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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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건강의 진짜 적은 비만보다 저근육!

나이 들수록 저체중자 사망률 과체중자 초월…“운동만이 살 길이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sukkikang@gmail.com

    입력2016-12-19 15: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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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MBC 드라마 ‘불야성’에 출연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겸 배우 유이 씨를 볼 때마다 필자는 나라에서 그에게 국민건강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2009년 당시 21세인 유이 씨가 ‘애프터스쿨’이라는 아이돌그룹 멤버로 대중 앞에 등장하면서 ‘꿀벅지’라는 단어가 대유행했고, 그 결과 미인 몸매의 기준이 확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영선수 출신인 유이 씨는 젓가락같이 마른 몸매가 대세이던 당시 여성 연예인 틈에서 근육질 허벅지를 당당히 드러내며 건강미를 과시했다. 큰 키와 긴 다리가 받쳐준 덕분이겠지만, 아무튼 유이 씨의 튼실한 각선미는 섹시함의 새로운 상징이 됐고 많은 여성이 이를 계기로 굶는 다이어트에서 운동하는 피트니스로 ‘전향’했다.



    마른 사람 사망률 53% 높아

    ‘그렇다고 뭘 훈장씩이나…’ 하면서 필자의 지나친 비약에 의아해할 독자도 있을 테다. 하지만 유이 씨 이전에 우리나라 젊은 여성 대다수가 지향한 몸매는 보기에 좋을지 몰라도(솔직히 좋아 보이지도 않지만) 건강에는 치명적이었다. 다이어트를 독하게 해 저체중 범주에 들어간 뒤에도 살을 계속 빼면 급기야 월경이 멈추고 어이없는 골절(골다공증으로)이 일어나기도 한다. 거식증 같은 섭식장애라도 생기면 생명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실제 서구에서는 모델이 거식증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지난해 12월 프랑스는 ‘마른 모델 퇴출법안’을 제정했다.

    저체중이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국내 연구팀 논문도 최근 나왔다. 성기철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이 학술지 ‘국제심장학저널’ 12월호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저체중인 사람이 보통체중인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53%나 높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과체중인 사람의 사망률이 오히려 보통체중인 사람에 비해 26% 낮다는 점이다. 심지어 비만인 경우조차 사망률이 19% 낮다. 어찌 된 일일까.



    얘기를 계속하기 전 먼저 체중 분류 기준을 알아보자. 사람마다 키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절대적인 체중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체질량지수(BMI)를 많이 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7년 BMI가 18.4 이하면 저체중, 18.5~24.9면 보통체중, 25~29.9면 과체중, 30 이상이면 비만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키가 170cm라면 대략 53kg 이하는 저체중, 53~73kg은 보통체중, 73~87kg은 과체중, 87kg 이상은 비만에 해당한다.

    한편 이 기준이 동아시아인에게 맞지 않는다며 만든 다른 기준도 있다. 이에 따르면 저체중의 BMI는 같지만 보통체중은 18.5~22.9, 과체중은 23~24.9, 비만은 25 이상이다. 즉 키 170cm에 몸무게 80kg이면 서구인 기준에서는 과체중이지만 동아시아인 기준으로는 비만이다. 필자가 보기에 WHO 기준은 좀 느슨하고 동아시아 기준은 좀 빡빡한 것 같다. 참고로 성기철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동아시아 기준을 따랐다. 즉 보통체중과 과체중을 합친 범위가 WHO 보통체중에 속하고, 비만 범위는 WHO 과체중 이상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 결과는 조심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2002~2013년 전국 각지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39만6951명 가운데 처음 검진을 받을 당시 암이나 심혈관계 대사질환 병력이 없고 혈당, 혈압,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등 대사지표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는, 즉 대사적으로 건강한 16만2194명만을 대상으로 추적조사를 실시했다. 처음 검진 기록이 있을 때 평균 나이는 35세이고, 이들을 추적한 평균 기간은 5년이다. 조사 기간 총 436명이 사망했는데 이를 체중에 따라 분석했더니 저체중인 사람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는 얘기다.

    이 설명을 듣고 ‘뚱뚱할수록 대사지표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을 텐데, 그런 사람을 빼고 통계를 내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39만여 명을 다 포함해 통계를 내면 적어도 비만인 사람의 사망률이 보통체중인 사람보다 더 낮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의미 있는 건 대사적으로 건강하기만 하다면 과체중이나 비만은 건강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저체중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만 역설? 더는 역설이 아니다!

    사실 대사지표가 좋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더라도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비만이 사망률을 크게 높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사망률이 가장 낮은 체중 범위가 꾸준히 올라가 중년 이후에는 보통체중보다 과체중의 사망률이 더 낮아진다. ‘말이 되는 얘기인가.’ 독자는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여서 이런 현상에 ‘비만 역설(obesity paradox)’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이 현상은 198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주류 연구자는 그동안 이것을 무시해왔다. 그런데 2013년 캐서린 플레갈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 박사팀이 체중과 사망률의 관계를 조사한 과거 97개 연구를 분석해 통계를 내면서 비만 역설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플레갈 박사팀이 학술지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에 낸 논문에 따르면 97개 연구에 참여한 288만 명 중 과체중인 사람의 사망률이 보통체중인 사람보다 6% 낮았다(이하 모두 WHO 체중 분류를 기준으로 삼았다). 또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경향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50세까지는 보통체중인 사람의 사망률이 가장 낮다. 그러나 60, 70세로 갈수록 보통체중인 사람의 사망률이 가파르게 상승해 과체중인 사람의 사망률을 넘어선다. 이에 대한 유력한 설명은 이렇다. 심혈관계 질환이나 당뇨 같은 대사질환, 즉 소위 성인병에 걸릴 확률은 과체중인 사람이 보통체중인 사람보다 높다. 그러나 일단 발병하면 특히 고령일수록 몸이 병을 이기는 데 체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몸이 에너지 저장소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즉 병에 시달려 몸이 축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평소 과체중인 사람은 그래도 버틸 수 있어 좀 더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70세 그래프를 보면 보통체중인 사람 가운데서도 저체중에 가까운 쪽의 사망률이 과체중에 가까운 쪽보다 50% 정도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반박하는 진영의 논리도 그 나름 타당성이 있다. 즉 흡연자나 지병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체중이 덜 나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담배를 끊으면 살이 찐다!). 결국 보통체중 자체가 과체중보다 사망률을 높이는 게 아니며, 흡연과 병이 사망 원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을 제외하지 않은 통계는 부정확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플레갈 박사는 이런 식으로 따지면 어떤 통계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악력 센 사람이 오래 사는 이유

    BMI와 사망률의 관계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상당수 연구자는 BMI 자체를 문제 삼기도 한다. BMI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에 불과해 근육이 많아 체중이 많이 나가든, 지방이 많아 체중이 많이 나가든 똑같이 취급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BMI는 지방이 몸의 어디에 주로 분포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주지 못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인체의 지방 가운데 특히 내장지방의 양이 각종 성인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체내 지방량이 똑같아도 피하지방이 많은, 즉 살집이 좋은 사람이 내장지방이 많은(허리둘레가 굵은)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얘기다. 특히 ‘마른비만’이라고 부르는, 팔다리는 젓가락 같은데 ‘똥배’만 꽤 나온 사람은 보통체중을 유지해도 건강 위험군에 속한다. 2008년 학술지 ‘JAMA국제의학’에 실린 연구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반세기 동안 비만이 급증한 미국은 현재 인구의 약 3분의 1이 보통체중, 3분의 1이 과체중, 3분의 1이 비만에 해당한다(저체중은 3% 내외에 불과하다). 당시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보통체중부터 비만까지 5440명의 혈액시료를 분석했는데, 보통체중에 속한 사람 가운데 24%(전체의 8%)가 심혈관계 대사질환 고위험군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대체로 근육량이 적고 내장지방이 많은 체형이었다. 반면 과체중인 사람 가운데 51%(전체의 18%)와 심지어 비만인 사람 가운데서도 32%(전체의 10%)가 대사적으로 건강한 상태로 측정됐다. 이들은 근육량이 많고 피하지방에 비해 내장지방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단순히 보기에 날씬한지 뚱뚱한지가 건강과 수명의 지표는 아니라는 얘기다(그림 참조).

    이번에 성기철 교수팀이 대사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사망률을 조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대사적으로 건강할 경우 BMI가 건강의 변수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저체중인 경우 여전히 사망률이 훨씬 높다. 왜 그럴까. 연구팀은 논문에서 ‘앞으로 대사적으로 건강한 저체중인 사람이 사망률이 높은 이유를 설명하는 메커니즘을 밝혀야 한다’면서도 영양이나 근육량 등 건강 유지에 필요한 요소가 부족한 게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을 덧붙였다. 즉 조사 대상자가 아직 젊어 대사지표가 정상 범주에 속하지만 몸은 약골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에는 BMI보다 손아귀로 쥐는 힘, 즉 악력이 사망률을 더 정확히 예측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악력은 몸의 근육량을 나타내는 지표로 나이가 들수록 떨어진다. 또 저체중인 사람도 악력이 약하다. 결국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몸의 근육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노화의 핵심 요소는 신체적 기능과 운동성의 퇴화다. 따라서 노화를 근육의 양과 힘, 기능이 소실되는 ‘근감소증(sarcopenia)’의 진행 정도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나이가 듦에 따라 근육량이 감소하는 속도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노화를 늦추는 데 관건이라는 뜻이다.

    자칫 정적인 생활 패턴에 빠지기 쉬운, 머리를 써서 먹고사는 많은 현대인은 근육량 부족이라는 위험에 노출된 삶을 살고 있다. 특히 운동이 번거롭고 근육이 드러나는 게 싫어 ‘안 먹는’ 다이어트를 택하는 젊은 여성이 골다공증 같은 퇴행성 질환을 앓는 원인도 근본적으로는 근육량 감소다. 다이어트로 자신의 몸을 급속히 노화시키는 셈이다.

    여담이지만 여성이 컴퓨터 관련 질환을 더 많이 앓는 것도 남성에 비해 자세가 더 나빠서가 아니라, 어깨나 팔에 근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자세 교정이 아니라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근육을 강화하면 많은 경우 이런 병은 저절로 낫는다.



    정상체중 아니라 보통체중일 뿐

    필자는 이 글에서 학계나 매체 관계자가 흔히 ‘정상체중’이라고 번역하는 ‘normal weight’를 의도적으로 ‘보통체중’이라고 번역해 썼다. ‘정상’이란 단어는 그 밖의 범위를 비정상으로 만든다. 그런데 체중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이런 표현을 쓰는 건 모순 아닐까. 게다가 나이 들어서는 이른바 ‘비정상’인 과체중인 사람의 사망률이 정상체중인 사람보다 낮기까지 하니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정상체중 범주를 WHO 기준으로 통일하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체중 자체가 건강의 주요 변수가 아니라면 굳이 보통체중이나 과체중 범위를 좁히고 비만 범위를 넓혀 살찌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동아시아 기준을 택할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꿀벅지’로 글을 시작하면서 필자는 유이 씨의 데뷔 연도를 확인하려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이, 꿀벅지 실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최근 드라마에 나온 모습을 보니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날씬해졌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다이어트를 한 것 같지는 않고, 바쁜 일정과 불규칙한 식사 탓에 살이 빠진 것 같다. 드라마가 끝나면 운동을 재개해 트레이드마크인 ‘꿀벅지’를 되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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