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무정부 상태입니다. 중앙정부는 사태 수습을 지방정부에 미루고, 도는 군에 미루고, 군은 농가를 압박해요. ‘농가가 중앙정부, 지자체(지방자치단체) 역할 다 하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러스가 증폭되고 퍼져나가는 걸 막을 수 있겠습니까.”
홍기훈 동일농장 대표의 얘기다. 홍 대표는 충북 음성군과 진천군에서 동일농장 이름으로 양계장 5개를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음성군 삼성면 소재 양계장 닭이 2016년 12월 16일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육계 1만3000마리 가운데 4000마리가 폐사하고 나머지 9000마리는 살처분했다. 이 작업을 진행 중이던 21일 홍 대표는 “멀쩡히 살아 있는 닭을 모조리 죽여야 하는 처참한 심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닭을 청정구역에서 안전하게 기르려 노력했는데, 당국의 늑장대응으로 피해를 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동일농장은 닭 사육밀도가 낮고 관리 상태가 우수해 정부로부터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은 곳이다. 그동안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는 가축은 면역력이 높아 AI 같은 전염병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농장까지 AI가 들이닥쳤다.
홍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AI 발생 농장을 방문했던 공무원을 통해 감염이 확산됐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한 공무원이 우리 농장에 다녀간 다음 날 닭 1000마리가 한꺼번에 죽었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오죽하면 정부랑 지자체가 바이러스를 증폭해 우리 농장에다 대고 뿌렸다는 생각까지 들겠느냐”며 “아직까지는 의심이고 추정일 뿐이지만, 조만간 이를 확인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낼 것”이라고 했다.
홍 대표만이 아니다. 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분노와 울분에 사로잡힌 축산농민이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2월 21일 0시 기준으로 도살 처분됐거나 도살 예정인 가금류는 전국 2084만9000마리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체 가금류의 12.6%에 해당한다. 특히 알을 낳는 산란계(1451만3000마리, 사육 대비 20.8%)와 그 어미격인 산란종계(번식용 닭 32만7000마리, 사육 대비 38.6%)의 피해가 크다. 연말연시 달걀 대란이 발생한 이유가 여기 있다.
게다가 상황은 더욱 악화할 조짐이다. 수많은 가금류를 죽여 땅에 묻었는데도 제주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AI 의심 신고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국내 가금류 전량을 살처분해야 사태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확산 속도와 살처분 규모 모두 2003년 AI가 한국에 처음 상륙한 이래 최악이다. 이에 대해 축산농민과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부실대응을 질타한다.
충북 진천의 한 양계농민은 “2016년 여름 폭염 때부터 많은 양계농가에 전염병이 돌았다. 닭들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 겨울이 오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뭘 했나. 농장 방역하라고 준 소독약이 알고 보니 맹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도 드러나지 않았나. 그걸로 열심히 양계장을 소독한 농민들만 바보가 됐다”고 분개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검역본부)는 2016년 1~5월 일제조사를 통해 시중에 유통 중인 AI 소독약 163개 중 27개의 소독 효과가 허가 기준에 못 미친다고 밝힌 바 있다. 제조업체가 제출한 시험성적서만 믿고 허가를 내줬다 발생한 일이다. 이때 적발된 소독약 중에는 지자체 등이 일선 농가에 소독용으로 지급한 품목도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제약회사를 통해 해당 제품 판매 중단과 전량 회수 조치를 내렸지만 이 사실이 일선 농가에까지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고병원성 AI 확진 농장의 사용 소독제 내역’ 자료에 따르면 조사된 178개 농장 가운데 31개 농장이 ‘효력 미흡’으로 판정된 제품을 소독에 사용했다. AI 방역망에 첫 단계부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대 교수(독감바이러스 연구소장)도 “현 사태를 초래한 건 전적으로 정부”라고 지적했다. “일선 농가에서 폐사한 가금류를 발견하고 신고하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거다. AI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확산된 상태로 그사이 다른 농장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예방 조치를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또 “최소한 정기적으로 가금류 농장 바이러스 검사만 해도 감염 사실을 미리 발견해 AI 확산을 다소나마 막을 수 있을 텐데, 10년째 철새 핑계만 대면서 손 놓고 있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전문가 사이에서는 AI 확진 권한을 각 시도의 위생시험소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검역본부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분석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럼 지난 10년간 대체 뭘 했느냐”고 다시 반박하는 상황이다. 서상희 교수는 “이미 여러 지자체에 AI 확진 검사가 가능한 수준의 검사설비가 구축돼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정부가 인력 등을 핑계 삼아 이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바이러스 분석 권한을 독점해 뭔가 숨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자체가 AI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에 가금류 살처분 책임을 떠넘기는 데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현행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살처분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충남도 등은 살처분 비용을 지원하는 반면, 충북도는 농가 부담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용 부담을 지기 어려운 영세농가는 즉각적으로 살처분을 못 하기도 한다는 게 농민들 얘기다. 특히 2014년 AI사태 때 농장 땅에 이미 닭 혹은 오리를 묻은 축산농민들은 추가로 공간을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농민은 “언론에서는 손쉽게 살처분, 살처분 하는데 농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사체 처리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살처분은 어떤 단계로 이뤄질까. 과거 구제역 발생 때는 살아 있는 가축을 생매장하는 사례가 적잖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10조(동물의 도살방법)와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제23조,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SOP) 등에는 AI 살처분 시 반드시 가금류를 안락사시키고 이를 후처리하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밀폐형 계사의 닭은 가스를 이용해 단체로 질식사시키고, 창문이 있는 계사의 닭은 일일이 통에 옮겨 담은 뒤 그 안에 가스를 살포하는 방식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후 사체는 고밀도 저장용기인 섬유강화플라스틱탱크(FRP)에 담아 땅에 묻거나, 이 비용이 부담스러운 농가에서는 땅에 차수시트(비닐)를 깔고 묻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농민은 “최근 살처분 농가가 늘면서 FRP 품귀현상이 일어나 도리 없이 닭을 그냥 매몰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농장 안에 땅을 마련하기 어렵거나 매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토양 및 수질 오염을 꺼리는 농민들은 ‘렌더링’이라 부르는 사체 소각처리를 택하기도 한다. 홍기훈 대표에 따르면 렌더링기 한 대 돌리는 비용이 24시간에 600만 원이다. 어느 방식을 쓰든 농가가 살처분 과정에서 들여야 하는 노력과 비용이 적잖은 셈이다. 특히 가축이 하루아침에 죽어나가고 경제적 손실이 불어나는 상황에서 농민 스스로 이를 책임지고 진행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살처분이 늦어지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농장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AI가 확산일로에 들어섰다는 게 농민들의 얘기다.
정부는 AI가 양성으로 확인된 농가에 보상 비용을 첫해엔 20% 삭감 지급한다. 두 번째 반복 발생하면 50% 삭감, 세 번째는 80% 삭감이다. 이러다 보니 농가에서는 의심 사례가 나타나도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종시 한 농가가 AI 의심 신고 하루 전날 닭과 달걀을 대량 출하했다 적발된 게 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AI가 돌 때마다 가금류를 집단 살처분하고 그 책임을 농민에게 지우는 방식으로는 한국 축산업의 미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정부는 현재 사태 악화 책임을 철새에게 돌리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는 이를 확인할 야생동물 역학조사 전문가도 없다. 가금류 대규모 살처분 사태가 수차례 반복되는데 발병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를 대비하겠나”라며 “이제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문가를 키우고, 축산정책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기훈 동일농장 대표의 얘기다. 홍 대표는 충북 음성군과 진천군에서 동일농장 이름으로 양계장 5개를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음성군 삼성면 소재 양계장 닭이 2016년 12월 16일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육계 1만3000마리 가운데 4000마리가 폐사하고 나머지 9000마리는 살처분했다. 이 작업을 진행 중이던 21일 홍 대표는 “멀쩡히 살아 있는 닭을 모조리 죽여야 하는 처참한 심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닭을 청정구역에서 안전하게 기르려 노력했는데, 당국의 늑장대응으로 피해를 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동일농장은 닭 사육밀도가 낮고 관리 상태가 우수해 정부로부터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은 곳이다. 그동안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는 가축은 면역력이 높아 AI 같은 전염병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농장까지 AI가 들이닥쳤다.
“폭염 때부터 겨울철 집단감염 우려”
“11월 24일부터 일주일 사이 우리 농장 근처 3개 농가에서 AI가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이들 농장의 가금류를 살처분한 게 12월 16일이에요. 확진 판정이 나오기까지 며칠 걸리고, 그 뒤엔 농가가 알아서 처리하느라 또 시간 보내고…. 그사이 강력한 바이러스가 우리 농장까지 퍼진 겁니다.”홍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AI 발생 농장을 방문했던 공무원을 통해 감염이 확산됐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한 공무원이 우리 농장에 다녀간 다음 날 닭 1000마리가 한꺼번에 죽었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오죽하면 정부랑 지자체가 바이러스를 증폭해 우리 농장에다 대고 뿌렸다는 생각까지 들겠느냐”며 “아직까지는 의심이고 추정일 뿐이지만, 조만간 이를 확인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낼 것”이라고 했다.
홍 대표만이 아니다. AI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분노와 울분에 사로잡힌 축산농민이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2월 21일 0시 기준으로 도살 처분됐거나 도살 예정인 가금류는 전국 2084만9000마리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체 가금류의 12.6%에 해당한다. 특히 알을 낳는 산란계(1451만3000마리, 사육 대비 20.8%)와 그 어미격인 산란종계(번식용 닭 32만7000마리, 사육 대비 38.6%)의 피해가 크다. 연말연시 달걀 대란이 발생한 이유가 여기 있다.
게다가 상황은 더욱 악화할 조짐이다. 수많은 가금류를 죽여 땅에 묻었는데도 제주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AI 의심 신고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국내 가금류 전량을 살처분해야 사태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확산 속도와 살처분 규모 모두 2003년 AI가 한국에 처음 상륙한 이래 최악이다. 이에 대해 축산농민과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부실대응을 질타한다.
충북 진천의 한 양계농민은 “2016년 여름 폭염 때부터 많은 양계농가에 전염병이 돌았다. 닭들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 겨울이 오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뭘 했나. 농장 방역하라고 준 소독약이 알고 보니 맹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도 드러나지 않았나. 그걸로 열심히 양계장을 소독한 농민들만 바보가 됐다”고 분개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검역본부)는 2016년 1~5월 일제조사를 통해 시중에 유통 중인 AI 소독약 163개 중 27개의 소독 효과가 허가 기준에 못 미친다고 밝힌 바 있다. 제조업체가 제출한 시험성적서만 믿고 허가를 내줬다 발생한 일이다. 이때 적발된 소독약 중에는 지자체 등이 일선 농가에 소독용으로 지급한 품목도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제약회사를 통해 해당 제품 판매 중단과 전량 회수 조치를 내렸지만 이 사실이 일선 농가에까지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고병원성 AI 확진 농장의 사용 소독제 내역’ 자료에 따르면 조사된 178개 농장 가운데 31개 농장이 ‘효력 미흡’으로 판정된 제품을 소독에 사용했다. AI 방역망에 첫 단계부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대 교수(독감바이러스 연구소장)도 “현 사태를 초래한 건 전적으로 정부”라고 지적했다. “일선 농가에서 폐사한 가금류를 발견하고 신고하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거다. AI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확산된 상태로 그사이 다른 농장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예방 조치를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또 “최소한 정기적으로 가금류 농장 바이러스 검사만 해도 감염 사실을 미리 발견해 AI 확산을 다소나마 막을 수 있을 텐데, 10년째 철새 핑계만 대면서 손 놓고 있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살처분은 농가 책임” 뒷짐 진 행정당국
농민들이 AI 발생을 확인한 뒤 밟아야 하는 행정 절차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진다. 일단 AI 감염을 확인하는 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의 AI 확진 권한은 경북 김천에 자리한 검역본부가 독점하고 있다. 일선 농가에서 간이검사장비(키트)로 바이러스 존재를 확인한 뒤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최소 2~3일이 소요된다. 홍기훈 대표는 12월 12일 의심 신고를 한 뒤 16일에야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11월 9일 건국대 수의대 연구진이 야생조류 분변에서 시료를 채취한 뒤 최종 확진 결과를 받기까지도 이틀이 걸렸다. 확산 속도가 역대 어느 AI사태보다 빠른 것으로 평가되는 이번 AI 바이러스에 대처하기에는 턱없이 긴 시간인 셈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 사이에서는 AI 확진 권한을 각 시도의 위생시험소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검역본부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분석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럼 지난 10년간 대체 뭘 했느냐”고 다시 반박하는 상황이다. 서상희 교수는 “이미 여러 지자체에 AI 확진 검사가 가능한 수준의 검사설비가 구축돼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정부가 인력 등을 핑계 삼아 이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바이러스 분석 권한을 독점해 뭔가 숨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자체가 AI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에 가금류 살처분 책임을 떠넘기는 데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현행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살처분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충남도 등은 살처분 비용을 지원하는 반면, 충북도는 농가 부담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용 부담을 지기 어려운 영세농가는 즉각적으로 살처분을 못 하기도 한다는 게 농민들 얘기다. 특히 2014년 AI사태 때 농장 땅에 이미 닭 혹은 오리를 묻은 축산농민들은 추가로 공간을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농민은 “언론에서는 손쉽게 살처분, 살처분 하는데 농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사체 처리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살처분은 어떤 단계로 이뤄질까. 과거 구제역 발생 때는 살아 있는 가축을 생매장하는 사례가 적잖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10조(동물의 도살방법)와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제23조,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SOP) 등에는 AI 살처분 시 반드시 가금류를 안락사시키고 이를 후처리하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밀폐형 계사의 닭은 가스를 이용해 단체로 질식사시키고, 창문이 있는 계사의 닭은 일일이 통에 옮겨 담은 뒤 그 안에 가스를 살포하는 방식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후 사체는 고밀도 저장용기인 섬유강화플라스틱탱크(FRP)에 담아 땅에 묻거나, 이 비용이 부담스러운 농가에서는 땅에 차수시트(비닐)를 깔고 묻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농민은 “최근 살처분 농가가 늘면서 FRP 품귀현상이 일어나 도리 없이 닭을 그냥 매몰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농장 안에 땅을 마련하기 어렵거나 매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토양 및 수질 오염을 꺼리는 농민들은 ‘렌더링’이라 부르는 사체 소각처리를 택하기도 한다. 홍기훈 대표에 따르면 렌더링기 한 대 돌리는 비용이 24시간에 600만 원이다. 어느 방식을 쓰든 농가가 살처분 과정에서 들여야 하는 노력과 비용이 적잖은 셈이다. 특히 가축이 하루아침에 죽어나가고 경제적 손실이 불어나는 상황에서 농민 스스로 이를 책임지고 진행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살처분이 늦어지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농장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AI가 확산일로에 들어섰다는 게 농민들의 얘기다.
닭도, 농민도 살게 해달라
AI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정부는 12월 13일 역학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며 “이번 AI는 축사를 오가는 차량과 사람에 의한 감염보다 철새의 이동 및 접촉에 따른 감염이 주된 원인”이라고 밝혔다. 책임의 상당 부분을 ‘철새’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렇다면 ‘불가항력의 상황’에 놓인 농민 피해는 누가 감당해야 할까. 현재로서 답은 ‘농민’이다.
정부는 AI가 양성으로 확인된 농가에 보상 비용을 첫해엔 20% 삭감 지급한다. 두 번째 반복 발생하면 50% 삭감, 세 번째는 80% 삭감이다. 이러다 보니 농가에서는 의심 사례가 나타나도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종시 한 농가가 AI 의심 신고 하루 전날 닭과 달걀을 대량 출하했다 적발된 게 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AI가 돌 때마다 가금류를 집단 살처분하고 그 책임을 농민에게 지우는 방식으로는 한국 축산업의 미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정부는 현재 사태 악화 책임을 철새에게 돌리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는 이를 확인할 야생동물 역학조사 전문가도 없다. 가금류 대규모 살처분 사태가 수차례 반복되는데 발병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를 대비하겠나”라며 “이제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문가를 키우고, 축산정책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