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 초유의 상황은 차기주자와 함께 대선 레이스를 완주한 캠프 주요 인사들이 곧 차기정부 대통령비서실과 내각 등 포스트에 포진할 가능성을 높인다. 현재 차기주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핵심 인사들은 단순히 대선 레이스를 돕는 참모에 그치지 않고, 차기정부를 함께 꾸려갈 섀도캐비닛(shadow cabinet) 성격도 띠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의 측근 인사들을 ‘주간동아’가 주목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검증이 끝난,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고 자평한다. 그렇다. 문 전 대표는 검증이 끝난, 이미 한 차례 낙선한 대통령 후보다. 더는 검증할 게 없는, 그래서 더는 다를 게 없는 후보. 그런 그가 재수 끝에 당선의 영광을 안을 수 있을까. 경쟁자뿐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의구심이 제기되는 건 더 쓰라린 일이다. 지난 대선 이후 4년 2개월, 대선후보 지지율 1위라는 압도적인 독주 속에서도 문 전 대표는 여전히 안팎의 의구심에 직면해 있다. 문 전 대표는 스스로 “변했다”고 한다. 혹자는 “독해졌다”고 평가한다. 대선을 앞두고 발간한 저서 제목만 봐도 확 달라졌다. 지난 대선 출마가 ‘초인간적’인 힘에 이끌린 ‘운명’(2011년 6월 발간)이었다면, 이번 대선은 ‘문재인이 답하는’ 대선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최근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를 펴냈다. 그에게 이번 대선은 운명이 아닌, 의지의 문제인 셈이다.
문재인의 복심, 1m 측근
문 전 대표 측근 그룹만 봐도 ‘달라진 문재인’이 엿보인다. ‘문재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크게 변화했다. 이념, 계파, 분야를 넘나드는 인맥이 더해졌다. 지난 대선에서 문 전 대표 측근 그룹은 참여정부 출신 인사가 중심인 ‘친노(친노무현)계 시즌2’ 색채가 짙었다면, 이번 대선은 ‘친문(친문재인)계 시즌1’이라 부를 만하다. 참여정부와 노란 틀을 벗어나 ‘문재인의 정치’를 ‘문재인의 사람’과 열겠다는 고심이 담겼다.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고선 문 전 대표의 삶을 설명하기 어렵다. 문 전 대표는 이번 저서에서 노 전 대통령을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회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긴 시간의 모습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112쪽)
원하든, 원치 않든 문 전 대표의 정치사는 노 전 대통령에게서 시작했고 이어졌다. 문 전 대표 최측근이 참여정부에 맥이 닿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기 전 법무법인 부산을 중심으로 꾸려진, 소위 ‘부산팀’의 좌장이었다.
정치인의 최측근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운명공동체’다. 상황에 따라 전면에서 물러날 수도, 앞장설 수도 있는 그룹이다. 문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빠지지 않는 이들이 이호철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 민주당 전해철 의원, 양정철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실 홍보기획비서관 등 이른바 ‘3철’이다. 이번 대선에선 이들은 ‘측근 정치’ 논란을 차단하고자 대부분 후방으로 물러섰다.
이 전 비서관은 지난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후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 상황에 따라 언제든 지원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전 의원은 현재 민주당 최고위원이다. 국회를 떠난 문 전 대표와 당 지도부 사이에서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 이들 중 공개 활동이 가장 활발한 건 양 전 비서관이다. 그는 지난해 문 전 대표가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날 당시에도 동행했다. 이번 대담집 발간에도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비서관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비서실 부실장을 맡았다.
문 전 대표의 언론 대변인을 담당하는 민주당 김경수 의원과 당내 경선 룰 논의 과정에서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는 황희 의원도 참여정부 시절부터 문 전 대표와 연을 맺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 자문위원을 맡았던 노영민 전 의원은 문 전 대표 캠프의 조직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최근 문 전 대표의 지지자 모임 ‘더불어포럼’을 꾸리는 데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지난 총선 당시 ‘시집 판매 논란’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음에도 조직 구축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문 전 대표의 신임이 두텁다고 한다.
문 전 대표와 정치적 명운을 함께하는 복심들과 달리, 현재 그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하는 인물의 면면에는 큰 변화가 보인다. 참여정부 출신인 친노계 인사 외에도 김해영, 김병기 의원 등 ‘문재인 영입인사’를 포함한 친문계, 그리고 계파를 뛰어넘는 화합형 인물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여의도 정치권에선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행보가 크게 회자됐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호흡을 맞춰 ‘박원순 라인’으로 꼽히던 그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해 비서실장을 맡았기 때문. 임 전 부시장은 ‘박원순 캠프’ 합류를 막판까지 검토했으나, 문 전 대표가 중책을 맡기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하면서 문 전 대표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 · 보수 인사로 외연 확장
‘전략통’으로 불리는 전병헌 전 의원도 현재 ‘문재인 캠프’에서 전략기획을 맡고 있다. 전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비서관, 대통령 정책기획비서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는 등 동교동계와 인연이 깊다. 이후 정치 행보에서도 정세균 국회의장과 친분이 두터워 ‘정세균계’로 분류됐다. 그는 지난해 말 “정권교체를 위해 문 전 대표를 돕기로 했다”고 합류를 공식 선언했다.전현희 의원은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인연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손학규계’로 분류되던 정치인이다. 전 의원은 다수 캠프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지난 총선에서 보수진영의 철옹성인 ‘강남벨트’ 가운데 핵심인 강남구에서 당선했기에 진보진영이 강남에 입성했다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 전 의원이 문재인 캠프에 합류함으로써 문 전 대표는 진보를 넘어 중도와 보수로 외연 확장을 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내외 친노·친문계로 분류되는 측근들이 문재인 캠프에 대거 포진해 있다. 원내에선 박범계, 김태년 의원 등 중량감 있는 중진급 인사와 함께 문 전 대표가 지난 총선에서 직접 영입한 10여 명의 ‘문재인 영입인사’가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원외에는 최재성, 진성준, 정청래 전 의원 등이 있다. 최 전 의원은 문 대표 시절 민주당 총무본부장과 사무총장을 지냈다. 진 전 의원은 당시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다.
‘문재인 사람들’의 외곽에는 다양한 전문가 그룹이 있다. 현재 문 전 대표의 외곽 모임은 크게 학계 인사가 주축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전문가 집단인 ‘더불어포럼’ 등 2가지다.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이끌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을 담당했던 조 교수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출신 경제학자다. 부소장은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연구위원장은 김기정 연세대 행정대학원장이 맡았다. 한완상 전 통일원 장관 겸 부총리는 상임고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한다. 추가로 최정표, 조흥식, 김현철, 이무원 교수 등 인사 17명이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 특히 싱크탱크에 포함된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 등은 진보진영과는 거리를 둔 학자로 분류된다.
전문가 지지모임인 더불어포럼은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상임고문을 맡았다. 1970년대 전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을 보유하던 채 이사장은 유신체제에 반발해 기업을 정리한 뒤 그 자금으로 민주화 인사나 핍박받는 문화예술인을 후원했던 원로다. 그 외에도 프로야구의 대표 원로 김응용 전 감독, 인기 만화가인 원수연 세계웹툰협회 회장, 안도현 시인, 유시춘 소설가, 황교익 맛칼럼리스트를 비롯해 각 분야 23명의 전문가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상임운영위원장은 유정아 아나운서, 사무처장은 안영배 전 청와대 홍보수석실 국정홍보비서관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