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시작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공포가 생활가전제품에 그치지 않고 화장품이나 치약 같은 생활필수품에까지 퍼지고 있다. 9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아모레퍼시픽 치약 11종에 CMIT/MIT 성분이 함유돼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공기청정기, 에어컨 필터, 물티슈, 화장품에 이어 생활용품에서 CMIT/MIT가 검출된 것은 올해만 벌써 네 번째. CMIT/MIT는 일종의 살균·살생물제로 국내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에 처음 사용됐으나 심각한 흡기독성이 알려지지 않아 많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낳은 바 있다. 2011년부터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이듬해 CMIT/MIT를 유독물질로 지정했지만 사후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생활밀착형 제품에서 계속 독성물질이 검출되자 소비자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간다. 정부당국과 제조사는 CMIT/MIT가 극미량 함유돼 신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하며 소비자를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과 달리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CMIT/MIT 함유 치약을 전량 회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정부당국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없다던 치약이 전량 회수되는 이유
치약에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 있던 CMIT/MIT가 사용된 것은 ‘미원상사’라는 기업에서 생산하는 ‘소듐라우릴설페이트(SLS)’라는 물질 때문이다. SLS는 거품이 나는 것을 도와주는 계면활성제로, 여기에 소량 함유된 CMIT/MIT가 살균작용을 해 제품의 변질을 막는다. 이정미 의원이 지적한 아모레퍼시픽 치약 11종은 전부 이 물질을 원료로 사용했다.가습기 살균제로 두려움의 대상이 된 CMIT/MIT가 치약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이 악화되자 당국이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식약처는 9월 27일 SLS가 함유된 아모레퍼시픽 치약 11종에 대해 긴급 회수 결정을 내렸다. 이틀 뒤인 29일에는 미원상사로부터 납품받은 치약업체를 포함해 국내 68개 치약업체를 전수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독성물질 발견에 빠르게 대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식약처의 입은 반대로 움직였다. 긴급 회수를 시작한 27일 식약처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럽연합(EU)에서는 치약에 CMIT/MIT를 최대 15ppm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회수 대상인 치약의 CMIT/MIT 함유량은 0.0022~0.0044ppm으로 양치한 후 입안을 물로 씻어내는 제품의 특성상 인체에 유해성은 없다”고 밝혔다.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지만 식약처가 회수를 결정한 이유는 CMIT/MIT를 치약에 사용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2015년 9월 ‘식약처 고시 제2015-69호’를 통해 치약에 허용하는 보존제를 벤조산(안식향산) 유도체 3종(벤조산소듐, 파라옥시벤조산메틸소듐, 파라옥시벤조산프로필소듐)으로 제한했다. 긴급 회수된 치약들은 허용된 3종 외 SLS를 사용했으니 생산 자체가 금지된 제품이었던 것.
소량 함유된 독성물질, 정말 문제없나
아모레퍼시픽은 제품 전량 회수가 결정된 9월 27일 공식 사과문을 통해 “최근 원료사로부터 납품받은 SLS에 CMIT/MIT 성분이 극미량 포함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SLS에 CMIT/MIT가 함유된 것을 몰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해명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미원상사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2012년 2월 7일부터 MICOLIN S490(SLS로 만든 제품명)의 제품 규격이 올라와 있었다. 제품 규격에는 CMIT/MIT 함유 사실도 명시됐다. 미원상사는 이 원료를 치약 외에도 구강청결제, 화장품, 샴푸, 린스 등에 들어가는 용도로 국내외 30개 업체에 납품했다. 즉 치약은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도 계속 CMIT/MIT가 들어간 생활용품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이 우려하는 바는 CMIT/MIT 사용의 위법성보다 이 독성물질을 함유한 제품들의 인체 유해성 여부다. CMIT/MIT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흡기했을 때 폐섬유화 등 심각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했던(1037호 ‘美 환경청과 제조사의 살균제 CMIT/MIT 독성 경고 문건’ 기사 참조) 1993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CMIT/MIT 흡기독성 실험 결과 보고서에는 ‘기화된 CMIT/MIT를 흡기한다면 인체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극소량이라도 치약이나 샴푸에 함유된 CMIT/MIT가 기화해 흡기될 개연성이 있다. 평소 CMIT/MIT에 자주 노출되지 않는 환경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가습기 살균제, 에어컨 필터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독성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지금 같은 현실에서는 소비자의 건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CMIT/MIT는 피부에 닿거나 실수로 삼켰을 때도 신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카톤(KATHON)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CMIT/MIT를 공급하는 다우(DOW)사가 2015년 발표한 CMIT/MIT계열 화학물질 취급 주의사항을 보면 ‘카톤 제품이 피부에 닿으면 피부 화상이나 붉은 반점 등 상피세포 손상 위험이 있고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알레르기 반응이 생길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섭취하면 건강상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도 있다.
미국 제조사뿐 아니라 국내 처음 CMIT/MIT를 들여온 SK케미칼에서도 이 물질이 몸에 닿거나 입에 들어가는 것을 삼가라고 명시했다. 2011년 1월 발표된 SK케미칼의 SKYBIO 1125(CMIT/MIT계열 화학물질) 물질안전보건자료에는 ‘이 제품을 사용할 때는 먹거나, 마시거나, 수증기를 흡연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내용과 ‘취급 후에는 손을 철저히 씻으라’는 내용이 있다. 제품에 들어간 CMIT/MIT는 이에 비하면 극소량이겠지만 치약이나 샴푸같이 매일 사용하는 생필품에 독성물질이 들어가 있다면 소비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위험한 화학물질인 것은 확실하지만 CMIT/MIT의 사용을 전면 금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량 사용은 무방하다며 생필품에 CMIT/MIT 사용을 허용하는 국가가 많기 때문이다. 식약처 해명대로 유럽에서는 치약이나 구강청결제 등 사용 후 물로 씻어내는 제품에 CMIT/MIT가 15ppm(농도 15/100만) 이하로 함유된 경우 생산 및 판매가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흡기 제품 외에는 CMIT/MIT 사용을 전적으로 기업 자율에 맡긴다. 국내에서도 치약을 제외하면 사용 후 물로 닦아내는 제품은 유럽과 같은 기준치 내(15ppm)에서 CMIT/MIT 사용이 허용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치약에 사용된 극소량의 CMIT/MIT가 이처럼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된 이유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사회적 인식이 나빠졌기 때문”이라며 “시중에서 판매되는 약은 대부분 과다 복용하면 신체에 유해한 독성물질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약으로 쓸 수 있는 이유는 인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소량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CMIT/MIT도 마찬가지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장기간 많은 양을 흡기한다면 당연히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인체에 무해한 정도의 소량이라면 치약이나 샴푸 등에 쓰여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나태함이 촉발한 공포
이 교수는 “독성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증거가 양쪽으로 갈리고 전문가들의 의견 또한 팽팽히 맞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정부당국의 구실이 중요하다”며 “환경부와 식약처가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을 정확히 조사해 기준을 만들고 그에 따라 유독물질을 관리해야 하는데,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CMIT/MIT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조차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제품을 사용하는 국민은 불안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계속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임종한 교수도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나태를 지적했다. 임 교수는 “최소한 화학물질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에서 CMIT/MIT가 어디에 얼마나 사용됐는지를 알아야 국민의 독성물질 노출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관련 자료가 전무해 국민이 각자 CMIT/MIT가 함유된 제품 사용을 최대한 삼가는 것 외에는 대처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환경부는 CMIT/MIT의 인체 유해성 조사는커녕 사용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환경부에 신고된 CMIT/MIT 사용량은 각각 2.5t, 0.7t이었지만 2년 만인 2014년에는 각각 65t, 17t으로 급증했다. 독성물질 사용량이 이렇게 갑자기 늘어났는데도 그것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환경부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부는 6월 8일 ‘생활화학제품 내 살생물질 사용실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당초 목표는 6월 말까지 인체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되는 제품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고 12월까지 인체 위해성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었지만, 아직 자료 수집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전국 3600여 개 화학물질 생산업체의 70% 정도인 2500여 개 업체만이 자료를 제출한 상태다.
조사가 더딘 이유는 조사에 배치된 인력이 적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9월 19일 12명으로 구성된 화학제품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렸다. 그러나 현재 생활화학제품 내 살생물질 사용실태 전수조사를 맡은 담당자는 서기관 1명에 주무관 2명을 더한 3명뿐이다. 현재 국내에 유통 중인 화학제품은 2만여 개. 인당 제품 7000개를 조사해야 하는 것이다. TF 팀 관계자는 “조사할 품목이 너무 많아 조사가 늦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부는 계획대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자료를 미제출한 화학물질 생산업체 1117개에 대해 자료 제출을 촉구한 상태이며 10월말까지 미제출한 업체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전수조사를 당초 계획한 올해 말까지 완료하겠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