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학으로 감기 환자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독감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독감치료제 성분의 특허 기간 만료로 국내 제약사에서도 약을 생산하자 약품 수급이 원활해지면서 너도나도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이에 과도한 처방에 따른 내성 문제와 심각한 부작용 발생 가능성 등을 주의해야 한다. 특히 독감치료제 타미플루를 먹고 환각, 환청 등 부작용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 심지어 약 복용을 중단한 후에도 부작용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도 보고됐다.
독감치료제를 먹었을 뿐인데 아이가 갑자기 밤에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무엇에 쫓기듯 도망치며 환각, 환청 증세를 보인다는 게 이상할 수 있다. 사실 꽤 많은 약이 악몽을 꾸게 하거나 환각을 야기하는 등 ‘중추신경계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 몸에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기능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약물이 뇌로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보호막이다. 이를 혈액뇌관문(blood brain barrier · BBB)이라고 부르는데, 정상적인 뇌 조직에서는 이 장치가 색소, 약물, 독성물질 등 이물질이 뇌로 들어가는 걸 막는다. 그런데 뇌 조직에 이상이 발생하면 이 장치가 파괴될 수 있다. 이 경우 외부 물질 등이 쉽게 뇌로 침투해 독성을 퍼뜨린다. 특히 아이는 혈액뇌관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 뇌에 약물이 침투하기 쉽다. 이에 따라 중추신경계 부작용을 더 심각하게 겪는다.
뇌혈관 질환 치료제처럼 뇌에 직접 작용하는 약은 애초부터 혈액뇌관문을 잘 통과하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약 외에도 의도치 않게 혈액뇌관문을 통과해 신경계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1세대 항히스타민제다. 콧물, 알레르기 약을 먹으면 졸음이 오는 이유도 바로 이 약이 혈액뇌관문을 통과해 뇌에서 각성 작용을 하는 ‘히스타민’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고혈압 약을 복용한 노인 환자가 악몽을 꾸는 사례가 많은데, 이 또한 약이 뇌에 침투해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이때는 복용약 성분을 바꾸면 밤마다 시달리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초록색 물약 소화제가 사라진 이유도 바로 중추신경계 부작용 때문이다. 위장관 운동을 도와 소화불량과 구토 같은 증상 치료에 사용되던 ‘메토클로프라미드’ 성분의 약이 혈액뇌관문을 통과해 근육 움직임에 이상을 일으키고 심하게는 파킨슨병 같은 증상까지 야기하는 사실이 확인돼 ‘일반 약’ 판매가 중단됐다. 최근 부작용 보고가 가장 많은 ‘트라마돌’이라는 진통제 성분 또한 가볍게는 어지럼증, 심하게는 환각, 환청 같은 부작용을 빈번히 일으킨다.
이렇듯 감기, 두통, 소화불량 등을 치료하기 위해 누구나 쉽게 처방받아 복용하는 약 중 일부는 중추신경계 부작용 발생 우려가 있다. 부작용이 의심되면 가까운 약국이나 병원에 문의해야 한다. 부작용은 대부분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사라지지만 이를 무시하고 계속 복용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타미플루 역시 어린이를 포함한 환자에게 정신착란, 환란 등을 일으킨다고 보고돼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세 미만 영아에게도 타미플루 사용을 허가했으나 타미플루 처방 가이드라인을 보면 어린이는 독감 자체와 약물로 인한 혼돈, 이상행동 등이 나타날 수 있으니 각별히 관찰하라는 내용이 있다. 또한 이 약은 심각한 피부 점막 이상인 스티븐스존슨증후군(Stevens-Johnson Syndrome)을 야기할 수 있다. 타미플루 복용 후 피부에 붉은 반점이나 물집이 생기면 즉시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물론 이런 심각한 부작용은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 치료가 꼭 필요한 질병에 약물 복용을 기피할 이유는 없다. 다만 특이한 부작용을 반드시 인지하고 몸의 변화를 잘 관찰해 부작용이 심각하게 지속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