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1월 둘째 주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은 크게 높아졌다. 민주당 정당 지지율이 41%에 이르고, 차기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문 전 대표가 20%대 박스권을 뚫고 31%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은 12%로 민주당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고, 범여권 주자로 여겨지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지지율도 20%에 그쳤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대선은 후보 개인과 후보를 공천한 정당의 팀플레이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문 전 대표 지지율과 민주당 지지율이 다른 후보, 다른 정당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은 문 전 대표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하다는 방증이다. 다음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은 헌법재판소(헌재)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이 내려지면 그로부터 60일 뒤, 기각되면 올 연말께 치르게 된다. 만약 2월 안에 헌재가 탄핵을 결정한다면 두 달 뒤인 4월에 대선을 실시한다.
1월 둘째 주를 기준으로 시간을 거슬러 석 달 전 여론조사 결과는 어땠을까. 당시는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직전이다. 10월 둘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 28%, 민주당 26%, 국민의당 12%였고 차기주자 지지율은 반기문 27%, 문재인 18%, 안철수 9% 순이었다. 최순실 게이트와 그로 인한 대통령 탄핵정국이 국내 대선지형을 얼마나 급격하게 바꿔놓았는지 여론조사 수치는 잘 보여주고 있다.
탄핵정국을 거치며 문재인 대세론이 형성될 조짐을 보이자 비문(비문재인) 진영에서는 문재인 집권 저지를 위한 ‘반문(반문재인)연대’를 꾀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정권교체뿐 아니라,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고장 난 정치 시스템을 교체하라고 요구한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구체적으로 국가 통치 시스템 개조를 위한 임기 단축 개헌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일 개헌 관련 토론회에서 “차기 대선은 결국 현행 헌법에 따라 시행하고, 당선된 대통령 임기를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로 줄일 수밖에 없다”며 임기 단축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이에 화답하듯 반 전 총장을 미국 뉴욕에서 만나고 돌아온 새누리당 충북 출신 의원들도 “총선과 대선 시기를 맞추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에 대해 (반 전 총장은) ‘유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 정치권은 임기 단축 개헌론을 매개로 개헌 대 호헌, 문재인 대 반문재인 대립구도가 형성되는 듯했다.
개헌 대 호헌, 문재인 대 반문재인
자력으로 문재인 대세론을 뛰어넘기 어려운 여야 대선주자들이 임기 단축 개헌을 고리로 빅텐트 아래 모일 수 있다는 전망이 한동안 여의도 정치권을 지배했다. 1월 초 만난 정치권 한 인사는 “문재인 대세론이 현실화되면 차차기를 노리는 주자들은 5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임기 단축 개헌을 하면 3년 뒤 기회가 찾아온다”며 “고령에 혈혈단신인 반 전 총장이 차차기를 노리는 대선후보들을 하나로 꿰는 방안으로 임기 단축 개헌 카드를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국가 통치 시스템 개조를 위한 개헌을 명분으로 내세워 여러 정치세력을 한데 모으면 단독 집권을 꿈꾸는 문재인 진영이 자연스럽게 고립될 것”이라고 내다봤다.그러나 1월 12일 귀국한 반 전 총장이 ‘임기 단축 개헌’ 대신 ‘정치교체’를 언급하면서 ‘제3지대론’ ‘빅텐트론’은 급속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반 전 총장이 독자적인 대권 행보에 나서면서 관망하던 제3지대 대선주자들 역시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반 전 총장이 귀국 후 첫 일성으로 “고장 난 국가 통치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에 동의하는 세력과 힘을 합치겠다”고 선언했다면 이후 국민 여론이 어떻게 흘러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