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는 피해자에 가깝다.’
법원이 1월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내린 잠정 결론을 풀어보면 그렇다.
영장 기각 사유에서 핵심은 역시 대가관계였다. 그게 법원을 납득시킬 정도로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가관계는 적어도 두 가지 행위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으로, 뇌물죄의 근간을 이룬다.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도와준 행위와 이 부회장이 최순실 일가 및 미르·K스포츠재단에 430억 원을 준 행위가 대가관계에 있다고 봤다. 하지만 조의연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그 두 행위가 범죄를 구성할 정도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고 보지 않았다.
제3자 뇌물죄에서 빠질 수 없는 부정한 청탁도 조 부장판사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조 부장판사는 18시간에 걸쳐 영장을 심사한 끝에 1월 19일 오전 4시 53분 무렵 기각 결정을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정식 재판보다 더 신중한 결정이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법원이 받아들인 것만 놓고 보면 박 대통령과 삼성의 거래 의혹은 검찰 수사 결론 수준이다. 검찰 수사에선 이 부회장이 청와대와 최순실 측의 겁박에 의해 돈을 건넨 피해자다. 가해자는 삼성, 현대자동차, SK, 롯데, 포스코 총수의 주머니를 턴 박 대통령 측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중대 고비를 맞았다. 애초부터 수사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인지, 뇌물죄 구도를 계속 끌고 갈 것인지 다시 검토해야 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박 대통령으로 향하던 칼끝도 멈칫하면서 파죽지세의 수사 동력이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영장 기각에 대해 한 트위터리안은 “법이 정의를 외면하고 또다시 재벌 권력의 힘 앞에 굴복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반면 한 누리꾼은 “구속만이 정의가 아님을 알고 국가 경제도 생각해야 한다”며 강경 일변도의 특검 수사에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