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도 못 고치는 남편입니까. 은퇴 후 귀농, 귀촌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그런 남편과 일 많은 시골생활을 함께 하는 걸 선뜻 반길 아내는 없습니다. 평소 실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일 머리가 있고 일상에 쓸모 있는 걸 만들 줄 안다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처음이니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볼까요. 마침 오래된 올리브유가 있습니다. 요리에 쓰자니 쩐내가 납니다. 버리기도 아깝네요. 자, 오일 램프 만들기에 도전해볼까요.
원리를 알면 방법이 보인다
무엇이든 내 손으로 만들려면 먼저 알아야 합니다. 램프 기름으로 등유나 파라핀유를 주로 사용합니다. 등유는 그을음이 심합니다. 초의 재료가 되기도 하는 파라핀유는 500㎖에 2000~3000원이지만 그을음이 적은 고급 파라핀유는 가격이 비싸고 국내에서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석유계 기름이 등장하기 전에 서양에선 올리브유를 램프에 사용했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등잔이나 호롱불에 동백유 등 식물성 기름을 사용했습니다. 식물성 기름은 그을음이 적고 초에 비해 적은 양으로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식물성 기름은 대부분 발화점이 높습니다. 특히 올리브유는 발화점이 370도로 기름이 쏟아져도 쉽게 불이 붙지 않습니다. 발화점이 낮은 등유나 파라핀유에 비해 안전합니다.식물성 기름은 점성이 높습니다. 심지로 쉽게 빨려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램프 기름으로 쓰기에 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램프 용기는 가능하면 낮아야 합니다. 동화에서 보던 아라비안 램프도 낮은 접시형이거나 주전자형입니다. 우리의 호롱불 등잔도 깊지 않죠.
또한 올리브유 램프는 파라핀유 램프보다 굵은 심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아기 손가락 굵기가 적당합니다. 순면 100% 노끈을 심지로 사용합니다. 면실이 있다면 여러 겹 꼬아 만들 수 있겠죠. 순면 수건을 말아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종종 면 심지가 너무 빨리 타서 불이 꺼지곤 합니다. 예전에는 아주 진한 소금물에 순면 노끈을 담가 뒀다가 말려서 심지로 사용했습니다. 소금기가 심지를 감싸 천천히 타게 만듭니다.
2000원 정도면 심지가 빠지지 않게 잡아주는 황동 심지꽂이(심지 탭)와 면 심지 20cm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둥이가 있는 금속 오일병 마개를 심지꽂이로 사용했습니다. 병뚜껑에 못 구멍을 내고 심지 끝 일부를 남겨 알루미늄포일로 살짝 감싸면 됩니다. 반지 모양 자기고리를 심지꽂이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관찰 결과 뜨겁게 가열된 심지꽂이는 심지가 기름을 빨아올리고 좀 더 쉽게 유증기가 발생되도록 온도를 유지해줍니다. 심지가 너무 빨리 타지 않도록 공기를 차단하는 기능도 합니다. 불꽃 크기는 심지의 노출 길이와 굵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심지를 심지꽂이에서 너무 많이 빼면 불꽃이 커지지만 그을음이 날 수 있고 심지가 빨리 타게 됩니다. 켤 때와 끌 때를 빼고는 그을음과 냄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와 심지꽂이가 준비됐다면, 높지 않은 빈 병에 오래된 올리브유를 넣고 심지와 심지꽂이를 끼우면 램프가 완성됩니다. 향초를 대신한 기름 램프에 향을 추가하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올리브 오일에 식재료로 사용하는 정향이나 말린 계피, 민트, 라벤더, 로즈메리 등 허브를 넣거나 먹다 남은 오렌지나 귤 껍질, 생강을 잘라서 넣습니다. 물론 허브 에센스 오일이 있다면 몇 방울 추가해도 됩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일렁이는 불꽃과 함께 어느새 집 안에 향긋한 향이 번집니다. 어떤가요. 올리브유 램프 만들기 무척 쉽죠?
압력밥솥으로 허브 에센스 오일 만들기
이제 램프에 넣을 허브 에센스 오일이 필요합니다. 텃밭에서는 라벤더와 로즈메리가 자랍니다. 봄이면 민트와 레몬밤이 지천으로 번질 겁니다. 매실도 녹차도 꽃을 피울 테고 유자도 곳곳에서 열매를 맺을 겁니다. 유자 껍질은 감귤류 오일인 시트러스 오일의 좋은 재료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요리나 휴식, 건강을 위해 허브 오일을 사용합니다. 라벤더, 페퍼민트, 로즈메리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허브들이죠. 이 밖에도 수십 가지 식물에서 허브 오일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에센스 오일을 허브에서 추출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가 있습니다. 증기 증류 추출, 용매 추출, CO2 추출, 유기 추출. 이 가운데 증기 증류 추출은 가장 오래되고 간단한 방식입니다. 다른 방법들에 비해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허브 오일에 도전하고 싶은데 증류기를 만들 자신이 없습니까.
허브 오일 증류기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끓는 물에 허브를 넣고 더 끓이면 증기와 기화된 허브 오일이 나옵니다. 이것을 냉각해 허브 오일과 향액수를 추출합니다. 냉각된 응축수를 모으면 오일은 수집통 상부에 모이고, 향액수는 하부에 모입니다. 옛날 오일 증류기는 소주 내리는 소주고리와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근대로 오면서 냉각 응축률을 높이고자 열전도성이 높은 동관을 냉각 코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압력밥솥을 이용해 허브 오일을 증류해봅시다. 준비물은 압력밥솥, 동관(직경 10mm, 길이 3m), 플라스틱 말통 2개, 실리콘, 플라스틱 수도꼭지 부품 2개입니다. 재료가 준비됐다면 다음 순서로 허브 에센스 오일 증류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허브 에센스 오일 만들기
1. 압력밥솥의 안전밸브에 동 또는 열에 강한 호스나 동관(증류관 직경 10mm 전후, 길이 3m)을 끼운다.
2. 동 증류관을 플라스틱 말통에 코일 형태로 말아 넣는다. 호스의 한쪽 끝을 플라스틱 말통 밑쪽에 뚫은 구멍을 통과하게 만든다. 이때 호스를 끼운 구멍이 새지 않도록 실리콘으로 접착 밀봉한다. 플라스틱 말통에 찬물 또는 얼음물을 가득 채운다. 이것이 냉각통이다. 냉각이 잘 될수록 오일 추출률이 높아진다. 수돗물을 계속 플라스틱 냉각통에 흘려보내야 수율이 높아진다.
3. 플라스틱 말통을 통과한 증류관 끝에 수집통을 받친다. 수집통은 상부와 하부에 각각 플라스틱 수도꼭지를 단다. 위로는 허브 오일, 아래로는 향액수를 분리해 받을 수 있다.
압력밥솥에 4분의 3 정도 물과 허브를 잔뜩 넣고 뚜껑을 닫은 후 끓이면 허브 오일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그리 어렵지 않죠? 무엇이든 내 손으로 만드는 것만큼 재미난 일도 없답니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 보십시오.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신감도 커집니다. 아내의 신뢰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