 과정에서 죽는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한 가지 의문을 추가했다.
“김 위원장이 3~4년 전 이미 심근경색이 발병해 독일 의사들로부터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은 것은 의료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고혈압, 당뇨 등 모든 성인병을 앓고 있었다. 이런 환자는 3년 안에 치명적인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상황이 재발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전공 의사라면 누구나 안다. 북한 의사들이 무수한 현장지도와 흡연을 말렸는데도 김 위원장이 강행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 중 하나다.”
실제 김 위원장은 2011년 143차례 현장지도를 나가고 죽기 이틀 전인 12월 15일에도 평양의 대형마트를 찾았다. 12월 들어 9회째 한 현장지도였다. 이와 관련해 2008년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을 당시 치료를 맡았던 프랑스 신경외과 전문의 푸랑수아 자비에 루 박사의 증언은 김 위원장의 ‘무리한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처음엔 김 위원장인 줄 몰랐다. 의식이 없고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환자를 직접 봐야 치료할 수 있다고 우겼는데, (내가 환자를 보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 북한 의사들은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북한 의사들은 김정일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매우 불안해했다.”
과연 김 위원장은 어디서 언제 왜 죽었을까. 사망 이후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북한 의사들은 왜 김 위원장의 무리한 행보를 방치했을까. 김 주석 사망 때도 사망 장소가 평양 주석 집무실이 아니라 묘향산 향산초대소였다는 설에서부터 암살설까지 대두됐다. 묘하게도 김 위원장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설도 아버지를 그대로 답습하는 형국이다. 김 위원장의 죽음에 대한 진실도 통일 후에나 알 수 있을 듯하다.
응급치료 안 했나 못 했나
처음 의혹을 산 부분은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한 북한 매체의 이례적 보도 태도였다. 김 위원장 사망 이틀 후인 12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은 특별방송을 예고하고 그 첫 기사로 ‘김정일 동지의 질병과 서거 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라는 제하의 보도를 내보냈다. 그 보도에는 “18일 진행된 병리해부 검사에서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 대북전문가는 “자칭 민족 영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을 알리는 첫 보도가 사망 원인에 대한 의학적 보고서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더욱이 ‘위대한 영도자’가 죽은 다음 날 바로 부검까지 하고 그걸 첫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알린 이유가 무엇일까. 뭔가 말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첫 보도였다. 김 위원장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 말하기 껄끄러운 내용을 숨기거나 권력 내부에서도 그와 관련된 의문이 도출됐음을 증명하는 보도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 사망 첫 보도의 이례성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비교하면 금세 알 수 있다. 그해 북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 주요 언론은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심장혈관과 동맥 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던 중 겹쌓이는 정신적 과로로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했고 심장쇼크가 합병됐으며 모든 치료를 다했으나 심장쇼크가 악화돼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은 이틀 후에 알린 반면, 김 주석은 하루 만에 사망 사실을 보도했다. 응급치료를 받고 하루나 한나절을 견디다 죽은 점과 부검 시간(병리해부 검사)이 필요했음을 감안하면 기민한 대처였다. 부검 사실도 김 주석의 경우 공개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추후에 알린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첫 보도의 제목은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 동지 서거’로 ‘의학적 결론서’라는 이번 보도와는 천양지차다.
또 하나의 의문은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의 사인이 놀랍게도 똑같다는 점이다. ‘심근경색+심장쇼크’와 과로. 한 가지 다른 점은 김 주석의 사망 보도에는 “심장혈관과 동맥 경화증을 앓아 치료를 받아왔다”는 그간의 병력 사실을 공개했지만 김 위원장의 경우에는 그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는 것. 김 위원장은 ‘육체적 과로’였고, 김 주석은 ‘정신적 과로’라는 표현만 다를 뿐이다. 또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김 주석은 응급치료를 받고 하루나 한나절 동안 숨을 쉬다 죽은 반면, 김 위원장은 ‘심근경색과 심장쇼크가 온 야전열차 안에서 죽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8년 8월 뇌졸중을 앓고 난 후 공식석상에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 왼손이 부자연스럽다.
바로 이 대목에서 ‘과연 김 위원장이 열차에서 그 시간에 사망한 게 맞는가’라는 의문이 도출된다. 음모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진 병력이 있고 고혈압에 당뇨까지 있는 사람을, 그것도 일반인도 아닌 위대한 영도자를 영하 12℃의 추운 열차에 타게 했다면 일부러 죽이려 한 거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심근경색이 활동적인 사람에게, 또한 추운 날씨 상황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김 위원장은 이미 2008년 뇌졸중 등 치명적 혈관 질환을 앓았는데, 이런 사람은 3년 안에 심장 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열차 안 사망설이 의심을 받는 의학적 근거는 또 있다. 김 주석의 사망 당시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그사이 심장 혈관 관련 응급의술은 놀랍도록 발전을 거듭했다. 북한 의료 수준이 열악한 상황임을 감안해도 김 위원장이 이미 혈관 질환으로 응급 상황을 겪은 만큼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즉사했다는 것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 실제로 김 위원장이 탔다는 열차의 객차 총 20량 중 4량은 ‘병원열차’였다. 응급 상황에 대비하려고 그 나름대로 준비해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움직이는 대학병원이었던 셈. 그가 평소 머물던 주석궁을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병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변모시켰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박창규 고려대 구로병원 심혈관센터 교수(심장내과 전문의)는 “중증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정지 상태(심장쇼크)에 대한 응급조치의 성패는 환자가 처한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심장정지가 발생한 즉시(5분 이내) 우리 대학병원 수준의 응급실에 도착했다면 막힌 혈관을 뚫어 살려낼 수 있다. 우리 수준의 의학 기반과 대학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했다는 조건을 두고 보면 살아날 확률은 95% 정도다. 5%는 막힌 혈관을 뚫는 과정에서 죽는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한 가지 의문을 추가했다.
“김 위원장이 3~4년 전 이미 심근경색이 발병해 독일 의사들로부터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은 것은 의료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고혈압, 당뇨 등 모든 성인병을 앓고 있었다. 이런 환자는 3년 안에 치명적인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상황이 재발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전공 의사라면 누구나 안다. 북한 의사들이 무수한 현장지도와 흡연을 말렸는데도 김 위원장이 강행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 중 하나다.”
실제 김 위원장은 2011년 143차례 현장지도를 나가고 죽기 이틀 전인 12월 15일에도 평양의 대형마트를 찾았다. 12월 들어 9회째 한 현장지도였다. 이와 관련해 2008년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을 당시 치료를 맡았던 프랑스 신경외과 전문의 푸랑수아 자비에 루 박사의 증언은 김 위원장의 ‘무리한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처음엔 김 위원장인 줄 몰랐다. 의식이 없고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환자를 직접 봐야 치료할 수 있다고 우겼는데, (내가 환자를 보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 북한 의사들은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북한 의사들은 김정일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매우 불안해했다.”
과연 김 위원장은 어디서 언제 왜 죽었을까. 사망 이후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북한 의사들은 왜 김 위원장의 무리한 행보를 방치했을까. 김 주석 사망 때도 사망 장소가 평양 주석 집무실이 아니라 묘향산 향산초대소였다는 설에서부터 암살설까지 대두됐다. 묘하게도 김 위원장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설도 아버지를 그대로 답습하는 형국이다. 김 위원장의 죽음에 대한 진실도 통일 후에나 알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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