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 10월 말 전략위원회 산하에 경선룰 논의기구를 만들 예정이다. 당내 대권주자 대리인이 참여하는 일종의 협상 채널이다. 더민주 당헌 제108조에 따르면 경선 방법은 해당 선거일 1년 전까지 확정해야 한다.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일은 12월 20일이니까 역산하면 올해 12월 19일까지 경선룰을 정해야 한다. 불과 2개월 뒤다.
더민주 당규에 따르면 경선은 ①국민경선 ②국민참여경선 가운데 하나로 치러야 한다. 국민경선은 당원을 별도로 구별하지 않고 해당 선거구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다. 그만큼 논란이나 협상의 여지가 별로 없으며, 국민경선으로 할 것인지 여부만 협상의 대상이 된다. 당내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후보는 당연히 국민경선을 선호할 것이다.
국민경선이냐 국민참여경선이냐
국민참여경선은 협상의 여지가 많다. 현장투표 또는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할 때 권리당원은 100분의 50 이하로, 권리당원이 아닌 유권자는 100분의 50 이상으로 한다고만 규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비율이 확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선거인단 구성 비율도 별도로 정해야 한다. 당내 지지기반이 확고한 후보는 당연히 권리당원 비율을 높이려 들 것이다.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하지만 대중적 인기가 높은 대선후보는 그 반대일 것이다.경선후보가 많은 경우 경선을 1, 2차로 나눠 실시하도록 한 것도 후보들로서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이 경우 2차 경선을 어떤 방식으로 하든 1차 경선은 국민참여경선 또는 시민공천배심원경선을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2차 경선을 국민경선으로 한다 해도 1차 경선을 국민참여경선으로 치르게 되면 역시 권리당원과 유권자의 비율이 중요해진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당선한 직후 “꽃가마는 없다”고 강조했다. “모두 함께 공정하고 깨끗한 경선, 정당사에 길이 남을 역동적인 경선을 함께 만들자”고 역설했다.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은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추 대표는 대표 당선 바로 다음 날인 8월 28일 당내 대선주자 모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공정한 경선 관리를 약속하기도 했다. 9월 11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공정한 룰은 공정한 경선의 시발점”이라면서 “경선 시기는 정치적 상황이나 후보자 간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며 재차 공정한 경선 관리를 강조했다.
추미애 대표의 의심스런 행보
하지만 친문(친문재인)계라 할 수 있는 추 대표가 여전히 문 전 대표 편이라는 의혹이 있다. 추 대표 스스로 그런 의혹을 유발하는 측면도 없지 않은데, 그 첫 번째는 조기 경선 강행에 대한 예고다. 추 대표는 9월 4일 “대선후보를 내년 6월 말까지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원칙을 강조한 것이긴 하다. 더민주 당헌은 대선일 180일 전까지 대선후보를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당대회 경선 과정에서도 추 대표는 이미 조기 경선을 강조했다. 그래서 새로운 언급도 아니다. 다만 문 전 대표 측이 조기 경선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나온 언급이라 역시 문재인 편이라는 곱지 않은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참고로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9월 16일 경선을 치렀다. 그리고 당헌은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 당무위원회의 의결로 경선 시기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해놓기도 했다.의심을 유발하는 추 대표의 두 번째 행보는 온라인 당원 확대에 대한 애착이다. 추 대표는 9월 30일 열린 당무위원회에서 온오프라인네트워크정당추진위원회를 상설특위로 격상했다. 온라인 당원 가입을 활성화하고 이를 기존 오프라인 당원과 하나의 플랫폼으로 결합하겠다는 것이 그 이유다. 더민주는 문 전 대표 재임 기간 온라인 당원 가입을 확대한 결과 10만여 명이 추가로 입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들의 성격인데, 당시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현역의원들이 탈당하는 과정에서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이 대거 입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조치는 결국 친문 지지세력의 추가 입당을 노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물론 다른 대선후보들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최근 각 대선후보 진영에서 온라인 지지세력 규합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카카오스토리·페이스북·트위터 팔로어 200만 명 돌파를 기념해 온라인 전용 플랫폼 ‘원더풀’(원순 씨와 함께 더 잘 풀리는 대한민국)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박 시장 측은 팔로어 200만 명을 더민주 온라인 당원에 가입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존 팬클럽인 ‘아나요’를 중심으로 세력 확장에 열심이다. 더민주 김부겸 의원도 온라인 팬클럽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온라인에서 플랫폼을 만들어 지지세력을 규합한 뒤 이들 가운데 일부를 더민주 온라인 당원 가입으로 유도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더민주 권리당원으로 권한을 행사하려면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해야 한다. 2017년 6월에 조기 경선을 치른다고 가정하면 올해 12월까지는 당원으로 가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저래 연말까지는 각 후보 진영의 온라인 당원 가입 유도 열기가 뜨거울 전망이다. 그렇다면 조기 경선을 치른다고 전제할 때 연말까지 나머지 대선후보들이 온라인 당원 규모면에서 문 전 대표를 능가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제로(0)에 가깝다. 이미 온라인 당원 10만 명을 보유한 문 전 대표는 9월 3일 온라인 카페에 기반을 둔 공식팬클럽 ‘문팬’까지 창립했다. 이미 앞서가는 상황에서 더 앞서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뛰는 후보들 위에 나는 문 전 대표다.
경선룰 논의기구 결성과 관련해 가장 큰 관심사는 손학규 전 상임고문 측이 참여할 것인지 여부다. 손 전 고문의 참여는 문 전 대표에겐 악재이고 나머지 대선후보들에겐 호재다. 경선 시기를 포함한 경선룰 협상에 여지가 더 생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제3지대로 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손 전 고문 측은 이미 “제3지대론을 외친 손 전 고문이 더민주 경선 논의에 참여할 일은 현재로선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그런 그를 끝내 모셔오려면 추 대표와 문 전 대표가 선제적으로 상당히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경선 시기 연기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손 전 고문은 2012년 당내 경선 당시 문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경선룰에 불만을 가진 나머지 경선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그런 그이기에 경선룰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손 전 고문 측이 경선룰 논의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경선 시기 연기는 일단 기대하기 어렵다. 연기하더라도 약간 늦추는 선, 그러니까 생색내기 수준에 그칠 것이다. 어차피 손 전 고문 같은 거물급 인물이 경선에 뛰어들지 않는 한 경선 흥행도 기대하기 어렵고, 그렇다면 차라리 조기에 당내 후보를 결정한 뒤 범야권 대선후보 단일화에 대비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공산이 크다.
의외의 악재로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속락하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박원순 시장 또는 김부겸 의원의 지지율이 급등세를 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경우 박 시장 또는 김 의원의 당내 영향력이 커지면서 경선 시기를 연기하는 동시에 경선룰 협상도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져갈 여지가 생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지’가 생기는 것이지, 실제로 그들 뜻대로 ‘확정’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전당대회 결과 더민주 지도부는 이미 친문계로 정리가 됐기 때문이다. 경선 시기와 더불어 나머지 대선후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결선투표다. 다자구도에서는 문 전 대표를 이길 수 없지만, 양자구도라면 나머지 후보들의 표를 모두 결집해 문 전 대표와 대결해볼 만하다는 인식의 발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9월 7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민경선과 결선투표를 도입한다면 문 전 대표가 아닌 다른 후보로 바뀔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결선투표 도입 문제는 2012년 경선 때도 쟁점이었다. 당시에도 문재인 대세론이 형성되자 손학규, 정세균, 김두관 후보가 결선투표 도입을 문 전 대표에게 요청했고, 문 전 대표는 장고 끝에 이를 수용했다. 물론 문 전 대표가 1차 투표에서 과반 지지율을 획득하면서 결선투표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더민주 당규는 ‘경선후보자의 수가 3인 이상인 경우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결선투표 또는 선호투표 등의 방법을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원순과 김부겸, ‘문재인 대세론’ 깰 수 있나
하지만 현재처럼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범야권 대선후보 가운데 1위를 유지한다면 사실 경선룰 협상은 큰 의미가 없다. 국민참여경선으로 하건 국민경선으로 하건, 또 국민참여경선의 권리당원과 유권자 비율을 50 대 50으로 하건 30 대 70으로 하건, 문 전 대표의 압승으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으로 분리되면서 친문성향의 권리당원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유권자 지지율까지 높은, 정말 ‘이래도 문재인, 저래도 문재인’인 ‘이래문 저래문’ 상황이다.다른 대선후보들의 견제성 발언은 그래서 공허하게 들린다. 김부겸 의원은 9월 20일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대선후보를 뽑는 과정은 당원들만의 경선이 아니다. 국민참여경선을 지금까지 죽 해왔고 그 규모가 거의 100만을 넘길 수 있다”며 “지금처럼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선 어느 한쪽만의 대세로는 설득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세론을 일축한 것이다. 김 의원은 “문재인 대세론은 무난한 패배”라는 주장도 일관되게 하고 있다. 김 의원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특히 더민주 내부 경선 구도와 괴리가 심하다. 앞서 지적했듯이 경선 구도는 확고히 ‘친문형’이다. 지엽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끝날 경선룰 협상으로 그것을 깨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방법은 단기간에 김 의원이 국민적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것밖에 없다. 박원순 시장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가운데 굳이 들자면, 박 시장이 좀 더 가능성이 있다. 박 시장은 이미 범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성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세론의 위험성은 ‘무난하게 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더민주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릴 확률은 매우 낮다. 경선룰 협상이 이번처럼 공허하게 다가온 적도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