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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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추락 사망사고 후에도 부실 안전난간 그대로

조선소 노동자들 “수십 년 전부터 위험한 상태로 일해… 개선 요구해도 바뀌는 것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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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입력2024-10-2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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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특수선 도장 일을 하지만 올해 초까지만 해도 9월에 추락 사망사고가 났던 컨테이너선 ‘코밍 톱’에서 일했어요. 거기가 밤에는 일을 할 수가 없을 만큼 위험한 곳이에요. 32m 낭떠러지라 떨어지면 바로 죽어요. 밤에는 돈을 준다고 해도 일하고 싶지 않죠. 보통은 코밍 톱 작업을 밤에는 잘 안 하는데, 재해자가 왜 그날 일하러 올라갔는지 모르겠어요.”(한화오션 하청업체 노동자 A 씨)

    “추락 사고가 난 컨테이너선의 특성상 건설 현장에는 있는 추락 방지용 수평 그물망이 없어요. 제가 거제사업장에서만 3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데, 예전부터 그렇게 위험한 상태로 계속 작업해왔어요. 제가 한 달 전부터 고소차(고소작업차)가 노후화됐으니 바꿔달라고 회사에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도 안 해주고 있습니다.”(한화오션 정규직 노동자 B 씨)


    9월 9일 야간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한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된 자신들의 근로환경을 걱정하며 한 말이다. 기자가 현지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조선소 야간작업이 위험하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수주 호황기를 맞은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의 올해 영업이익이 2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조선소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중대재해가 늘어나고 있다.

    야간에 추가 작업하다 추락사

    10월 17일 촬영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안전난간은 느슨한 줄로 만들어져 있고 난간 기둥은 고정 장치에서 빠져 있다. [독자 제공]

    10월 17일 촬영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안전난간은 느슨한 줄로 만들어져 있고 난간 기둥은 고정 장치에서 빠져 있다. [독자 제공]

    9월 9일 오후 10시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구모 씨(41)가 컨테이너 선박 위 32m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올해 한화오션에서 3번째로 발생한 중대재해 사망자였다. 한화오션과 비정규직 노조인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설명을 종합하면 구 씨는 사고 당일 오후 8시 퇴근하기로 돼 있었으나 한화오션 측 요구로 추가 작업을 했다.

    10월 23일 오후 5시 기자가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앞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작업 현장에 여전히 각종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사망한 구 씨와 같은 컨테이너선 작업을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 C 씨는 “사업장 근처에 있는 아파트 옥상에 가서 사업장을 내려다보면 알 수 있듯이, 작업 공간에 조명이 띄엄띄엄 설치돼 있어 밤에는 시야 확보가 어렵다”며 “조명은 한화오션이 관리하기 때문에 하청업체 측에 조명을 더 세게 해달라고 요청해도 바뀌는 게 없다”고 밝혔다. 거제사업장에서 9년째 안전관리 보조 업무를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 D 씨는 “밤에는 어두워서 작업자들이 안전장비를 잘 착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국감 이후에도 안전난간 개선 안 해

    10월 11일 촬영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안전난간을 지탱하는 난간 기둥이 고정되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다.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제공]

    10월 11일 촬영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안전난간을 지탱하는 난간 기둥이 고정되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다.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제공]

    하청 노조는 추락 사망사고 현장에 안전난간이 부실하게 설치돼 있어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실내 작업을 한다는 하청업체 노동자 E 씨는 “추락 사망사고 이후 사고가 난 야외 작업 현장을 처음 가보니, 몸에 부착한 안전 고리를 연결하는 ‘라이프 라인’은 있지만 안전난간은 한편에만 설치돼 있어 반대편은 훤히 뚫려 있었다”며 “배 꼭대기에서 안전난간 없이 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10월 17일 촬영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의 작업 현장 사진을 본 한 산업안전산업기사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지름 2.7㎝ 이상 강관 파이프를 사용해 안전난간을 설치해야 하는데, 사진에 찍힌 안전난간은 강관이 아닌 PP로프나 와이어로프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자가 10월 17일 촬영된 컨테이너선 고소 작업장 동영상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안전난간은 여전히 금속제 파이프가 아닌 늘어진 로프로 이뤄져 있었고, 안전난간을 지탱하는 난간 기둥이 바닥에 붙어 있지 않아 그물망을 손으로 밀면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틈이 만들어졌다. 23일 만난 하청 노조 한 조합원은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이 국정감사에 다녀오고 8일이 지난 오늘도 사진과 똑같이 안전난간이 부실하게 설치된 곳에서 작업자들이 일했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사업장 안전난간이 부실하다는 지적에 대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추락방망을 설치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과 현장 점검을 할 때는 이상이 없었으나 클램프로 고정한 그물망이 1만여 개에 달해 일부 훼손이 있을 수 있고 발견 즉시 개선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 작업 현장도 산업재해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의 산재 신청 및 승인 건수는 지난 2021년 787건(승인 596건), 2022년 985건(682건), 2023년 1073건(761건)으로 증가 추세다. 올해도 8월까지 512건이 신청돼 370건이 승인됐다. 올해 2월에는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해양공장에서 원유생산설비 철제 구조물을 이동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6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산업안전대책에 대해 “하청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여와 관련해 회사 내부 검토가 진행 중”이라며 “제반 법령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해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김춘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조선회사가 제시한 산업재해 예방 대책에 대해 “조선소 산업재해의 근본 원인은 낮은 임금 때문에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숙련공들이 빠지고 그 자리를 신입과 외국인 노동자가 채우면서 작업 현장의 위험 요소가 증가하는 것”이라면서 “조선회사들이 산업재해를 막겠다며 내세우는 스마트 조선소로는 산업재해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과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10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산업재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임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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