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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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만보

있는 그대로를 논하다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2-29 10: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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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漢)대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였던 왕충이 30년에 걸쳐 썼다는 ‘논형(論衡)’은 30권 85편에 이르는 대작으로, 국내 최초 완역본 분량도 자그마치 1056쪽에 이른다. 왕충은 무엇을 위해 세상과 교유를 끊고 이 책을 쓰는 데 반평생을 바쳤을까.
    ‘논형’이라는 제목부터 따져보자. 형(衡)은 저울을 뜻한다. 말 그대로 ‘평론의 저울’. 이 책을 최초 완역한 성기옥 한국방송통신대 연구교수는 ‘있는 그대로를 논한다’로 풀이한다. 성 교수는 “속된 유가에 대한 비판, 도가의 주장에 대한 긍정과 부정, 공자와 맹자 및 한비자의 주장에 대한 긍정과 반박, 귀신의 실체, 서적의 산일 문제, 서적의 평론, 자연과 천체, 인재 평가 방법, 숙명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언론의 시비와 진위에 대한 표준을 가늠하고자 했다”고 이 책을 설명한다.
    왕충 스스로 ‘논형’의 저작 목적을 밝힌 ‘대작’(84편)에서 “허망한 말을 물리치지 않으면 부화(浮華·실속 없이 겉만 화려함)한 문장은 그치지 않는다. 부화한 문장이 범람하면 사실을 전하는 문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논형’에서는 말의 경중을 저울질해 진위에 대한 공정성을 수립하려 했다”고 썼다. 왕충의 저울은 소위 성현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엄격히 적용됐다. 28편 ‘문공(問孔)’, 29편 ‘비한(非韓)’, 30편 ‘자맹(刺孟)’에서 왕충은 “공자의 말에 대해서는 질문하고, 한비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맹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질책한다”(성기옥). 사실 ‘문공’에서 왕충이 비판하는 것은 공자의 말씀 자체가 아니라, 스승의 말이라면 맹신하고 의문을 품지 않는 유생과 학자들의 태도였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마땅히 질문해서 그 뜻을 깨달아야 한다.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다면 마땅히 논쟁해서 그 뜻을 깨달아야 한다”며 왕충은 질문과 논쟁으로 학문하는 이의 자세를 설명한다.
    ‘비한’에서는 한비자가 말(유익)과 사슴(무익)의 비유로 유가(儒家)의 쓸모없음을 지적한 것에 대해 “유생이 예(禮)라면 농사와 전쟁은 음식”이라며 “농사와 전쟁을 중시해 유생을 천시하는 것은 예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는 일과 같다”고 비판했다. 한편 왕충은 ‘자맹’에서 맹자의 주장을 질책하지만 사실 ‘논형’ 전편에서 맹자에 대한 존숭을 드러낸다. “맹자는 양주와 묵적의 논설이 속된 유가의 논설을 지나치게 압도하는 현상이 염려됐다. 그리하여 공정한 논설로써 옳은 일은 칭찬하고 잘못된 일은 비판했다”(대작)는 게 왕충의 설명이다. 그리고 “시비를 밝히는 일이 괴롭고 마음 아플지라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학문의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최근 출판계에서 1000쪽 안팎의 책이 인기를 끄는 소위 ‘벽돌책 불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수두룩하다지만 고전 최초 완역을 완독하는 즐거움만한 게 있으랴. 읽다 지쳐 베고 눕더라도 뿌듯한 책이다.



    겸재 정선, 붓으로 조선을 그리다
    이석우 지음/ 북촌/ 336쪽/ 2만2000원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등 국보급 그림을 남긴 겸재 정선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한 책. 경희대 사학과 명예교수이자 겸재정선미술관 관장인 저자는 겸재를 우리나라 최초 근대미술가로 꼽고, 그가 ‘진경산수’라는 새로운 화풍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관상감 천문학 겸교수로 첨단문물을 가장 먼저 접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자연산수, 인물, 화훼영모 등 겸재의 작품을 중심으로 17~18세기 조선시대를 읽어나갈 수 있다.







    보편주의
    양승태 외 지음/ 책세상/ 480쪽/ 2만3000원
    특수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편주의는 지역, 개인, 집단을 초월해 보편성을 갖는 사상과 운동을 가리킨다. 보편주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속한 구성원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며, 이는 정치사상사의 영역에서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같은 보편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으로 이어진다. 정치학자 14명이 보편주의의 사상사적 흐름을 역사적으로 정리했다.





    위대한 공존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정은 옮김/ 반니/
    408쪽/ 1만8000원
    늑대는 인간의 사냥을 돕고 찌꺼기를 얻어먹다 개로 거듭났다. 젖과 고기, 털까지 쓸모 많은 염소와 양을 울타리에 가두면서 사유재산의 개념이 생겨났다. 돼지를 키우면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했고, 야생소를 길들여 짐 운반부터 농사일까지 돕는 최고 일꾼으로 만들었다. 말은 빠른 이동수단으로 사랑받았지만 당나귀와 낙타는 장거리 교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인간과 동물의 애증관계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가치를 사는 소비자 공감을 파는 마케터
    김지헌 지음/ 갈매나무/ 304쪽/ 1만5000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의 현장감 넘치는 마케팅 교과서. 소비자는 어떤 유형의 가치를 추구하는가(가치추구). 우리 제품은 어떤 가치를 차별적으로 제공할 것인가(가치제안). 어떻게 하면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가치전달). 이 세 가지를 연결하는 ‘가치연쇄모형’을 제안하고 독자들의 ‘마케팅 두뇌 만들기’에 들어간다. ‘판매할 것인가, 마케팅을 할 것인가’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첫 단계.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정운현 지음/ 인문서원/ 292쪽/ 1만6000원
    안동 출신 김락 집안은 친정과 시댁을 합쳐 26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지만 그의 이름은 2000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의열·무장투쟁에 참가한 안경신과 남자현, 윤희순, 노동운동가 강주룡, 여성운동가 조신성, 임시정부에서 헌신한 조마리아와 정정화, 광복군·조선의용대의 오광심과 박차정 등 영화 ‘암살’에서 저격수 ‘안옥윤’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영영 잊혔을지도 모를 여성 독립운동가 24인의 삶과 행적을 복원했다.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
    박준 지음/ 어바웃어북/ 372쪽/ 1만5000원
    10년 전 ‘온 더 로드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와 책으로 수많은 청춘을 배낭여행족으로 만들었던 저자가 안락의자에 앉아 책 속 ‘그곳’으로 떠나는 새로운 여행법을 제안한다. 노엘 라일리 피치의 ‘파리 카페’를 들고 카페 셀렉트로 날아가 피카소의 모습을 그리는 장 콕토를 상상하고,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를 읽다 들판을 걷는 회색곰 한 마리에 마음을 뺏긴다.





    안계환의 인문병법
    안계환 지음/ 좋은책만들기/ 344쪽/ 1만6000원
    정리해고 없이 정년 70세까지 보장하며 연간 140일씩 노는 회사로 유명한 일본 중소기업 미라이공업의 승부수는 ‘적자생존’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면서도 ‘사장은 놀아야 한다’는 독특한 경영관으로 인재경영에 성공한 것. 그 밖에 조직력, 약점공략, 위장퇴각, 변칙전술, 청야전술, 유격전술, 핵심지점, 배수진 등 강자를 이긴 약자들의 필승법을 정리했다.





    우주의 통찰
    앨런 구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김성훈 옮김/
    와이즈베리/ 528쪽/ 2만2000원
    웹사이트 ‘Edge.org’를 통해 현대과학의 핵심 주제와 최신 동향을 제시해온 존 브록만이 석학 21명과 함께 우주의 기원과 미래, 인류에게 던져진 난제들에 도전했다. ‘급팽창이론’의 아버지 앨런 구스의 2001년 강연 내용을 옮긴 ‘우주론의 황금시대’부터, 고인이 된 브누아 망델브로의 ‘거칠기이론(A theory of Roughness)’까지 우주론의 쟁점들이 가져올 변화와 혁신에 대한 통찰을 접할 수 있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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