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전 종목을 석권하고, 특히 여자 양궁이 단체전이 도입된 1988 서울올림픽 이후 8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자 외국인들은 “비결이 뭐냐”고 궁금해한다. 116년 만에 부활한 여자 골프에서도 박인비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양궁과 골프는 머리와 손의 속응성(速應性)이 중요한 스포츠다. 집중력뿐 아니라 손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이 종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양궁과 골프 종목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비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스포츠 분야 외에도 휴대전화 개발 등 정보기술(IT) 산업과 자동차 산업 등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으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15연패를 하는 등 지능과 손재주가 동시에 필요한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 배경에 젓가락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세계 유일의 쇠젓가락 사용국
한국인은 제 손으로 밥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젓가락을 사용한다. 세계 인구의 약 35%가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되나, 한국은 남다른 점이 있다. 일본과 중국은 나무젓가락을 사용하고 보조적으로 숟가락을 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쇠젓가락을 쓰며, 숟가락도 젓가락과 항상 짝을 이뤄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쇠젓가락은 나무젓가락에 비해 가늘고 미끄러워 사용법을 배우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사용법을 익히고 나면 손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012 런던올림픽 당시 한국 양궁 대표팀의 선전을 본 로이터통신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선 나무 재질의 길고 사용하기 편한 젓가락을 쓰는 반면, 한국에선 얇고 미끄러워 쓰기 힘든 쇠젓가락이 보편적’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송고하면서, “한국 여자 궁수들의 손가락 감각은 굉장히 뛰어나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 점수를 판가름할 수 있을 정도”라는 백웅기 당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 감독의 말을 덧붙였다.각종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젓가락을 사용할 때 손의 관절과 근육 64개를 사용한다. 뇌 촬영도구를 이용한 한 연구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할 경우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것보다 집중력이 요구돼 뇌가 더 많이 활성화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실제로 우리는 음식 종류에 따라 다양한 젓가락 사용법을 구사한다. 라면 등 국수를 먹을 때는 젓가락의 기울기를 조절해 미끄러짐을 방지한다. 묵이나 두부 등을 집을 때는 젓가락을 쥐는 힘과 벌리는 각도를 최적으로 조절한다. 깻잎절임처럼 붙어 있는 음식의 낱장을 떼어내는 것은 더욱 난도가 높은 작업이다. 집중력과 힘의 배분이 필요하다. 젓가락을 사용해 우리가 구사하는 가장 고난도의 기술은 김칫국물 속에 남아 있는 김치 조각을 찢는 것이다. 김치 한 쪽을 조각조각 나누려면 젓가락의 힘과 움직임 속도를 세밀히 조절해야 할 뿐 아니라 국물이 튀지 않도록 하는 데도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때 뇌의 각 부분과 손의 관절 및 근육이 얼마나 섬세하게 사용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면서 한국인은 저절로 지능과 손재주를 발달시켜온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젓가락질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동안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젓가락 사용자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우리나라 성인의 67%가 잘못된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 5학년생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별도 조사에서는 젓가락질을 정상적으로 하는 학생이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한국인이 어린 시절 올바른 젓가락질을 배우지 못하고, 잘못 들인 습관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한편 군에서 제대한 복학생 97명을 대상으로 군부대 젓가락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부대생활을 하면서 늘 젓가락을 사용했다는 응답자는 35%(34명)에 불과했다. 젓가락질의 가치를 잘 모르다 보니 식문화에서 젓가락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젓가락질도 문화유산
반면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젓가락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올바른 젓가락질 교육과 관련 문화 계승을 강조해왔다. 1984년에는 8월 4일을 ‘젓가락의 날’로 정해 해마다 행사를 열 뿐 아니라 젓가락질 관련 교재와 자료 개발도 계속하고 있다. ‘개인 젓가락 갖기 운동’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색깔과 모양이 다양한 나무젓가락을 개발 및 보급하는 동시에 관광상품화해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또 세계 음식시장에 스시 문화를 확산하면서 자연스럽게 젓가락질도 함께 소개해 세계 상류층이 일본 젓가락 문화를 동경하고 따라 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중국도 세계 시장에 중국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통로인 공자학당 등에서 젓가락질을 가르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젓가락질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충북 청주의 행보는 의미가 있다. 6월 2일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에서는 한중일 문화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젓가락 문화 포럼’이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젓가락 문화는 2000년이 넘은 소중한 공통 문화로 후대에 물려줘야 할 자산’이라며 ‘젓가락 문화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자’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한중일 3국은 앞으로 젓가락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젓가락 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3국의 젓가락 전문가가 공동집필해 동아시아의 젓가락 문화를 소개하는 단행본을 내기로 했다. 이 책에는 한중일 각국에서 사용하는 서로 다른 젓가락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젓가락의 가치가 널리 알려지면 미래 사회의 핵심 자산인 융합적인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우리 문화의 소중한 자산인 젓가락질과 밥상머리 교육 복원이 미래 인적자원 확보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