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남 여론 흐름은 야당정치 전환의 징후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제1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 관행에서 탈피해 새로운 대안야당을 선택하려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야당 분열로만 치부한다면 호남정치 내부에 존재하는 복잡한 정치과정과 파급 효과를 놓칠 수 있다. 최근 호남 민심은 단순히 특정 야당 지도자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이미 도달한 사회경제적·정치적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는 야당의 무능에 대한 질타이자, 계파주의에 찌든 낡은 야당정치 패러다임의 종식을 촉구하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능과 무기력으로 상징되는 야당정치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이행은 대안야당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호남 민심의 주류적 흐름이다.
문재인 개인에 대한 비토가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현 호남 민심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더민주당에 대한 민심 이탈은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더민주당식 계파 패권정치와 정당 운영에 대한 비토이자 동시에 야당정치의 새로운 대안을 갈망하는 여론의 표출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민주당에 비판적인 호남 민심을 문재인 개인의 캐릭터, 정치적 애티튜드, 혹은 그동안 보여준 정치적 행보 때문이라고 간편하게 정리하는 것은 문재인 이외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은폐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현 호남 민심이 겨우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호감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오해를 살 우려도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전 대표와 더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체제의 등장은 호남 민심 이탈에 대한 일차원적 처방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문재인이 물러나면 더민주당에 대한 호남 지지도 회복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목격하고 있듯이 문재인이 물러났지만 더민주당에 대한 호남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4월 7일 현재 광주 8개 선거구에서는 국민의당 싹쓸이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문재인만 문제가 아니라 문재인 아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시선을 조금만 과거로 돌려보면, 18대 대통령선거(대선)를 앞두고 거세게 불었던 안철수 돌풍의 진원지가 호남이었다. 2014년 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통합되기 직전까지 안철수는 김한길 대표가 이끌던 민주통합당의 가장 강력한 대안세력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더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 이탈이 문재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력의 문제,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긴 시간적 배경을 가진 복잡한 문제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미 호남 민심 이탈을 문재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요인에서 찾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호남의 구태 정치인들이 ‘영남패권주의’라는, 야당에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가공해 호남인의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더민주당 측은 노무현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중앙정부 주요 요직에 호남 인사를 많이 발탁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총리, 장관을 포함한 호남 인사 비중이 전체 4분의 1에 이르렀는데, 이는 대구·경북이나 부산·경남에 비해 높았다고 주장하면서 ‘호남홀대론’은 호남 구태 정치인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내놓은 지역주의 선동이라고 주장한다.
정당 지지의 세대격차
이러한 주장은 일부 진실을 담고 있다. 실제로 호남지역 젊은 세대들이 국민의당을 지지하지 않는 가장 유력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국민의당을 구성하는 일부 정치인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그렇지만 호남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에 참여하는 정치인들이 다소 문제가 있음에도 더민주당이 아닌 국민의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단순히 ‘묻지 마 지지’ 혹은 ‘홧김 지지’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선거는 구조화된 선택지 내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과정에서 선택은 최선보다 차선, 최악보다 차악을 고르는 일이다. 즉 얼마나 더민주당이 문제라고 인식했으면 일부 구태 정치인이 포함된 국민의당을 지지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이러한 선택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진보적 투표 행태를 보였던 지역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역대 대선은 물론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 후보들의 정당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이자, 시·군·구 의회에서 당선한 의원 수가 다른 지역보다 많았던 호남지역의 여론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결국 민심 이탈의 원인은 국민의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민주당에 있다.
호남에서 더민주당에 대한 민심 이탈은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부분이 있다. 즉 현재 표출되는 호남 여론에는 세대격차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비호남지역에서 나타나는 국민의당 지지는 20, 30대가 50대 이상 유권자에 비해 높은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호남지역은 50대 이상 유권자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이 높은 반면 20, 30대 유권자는 더민주당을 더 많이 지지한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를 조심스럽게 정당일체감의 세대격차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경우도 부모 세대에 비해 자식 세대의 정당일체감이 완화되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다. 최근 발표된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정당일체감 조사를 보더라도, 미국은 30, 40대 밀레니엄 세대의 정당일체감보다 50대 이상 베이비부머 혹은 70대 이상 고령층의 민주당과 공화당에 대한 정당일체감이 더 높고 무당파 비중은 나이가 많을수록 낮다. 이를 현 호남 여론에 적용하면 50대 이상 세대일수록 정당일체감이 20, 30대 유권자에 비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정당 지지의 세대격차 현상이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젊은 세대의 정당일체감이 더 낮다는 경향과 젊은 세대의 더민주당 지지율이 높다는 것의 상관성을 설명하려면 다른 매개 요인이 필요하다. 정치적 경험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설명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가능한 설명이다. ‘탈물질주의’ 세대라 부를 수 있는 현 20, 30대 세대가 가진 정치적 경험은 과거 민주화운동의 정치적 세례로부터 자유롭다. 또한 젊은 세대는 40대 중반 이상의 기성세대가 공유하는 민주화 패러다임하의 정당정치에 익숙지 않다. 바꿔 말하면 40대 중반 이상 세대가 공유하는 혹은 일체감을 갖는 정당의 이념, 정책, 정치적 태도에 20, 30대는 공감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젊은 세대는 5·18민주화운동,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햇볕정책, 호남정치 복원 등 가시성이 떨어지는 이슈에 반응하기보다 정치적 이합집산, 빈약한 의정활동, 계파정치에 포획된 정당활동, 시민사회에서 빈약한 존재감 등 현역의원에 대한 회고적 평가를 통해 지지 정당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경험의 격차에서 연유하는 인식의 차가 20, 30대의 정당 지지와 50대 이상의 정당 지지 간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할 수 있다. 즉 전통적인 야당의 이념과 정책, 노선, 정당 내 호남 주도권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더민주당을 지지하기보다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그렇지 않은 젊은 유권자는 지난 임기 동안 현역의원를 관찰한 회고적 평가에 입각해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것이 호남에서 20, 30대는 더민주당, 50대 이상은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정당 지지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호남에서 더민주당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보자. 일반적으로 정당은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와 연합을 형성한다. 유권자가 정당과 연합을 구성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유권자는 정당의 이념, 지역, 세대, 계층, 대북노선 등과 관련한 견해에 따라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기존 야당은 이념적으로는 중도+진보, 지역적으로는 호남+영남 일부, 세대별로는 20~40대, 계층적으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노동자, 대북 포용정책 지지자의 연합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러한 연합이 구성되기까지 역사도 복잡하다. 거칠게 정리하면, 1987년 양 김의 대선후보 단일화 무산 이후 지속되던 영남과 호남의 결별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호남+영남 일부+충청 연합을 통해 복원됐고 2002년 호남과 영남 일부, 그리고 민주노총 등을 위시한 조직노동과의 결합으로 완성됐다. 그 결과 10년의 민주정부 시기와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라는 과실을 얻었다. 물론 야권연대와 후보 단일화라는 전술적 선택이 첨가됐다.
통합의 역사, 분열의 역사
물론 야당에 통합의 역사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분열의 역사 또한 존재했다. 1987년 양 김의 분열에서 시작해 90년 3당 합당을 통해 완성된 호남 고립, 그리고 열린우리당 창당, 정동영이 후보였던 17대 대선에서 친노(친노무현)세력 이탈, 문국현을 위시한 창조한국당 실험, 국민참여당 창당, 18대 대선 당시 안철수 실험에 이르기까지 통합 못지않은 오랜 분열의 역사를 갖고 있다. 야당이 통합과 분열을 거치는 과정에는 결국 야당-유권자연합의 큰 축이던 호남의 정치적 위상 변화와 주도권 다툼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계파갈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계파가 정당 내부 정치인들의 분획선이라면 유권자연합은 당내 계파를 넘어서 지지의 분획선이라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이러한 분열의 역사 속에서 호남은 96년 15대 총선에서 민주당에서 이탈한 새정치국민회의를 선택한 바 있고,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대신 민주당을 선택한 경험이 있다. 가까이는 2015년 4·29 재·보궐선거에서 천정배의 당선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이를 단순히 정책과 이념, 노선의 차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사후적 정당화가 어떻게 이뤄졌든,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유권자 연합을 구성하는 세력의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야당의 역사는 계파의 역사이기 전에 야당과 유권자연합 내부의 헤게모니 경쟁이라는, 좀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빈번한 정당-유권자연합을 통해 만들어진 야당은 유권자연합 내부의 경쟁과 갈등을 치유할 리더십 및 정당문화를 만들지 못했다. 특히 노무현 이후 친노와 비노(비노무현)라는 계파적 구분이 영남과 호남을 따라 덧씌워졌다. 결국 호남에서 더민주당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야당-유권자연합 내부의 균열 때문이다. 반새누리연합을 구성했던 야당 지지층의 한 축을 형성한 호남의 전통적인 유권자들이 더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새로운 대안세력을 찾는 과정이 현재 호남에서 나타나는 더민주당에 대한 민심 이탈 현상이다. 더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야당 내에서 정당 내부의 자원 분배, 공직후보 결정과정에서 당원의 영향력을 끊임없이 떨어뜨려왔던 정치적 관행은 가장 많은 당원을 보유한 호남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당내 정치의 지속적인 반복이 정당 내부의 지도부 선출과정에서 호남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져 호남은 야당 내에서조차 주변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으며, 호남에 대한 홀대론을 형성하는 동력이 됨과 동시에 안철수의 탈당과 신당 창당 과정에서 지지의 이동으로 이어지는 동인이 됐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원인은 정당일체감의 상실에서 찾아야 한다. 문재인 체제에서 시작해 김종인 체제에서 극대화한 더민주당의 정당노선은 기존 호남정치의 전통적 가치와 상당 부분 충돌한다.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국보위 출신 김종인을 영입한 행위는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대한 반발이 호남 내에서 실제로 있었다. 그뿐 아니라 분배라는 진보적 가치에 익숙한 호남 유권자에게는 보수정당에서나 주창하던 소득 주도 성장론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고, 특히 햇볕정책 폐기와 대북 강경 노선 등 외교안보 노선의 우클릭은 정통 야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김종인 대표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재인 대표 시절부터 존재하던 문제다. 그래서 전통적인 호남 유권자는 더민주당에 대해 더는 ‘우리 당’이라는 인식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유권자가 정당에 일체감을 갖기 위해서는 정당을 자기 당으로 인식할 레퍼런트(referent)가 있어야 하는데 더민주당에서는 그것이 사라졌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
중도보수 대 온건진보, 청년 세대 대 86세대, 성장과 분배, 정규직 노동자 대 비정규직 노동자, 외교안보 노선의 우경화를 둘러싸고 내부의 틈도 이 구획선을 따라 제법 벌어졌다. 이는 정당 선택뿐 아니라 선거 성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의 경제의 공화당화 노선이 당대에는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클린턴 이후 앨 고어 등은 경제의 공화당화를 넘어선 외교안보의 공화당화를 추구하다 선거에서 패배해 부시의 장기집권을 가져왔던 경험이 있다. 경제 노선과는 다르게 외교안보 노선은 타협이 불가능한 존재에 대한 질문 그 자체다.선거가 목전에 다가온 지금 변수는 역대 선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해온 호남 유권자 특유의 ‘전략적 투표’다. 더민주당은 ‘호남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혹은 ‘호남 고립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는 호남을 고립하는 결과가 될 것이며, 국민의당은 기껏해야 호남 자민련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은 기존 ‘야당 교체론’에 ‘지역 실리론’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더민주당이 주도하는 야당정치를 전면 재편해야 정권교체도 가능하고, 호남 실리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호남판 자민련의 등장이 호남의 지역 이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총선 이후 야당의 체질 개선과 혁신을 강제하는 현실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필자가 보기에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호남 유권자 상당수는 총선 뒤 야권의 대규모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광주에서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국민의당 지지를 철회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권교체가 가능한 정당을 선택한다는 의미의 전략적 선택은 이번 선거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호남 유권자들은 왜 더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을까. 더민주당은 더는 호남 유권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당 내에서조차 심화하는 호남의 주변화와 전통적 야당 노선으로부터 이탈은 더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호남 유권자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예전과 같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름의 표 몰아주기가 나타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지금은 표의 집중이 아닌 분산을 통한 야당 재편이 호남 유권자의 전략이라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