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이 11월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동안 고생했다”와 함께 “이제 곧 끝난다”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실제 대학 입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수시모집에서 합격이 결정된 소수를 제외하고 수험생 대부분이 정시모집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채점 결과에 따라 주요 입시기관별 배치표가 나오면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되리라 기대했겠지만 아직까지는 안갯속이다. 수험생은 자기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한 채 대학별 고사를 치르고 있다. 가채점 결과만 주어진 이 시기에 배치표의 원리를 이해하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배치표는 수험생이 ‘합리적’으로 지원한다는 가정하에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매우 우수한 수험생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의 학과에 지원한다고 가정해 대학과 학과를 일렬로 줄을 세운 다음 순차적으로 배치점을 잡는다. 그런데 이때 각 입시기관마다 수험생의 점수 분포, 즉 상위누적 또는 총점 분포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특정 점수대의 수험생 수가 달라지고 배치점도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수험생이 일반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대학의 A학과 모집정원이 5명이라고 치자. 각 입시기관은 수험생의 점수를 모아 국어, 수학, 영어, 탐구2에 균등한 비중을 적용해 합산한 값을 토대로 배치점을 잡는다. 원점수 기준으로 성적이 가장 우수한 수험생이 5명이라면 A학과 배치점은 이 5명의 성적과 일치한다. 단, 이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선택한다고 가정했을 때 얘기다. 그런데 성적이 가장 우수한 수험생이 5명보다 적거나 많으면 상황은 간단치 않다. 게다가 그 학과와 유사한 선호도를 보이는 해당 대학 B학과나 다른 대학의 C학과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더욱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대학별 점수 계산 방식을 근거로 한다면 수합한 수험생들의 성적 순위도 달라질 수 있다. 수시모집 이월 인원이 발생할 경우 또 다른 계산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을 모두 고려해 입시기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더 정확하게 추정하려는 통계 및 계산 방식을 도입하고, 여기에 진학지도 경험이 많은 현장 전문가의 검토 및 감수까지 거쳐 배치표를 완성한다.
물론 수험생과 학부모 처지에선 각 입시기관의 통계 및 계산 방식이나 현장 전문가의 조언으로 배치표가 결정되는 방식 자체는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 지난해 입시 결과에 비춰 어떤 입시기관 배치표가 더 참고할 만한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입시기관의 예측이 올해도 적중할지는 입시가 끝나야만 알 수 있다. 입시기관 배치표는 깜깜한 어둠 속에 서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불빛에 가깝다. 물론 입시기관은 수험생이 실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배치표를 제작, 배포하려 하지만 기본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따라서 한 자료만 보기보다 다양한 기관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참고해 판단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한 입시기관의 특정 예측을 맹신하기보다 전반적인 추이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가채점 점수와 배치표상 점수를 단순히 일대일로 비교해 혼자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담임교사나 진학 담당 교사와 반드시 상담해야 한다. 논술, 면접 같은 대학별 고사에 응시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배치표를 참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수시모집에 지원한 대학 및 학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연 지원한 대학 및 학과에 합격해도 재수를 할지, 해당 대학에 진학했을 때 생활환경은 적당한지 등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만약 정시모집만 고집한다면 실제 성적표를 토대로 작성한 입시기관 배치표를 참고하거나 각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배치 자료(프로그램)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