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는 ‘인도양의 진주’라 부르는 자그마한 섬나라다. 경치가 아름답고 차(茶)문화가 발달한 데다, 불교 유적을 비롯해 유네스코 세계유산만 무려 8곳이라 관광객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스리랑카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해상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다. 아랍과 중국 상인이 오가던 스리랑카는 로마시대 지도에도 표시됐을 정도로 동서 해상교역로에 위치해 있다. 중국 명(明)나라 때 환관 출신 제독으로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한 정화(鄭和·1371~1433)도 1407년 9월 스리랑카에 들러 물과 식량을 조달했다. 당시 정화는 중국어, 타밀어(스리랑카 현지어), 페르시아어(당시 국제어) 등 3개 국어로 쓴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스리랑카는 21세기에도 에너지 수송로와 교통의 허브이자 인도양 관문으로서 ‘전략 요충지’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과 인도는 그동안 스리랑카를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군사적 전략 거점 확보 의도
특히 중국 정부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창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 ·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자 스리랑카에 막대한 물량 공세를 펴왔다. 해상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출발해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벵골 만·인도양-아라비아 해-중동·아프리카까지 연결하는 바닷길을 말한다. 중국은 그동안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고자 동남아, 인도양, 아프리카의 에너지 및 화물 수송로에 위치한 국가들과 정치와 외교는 물론, 경제와 군사 협력까지 맺는 등 관계를 강화하면서 주요 항구를 단계적으로 확보해왔다. 중국의 이런 계획을 이른바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ls)’ 또는 ‘진주사슬(珍珠金連)’ 전략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지도에서 중국이 확보한 항구들을 연결해보면 진주목걸이처럼 보인다. 진주는 ‘검은 진주’인 석유를 말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제해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은 진주목걸이 전략을 통해 에너지와 화물 수송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자국 함정들이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진주목걸이 전략의 대상이 되는 항구들을 보면 미얀마 차우퓨, 방글라데시 치타공, 스리랑카 콜롬보와 함반토타, 파키스탄 과다르, 지부티 오보크, 수단 포트수단, 탄자니아 바가모요, 남아프리카공화국 리처드 만 등이다.중국 정부는 1월 초 스리랑카에 건설 중인 함반토타 항을 99년간 관리·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함반토타 항은 중국 정부가 14억 달러(약 1조6000억 원) 차관을 제공해 건설 중이며, 완공 시 대형선박의 접안이 가능한 서남아시아 최대 항구가 된다. 스리랑카 정부는 중국 국유기업 자오상쥐에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 지분 80%를 넘기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자오상쥐는 이 항구에 11억2000만 달러(약 1조3000억 원)를 투자해 스리랑카 항만청과 8 대 2 지분으로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항해 안내, 도선, 항만 경비, 창고, 선적 등 항구 운영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또 자오상쥐는 이 항구의 안전을 유지할 책임도 지녀 중국 해군 군함과 잠수함도 기항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이에 앞서 스리랑카 콜롬보 항 인근 지역에 14억 달러를 투자해 새로운 항구도시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항구 도시는 108ha(108만㎡) 규모인데, 20ha(20만㎡)는 중국이 완전 소유하며 나머지 토지는 99년간 임차하는 조건이다.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교통건설이 현재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콜롬보 항은 과거부터 중동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항이었다. 이로써 중국 정부는 스리랑카의 가장 중요한 항구 두 곳을 접수하게 되는 셈이다.
중국과 아시아 잇는 물류 요충지
중국 정부는 이미 파키스탄 서부 과다르 항의 43년간 운영권을 따냈다. 중국과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해 11월 13일 과다르 항에서 중국 컨테이너선의 첫 출항 기념식을 열고 앞으로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아라비아 해에 면한 과다르 항은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4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서쪽으로 400km, 파키스탄 주도 카라치에서 동쪽으로 43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과다르 항은 수심 14.5m로 파키스탄에서 유일하게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항구다. 이에 과다르 항은 석유가 풍부한 중동, 천연자원이 풍부한 중앙아시아, 석유와 천연자원을 대량 소비하는 중국과 아시아를 잇는 물류 요충지라는 말을 들어왔다. 또 아라비아 해와 인도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사기지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 항구를 확보하고자 파키스탄 정부와 과다르 항부터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카스까지 3000km를 연결하는 경제회랑 사업에 합의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이 경제회랑에 460억 달러(약 53조5008억 원)를 투입해 고속도로, 철도, 송유관, 광케이블, 산업단지 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의 해외 단일 국가 투자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중국 정부는 과다르 항의 안전 확보를 명분으로 해군 군함을 파견해 파키스탄 해군과 공동 경비 작전을 펼칠 계획이다. 과다르 항은 앞으로 중국 해군의 정보 수집 전초기지가 될 개연성이 높다. 미군의 페르시아 만에서 활동과 인도 해군의 인도양 및 아라비아 해에서 활동, 미국과 인도의 합동 작전 등을 손쉽게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또 아프리카 북동쪽 아덴 만의 서쪽 연안에 있는 소국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인도양과 홍해를 잇는 길목에 자리 잡은 지부티의 앞바다는 세계 상선의 30%가 다닐 정도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오보크 항은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다. 중국은 5억9000만 달러(약 6872억3200만 원)를 투입해 10년간 지부티 항만 사용권을 확보했으며 임대료로 연간 2000만 달러(약 232억9000만 원)를 지급한다. 항만 사용권은 10년마다 연장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현재 무기고를 설치하고 군함 및 헬기 방호시설과 대형 활주로를 만들고 있으며, 해군 육전대(해병대)와 특수부대 등 40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킬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모두 21차례에 걸쳐 함정 60여 척을 아덴 만과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해 항해 안전 수호 임무를 수행해왔다. 중국 함정들은 이를 명분으로 인도양을 자유롭게 항해하고 있는데, 연말 지부티 오보크 항 기지가 완공되면 보급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중국 정부는 탄자니아 바가모요 항 개발에도 100억 달러(약 11조6470억 원)를 투자했다. 바가모요 항은 아프리카 대륙횡단 철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철도는 아프리카 서부 앙골라를 가로질러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의 구리 벨트를 거쳐 동부 탄자니아 바가모요 항까지 연결된다. 중국 정부는 또 바가모요 항을 자국 해군 군함의 정박 및 보급 기지로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진주목걸이 전략에 따라 전략요충지라 부르는 각국 항구를 더욱 많이 확보할 경우 전 세계 바다의 ‘지배자’가 될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