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째 제조업체에서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A(50)씨는 조만간 평생 몸담아 온 직장을 그만둔다. 전립샘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년째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는 B(44)씨도 유방암 조기 진단 후 수술을 받았다. 불규칙한 근무시간 패턴이 암의 한 원인인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빛 공해가 심한 나라다. 사회 시스템을 24시간 유지하고자 밤에도 잠들지 못한 채 깨어 있는 이가 많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현재 국내 제조업의 22%가 교대근무를 채택하고 있다. 한때 공공서비스 영역에만 해당되던 24시간 근무체계가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문제는 밤에 잘 자지 못하면 암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생체시계 불안정한 교대근무 직종 위험
지구 모든 생명체는 밤낮의 주기적 변화에 대처하고자 몸속에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다. 사람이 자고 깨는 행동도 24시간을 주기로 돌아가는 ‘일주기 생체리듬’의 영향을 받는다. 이 리듬이 불안정해지면 당뇨, 암, 심장병 등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데 교대근무나 잦은 야근이 이 리듬을 깨뜨린다.과학자들은 일주기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유전자 가운데 하나인 ‘HPer2(Human Period 2)’가 암 발병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유전자에는 종양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 유전자가 변형된 사람은 80% 이상 확률로 암이 생긴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암 발병을 억제하는 체내 유전자의 양이 생체리듬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해 주목받았다. 김재경 KAIST(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과 교수팀은 미국 버지니아공대 연구팀과 함께 암 억제 유전자인 ‘p53’ 양이 24시간 주기로 변하는 원리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 결과는 11월 9일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온라인판에 실렸다.
이번 연구를 통해 김 교수 등은 뇌에서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HPer2와 p53 농도가 서로 관련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세포질에서 HPer2 양이 많아지면 p53 양이 적어지고, 세포핵에서는 HPer2 양이 많아질수록 p53 양도 증가했다. 밤낮이 바뀌는 등 생체리듬에 문제가 생겨 HPer2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암이 생길 수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이 연구 결과가 생체시계가 불안정한 교대근무 직종 종사자의 암 발병 확률이 높은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간 각 항암제가 투약 시간에 따라 치료 효과가 달라지던 원인 역시 이번 연구 성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규칙적이지 않은 근무 형태’를 발암물질로 규정한 바 있다. 살충제 등이 속한 2A군 발암물질 81개 가운데 하나로 이를 넣어 ‘사람에게 암 유발 가능성(probably)이 있다’는 꼬리표를 붙였다. IARC가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은 수면과 암 발병의 상관관계를 밝힌 과학 연구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 화중대 연구진은 11월 4일 20년 이상 야간근무를 한 남성이 충분한 수면을 취한 사람에 비해 암 발병률이 27%가량 높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의학회보(Annals of Medicine)’에 발표하기도 했다.
해당 연구진은 중국 자동차회사 동펭을 다니다 은퇴한 남성 2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30분에서 1시간가량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 20년 이상 야간근무를 한 사람, 밤에 10시간 이상 취침을 하는 사람 등이 암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개 이상의 습관을 동시에 가진 경우 암 발병률이 43%까지 높아졌다.
이 연구를 진행한 환궈 교수는 “이러한 경향이 여성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여성의 교대근무 역시 여러 연구에서 암 발병 원인으로 지목됐다. 대표적으로 30년간 월 3회 이상 야간 교대근무를 지속한 여성이 주간근무만 한 여성에 비해 유방암 발병 위험은 1.36배, 자궁내막암 발병 위험은 1.47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너무 많이 자도 해로워”
수면은 시간뿐 아니라 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또한 많다. 아이슬란드대 연구진은 불면증이나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장애가 있는 남성의 전립샘암 발병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1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67~96세 남성 2100여 명을 대상으로 5년간 조사한 결과다. 반면 질 좋은 수면을 취해 수면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면 암 치료 효율이 높아진다. 같은 약을 먹을 때 적은 용량만으로 동일한 치료 효과를 보이며 부작용 역시 줄어든다는 의미다.
문제는 국내 수면장애 환자가 최근 5년 새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수면장애 환자는 2011년 32만5000명에서 2015년 45만6000명으로 40% 이상 많아졌다. 각종 조사에서 ‘가장 두려운 질병 1위’로 꼽히고 한국인 사망원인 질병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암을 피하려면 일단 잠을 잘 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수면이 좋은 수면일까.
대한수면학회는 일반적으로 하루 6~8시간 수면을 취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말한다. 이보다 잠이 부족하면 피로가 쏟아지고 집중력이 저하된다. 많이 잔다고 꼭 좋은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화중대 연구에서도 하루 10시간 이상 수면은 오히려 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쾌적한 수면을 위한 십계명1. 일요일에 늦잠을 자지 마라.
2. 잠자리에 들기 전 먹고 마시는 것을 삼가라.
3. 카페인과 니코틴을 피해라.
4. 가능하면 운동을 매일 규칙적으로, 낮 시간 밝은 태양 아래서 하라.
5. 실내는 선선하게 유지하고 손발은 따뜻하게 하라.
6. 낮잠은 짧게 자라.
7. 잘 때는 TV를 꺼라.
8. 황제의 침실을 부러워 하지 마라.
9. 수면 전 긴장을 풀어라.
10. 많은 잠보다 충분한 잠을 자라.
출처 | 대한수면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