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발달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쏟아지지만, AI 기술의 한계로 정작 사라질 직업은 단순노무직밖에 없으리라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욱이 ‘AI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생긴 만큼 오히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클 수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AI는 지난해 3월 바둑 AI인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와 한국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대국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알파고는 ‘딥 러닝’이라는 방식으로 스스로 학습하며 실력을 키웠다. 딥 러닝은 컴퓨터 안에 인간 뇌와 유사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ANN)을 설치해 기계가 스스로 추론하고 판단하며 그 결과를 학습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인간만의 특성인 학습능력과 컴퓨터의 빠른 연산능력을 모두 갖춘 AI가 등장하자 AI가 사람의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늘어났다.
단순노무직은 100% 대체 가능?
1월 3일 한국고용정보원은 어떤 직업이 얼마나 AI나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KAIST(한국과학기술원) 등 국내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의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2016년 한국 전체 직업 종사자의 업무수행능력 중 12.5%를 AI나 로봇이 대체 가능하며 이 비율은 2020년 41.3%, 2025년 70.5%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직종별로 보면 2025년 단순노무직(90.1%), 농림어업 숙련종사자(86.1%)가 AI나 로봇으로 대체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하지만 전문가들은 10년 뒤 확실히 줄어들 직업은 단순·반복 업무뿐이라고 주장한다. 박상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지능정보연구본부 본부장은 “많은 시간이 흘러 AI가 고도로 발달한다면 지금 인간이 하고 있는 일의 상당 부분을 AI가 처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10년 뒤 가까운 미래에 대다수 직업이 AI로 대체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청소나 조립 등 단순노동은 이미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 직업과 판단을 요하는 직업은 AI가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암 진단 프로그램, 법조 지원 프로그램, 자동 회계 프로그램 등이 이미 사용되고 있지만 AI는 자료를 모아 해결책을 제시할 뿐 책임을 질 수 없다. 이 때문에 AI의 분석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 결정을 내릴 인간의 구실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설문조사에서도 청소원, 주방보조원 등 단순노무직은 2025년까지 100%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회계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의 대체 가능성은 각각 22%, 29%로 다른 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복잡한 계산은 인간이 AI를 따라갈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이 개입되는 부분까지는 아직 AI가 인간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철학적 문제나 도덕적 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은 한동안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10년 뒤쯤 AI의 발달로 위협을 받을 직군은 운전사뿐이라는 극단적 주장도 나왔다. 한국미래기술연구원 관계자는 “기계화·자동화로 지금부터 사라지고 있는 직업을 제외하면 10년 뒤 AI의 도전을 정면으로 받는 업무는 ‘차량 운전’ 정도다. 그러나 AI 기반의 자율주행자동차도 안전성 등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해 2020년쯤에나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2030년이 지나면 보편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인간 감정 이해할 AI 요원
반면,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1월 2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황규희 선임연구원팀은 AI 시대에 필요한 직무역량을 조사한 ‘지능정보기술 확산과 숙련수요의 변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AI 선진국인 미국의 직업정보서비스 ‘오넷(O*NET)’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했다. 오넷은 매년 현직 종사자와 직업분석가가 628개 분야별 직무 역량에 중요도 점수(5점 만점)를 매겨놓은 데이터를 갖고 있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AI 도입 전인 2002년과 AI 자동화가 한창 진행된 2016년의 직무역량 중요도 점수를 비교했다. 이 기간 중요도 점수가 크게 오른 역량이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이라고 본 것이다.조사 결과 사람을 직접 대하고 이해하는 직무역량이 공통적으로 점수가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점수가 가장 많이 오른 역량은 ‘설득력’으로, 2002년 평균 중요도가 1.75점에 그쳤지만 지난해 2.77점으로 1.02점 올랐다. ‘협상력’은 1.66점에서 2.63점으로 0.97점 올라 상승폭 2위였고, ‘사회적 공감능력’도 2.23점에서 3.18점으로 올랐다.
정보기술(IT)업계에서도 인간에 대한 공감능력을 AI의 궁극적 한계로 보고 있다. 사티아 나델라(50)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 ‘파이낸셜타임스’와 공동 인터뷰에서 “만약 의사라는 직업이 AI에 의해 자동화된다고 해도 간호사나 복지사 등의 인력은 모자랄 것이다. 즉 AI가 보급된 사회에서 가장 희소성을 갖는 능력은 타인과 공감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AI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과 직업의 관계를 연구하는 김한준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사람을 대하는 직종과 창작·예술 분야를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봤다. 그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군은 기술적·경제적 이유로 AI가 대체하기 어렵다. 일례로 소프트뱅크의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가 일본 일부 상점에서 판매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이는 일종의 전시 마케팅에 불과하다. 일단 페퍼를 운용하는 가격이 아직 일반 종업원을 고용하는 것에 비해 비싸다. 게다가 AI는 고객의 가지각색 요청에 일일이 응대해줄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창작·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AI도 소설을 쓰거나 작곡을 하는 등 창작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AI가 만든 창작물을 인간이 예술로 받아들일지는 또 다른 문제다. 컴퓨터 피아니스트의 한 치도 틀리지 않은 연주보다 약간의 오차가 있어도 감성이 담긴 인간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사랑받는 것처럼 예술 분야에서는 AI가 인간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