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자 이 바다…영원한 해군의 어머니
홍은혜 고(故) 손원일 제독 부인(1917. 8. 11~2017. 4. 19)“해군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고, 젊은 군인들이 내 자식 같아요.”
평생 해군과 해군 장병,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을 위해 헌신해 ‘해군의 어머니’로 불리며 존경받은 고인에게 해군 사랑은 운명이었다. 고인은 22세인 1939년 3월 당시 30세 청년 손원일과 결혼했다. 이후 손원일 제독이 초대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하면서 해군과 인연을 맺었다.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구매하고자 해군 장병 부인들과 폐품 수집, 삯바느질로 자금을 모으는 데 앞장선 일화는 널리 알려졌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발발과 함께 부산으로 향하던 북한군 수송선을 격침해 해군의 최초 해전 승전 기록을 남겼다.
또 해군 사관생도들이 일본 군가에 한글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고인은 손 제독이 쓴 ‘바다로 가자’ 가사에 곡을 붙였다.
‘해군사관학교 교가’ ‘대한의 아들’ 등도 작곡했다. 6·25전쟁 중에는 해군부인회 회원와 함께 해군병원에서 부상자를 돌보고, 정전 이후에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공장과 탁아소, 유치원, 식당 등을 지어 전사자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1983년 신사임당상을, 2009년 손원일 제독 탄생 100주년에는 해군으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해군이라면 그가 만든 경쾌한 행진곡풍의 ‘바다로 가자’를 수백, 수천 번 목청껏 불렀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 바다 위에 이 몸과 맘을 다 바쳤나니./ 바다의 용사들아 돛 달고 나가자 오대양 저 끝까지./ 나가자 푸른 바다로 우리의 사명은 여길세./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하여.’(군가 ‘바다로 가자’ 1절)
한국 심리지도를 만든 여론조사 대부
박무익 한국갤럽 회장(1943. 7. 13~2017. 4. 19)
“여론조사는 대중심리의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국내 여론조사의 대부 격인 고인은 한국인의 심리를 정확히 읽어내는 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1987년 직선제로 치른 13대 대통령선거 당시 저녁 6시 투표 종료와 동시에 ‘노태우 당선’이라는 국내 첫 예측조사를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당선인 득표 표준오차 0.4%p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고, 2010년 무선전화 무작위 전화걸기방식을 도입했다.
‘1%의 여론 승부사’였던 고인은 1970년 금성사(현 LG전자) 광고 선전부에 취직했다. 광고회사가 없던 시절 카피라이터로 이름을 날렸다. 제일기획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74년 국내 최초 전문 조사회사 KSP(Korea Survey Polls)를 설립했다.
KSP는 1979년 갤럽국제조사기구 회원사가 되면서 사명을 한국갤럽조사연구소로 개칭하고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KSP가 갤럽 회원사가 된 것은 고인이 미국 여론조사의 선구자 조지 갤럽 박사의 저서를 국내에 번역·출간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92년 한국조사협회 설립을 이끌었고, 1997~98년 3대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조사연구학회와 ‘한국갤럽논문상’을, 한국통계학회와 ‘한국갤럽학술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통계의 날인 2013년 9월 1일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생전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조사기관의 임무는 우리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사자료를 제시하는 것이다. 선진 조사기법을 도입해 신뢰도 높은 조사를 하겠다”며 끊임없이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