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시장이 죽은 지금 한국에서 해외 아티스트에 관한 기사가 한 줄이라도 나오는 경우는 거의 내한공연을 할 때뿐이다. 5월 28~29일 열리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여름까지 크고 작은 페스티벌과 단독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혹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온 적 없는 아티스트에게 공연 기획자는 무슨 근거로 베팅을 하는 것일까. 음반도, 음원도 판단용 데이터로 삼기에는 너무나 미미해진 상황에서 말이다.
답은 패러다임 변화에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음반이 주도하던 시대가 끝나고 공연산업이 중심에 서게 된 덕이다. 얼마 전 타계한 프린스의 경우 2007년 자신의 새 앨범을 영국 한 일간지에 공짜로 끼워줬다. 그리고 말했다. “요즘은 음반 판매가 아닌 공연으로 돈을 버는 시대다. 그러니 음반은 공짜로 듣게 해도 된다. 그 대신 그들을 공연에 오게 하면 된다.”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한 라디오헤드도 2007년 ‘In Rainbows’를 온라인으로 배포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으로. 그 후 ‘In Rainbows’ 월드투어는 라디오헤드의 역대 투어 가운데 가장 대규모로 열렸고, 최대 수익을 냈다. 바이럴(viral·입소문)의 힘이다. 많이 ‘구매’된 음악뿐 아니라 많이 ‘언급’된 음악의 주인공이 섭외 대상이 되는 것이다.
패러다임 변화는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서도 나타났다. 2006년 펜타포트를 시작으로 쌓여온 지난 10년간의 페스티벌 역사는 10대 때부터 공연을 보는 게 특별하지 않은 세대를 만들어냈다. 그 세대가 나이를 먹으면서 경제력도 생겼다. 이들은 음반을 구매하는 대신 공연 티켓을 산다. 음반이 차지하던 지위, 즉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공연이 대신한다. 레코딩이라는 과정이 거세된 뮤지션과 팬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공연인 셈이다. 공연을 볼 때 우리는 진짜 음악을 듣고 싶다는, 그 뮤지션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완벽히 구현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 비하면 많은 공연이 초대권 없이 유료 티켓으로 객석을 채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과제가 있다. 인프라 부족이다. 대형 공연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체육관에서 열리기 마련이다. 애초 공연을 염두에 두고 무대장치를 설치할 수 있게 설계된다. 음향적 고려는 물론이다. 하지만 한국 체육관에는 그런 배려가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버젓이 존재하던 무대장치를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설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면 늘 터져 나오기 마련인 음향에 대한 불만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제 막 마니아를 중심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들이 공연할 수 있는 1000~2000석 규모의 스탠딩 공연장이 예스24 라이브홀(옛 악스홀) 정도뿐이라는 것도 활성화의 속도를 저해하는 한 요인이다.
공연은 매력적인 콘텐츠다. 현대 대중예술의 정점이자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갖는 산업이기도 하다. 해외 뮤지션의 공연은 국내 공연 관계자는 물론, 장래 뮤지션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공부가 된다. 일본의 경우 공연이 끝나면 객석에 있던 뮤지션 지망생들이 무대 앞으로 몰려들어 장비와 세팅을 살필 정도다. 흔히 문화가, 콘텐츠가 미래 동력이라고 한다. 불합리한 여건에서도 성장하고 있는 콘서트시장에 날개를 달기 위해 필요한 건 바로 인프라 확충이다.
대형 공연장을 대표하는 서울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2017년
1만5000석 규모의 콘서트 전용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도 2만 석 규모의 서울 아레나가 2021년 개장할 예정이다. 새롭게 생겨날 대형 공연장에서 해외에도 꿀리지 않을 사운드와 운영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