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 금융 전문가인 류지펑 중국 정법대 자본금융연구원 원장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에 올린 글이다. 류 원장은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증권법과 선물거래법 등 중국 자본시장 관련법 초안 마련에 참여했고 270여 개 기업의 주식 재상장과 투자 방안을 설계한 인물이다.
중국 경기침체는 외부 탓?
지난해 8월 17일 디폴트 위기에 빠진 중국 1위 건설사 비구이위안 (碧桂園·컨트리가든)이 베이징 외곽에 건설 중인 아파트 앞 차량 유리에 “주택 소유자의 권리를 보호하라”고 쓴 팻말이 올려 있다. [뉴시스]
주목할 점은 중국 국가안전부가 경제위기설 유포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간첩죄 등을 적용해 처벌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한국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정보·방첩 기구다. 국가안전부는 SNS 위챗의 공식 계정을 통해 “국가 보안기관은 확고한 경제 안보 장벽을 단호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경제 분야에 대한 부정적 선전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국가안전부는 “중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각종 케케묵은 논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제도와 그 경로에 지속적인 공격과 부정을 가해 중국에 대한 전략적 포위와 탄압을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중국 체제를 흔들려는 외부 세력의 인지전으로 규정한 셈이다
중국 수도 베이징 톈안먼광장 인근에 있는 국가안전부 건물. [위키피디아]
中 경제성장률 목표치 5% 안팎
2023년 6월 중국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21.3%를 기록했다. [China Daily]
당시 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중국 발전이 직면한 유리한 조건은 불리한 요인보다 강하고 경제 회복과 장기적·긍정적 전망의 근본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며 경제광명론을 강조했다. 이는 중국 경제가 성장 정점을 지났다며 대내외에서 제기하는 경제위기론에 적극 대응하라고 촉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 자리에서 2024년 경제정책 방향으로 ‘온중구진 이진촉온 선립후파(穩中求進 以進促穩 先立後破)’라는 12자 방침을 공표했다. 이는 ‘안정을 유지하고, 발전을 통해 안정을 촉진하며, 옛것을 폐지하기 전 새로운 것을 확립해 계속해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이를 위해 △최첨단 산업 혁신 △내수 확대 △핵심 분야 개혁 심화 △외국인 투자 촉진을 위한 개혁·개방 확대 △부동산·지방부채 등 리스크 관리 △농업 강국 건설 △도농 통합·지역 협력 발전 △녹색·저탄소 발전 △인민 생활 개선 등 9가지를 2024년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중국공산당 정치국은 성명을 통해 “모든 면에서 불확실성이 상당하고 역풍이 거센 시기에 중국에 절실하게 필요한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성장 중심 정책을 강화하겠다”고도 밝혔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도 결정됐는데, 중국 정부는 3월 열릴 전인대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5% 안팎’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로 성장’ 전망하는 서방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제시한 경제광명론에 대해 중국 내부는 물론, 서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 국가안전부가 국내 전문가들의 입을 틀어막는 조치를 내린 까닭이다. 중국 관영 언론매체 역시 경제위기론을 언급한 서방 언론들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외교부는 “중국 경제는 지속적으로 호전되고 있다”는 성명까지 이례적으로 내놨다.하지만 서방 언론과 경제 전문가, 국제 경제기관 등은 이구동성으로 중국 경제위기론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면서 중국 경제가 지난해 회복세를 보이는 전환의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며 “중국 정부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의 지난해 실제적인 성장률은 0~2.5%에 불과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WSJ는 “중국 경제학자들은 솔직하게 중국 경제 현실을 말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이런 주장이나 분석들을 틀어막는 데 급급하다”고도 비판했다. 미국 CNN 역시 “중국 경제가 지난해 빠르게 회복돼 확실한 글로벌 성장 엔진으로서 역할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중국 경제를 세계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지목할 정도로 주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는 이미 빨간불이 켜질 정도로 나빠지고 있다. 심지어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 역시 중국 시장에서 손을 떼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증시에서 외국인의 주식 거래 자금이 지난해 12월 251억 위안(약 4조6000억 원) 순유출됐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지정학적 리스크와 투자심리 위축으로 중국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650억 달러(약 85조 원) 자금 유출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포함하지 않고 있는 숨겨진 부채가 7조 달러(약 9150조 원)에서 11조 달러(약 1경4390조 원)로 추정된다는 설도 나온다.
‘경제광명론’을 강조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장과 달리 국제사회에서는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
美 기업, “직원들 중국 떠나라” 권고
WSJ는 “중국 지방정부는 수년 동안 확인되지 않은 차입과 지출로 막대한 양의 숨겨진 부채가 축적돼 있다”며 “추산된 ‘부외(off-balance-sheet) 부채’ 중 4000억 달러(약 523조2000억 원)에서 8000억 달러(약 1046조4000억 원)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에 노출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부외 부채란 대차대조표 등 공식 데이터에는 잡히지 않는 채무로, 지방정부의 부채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중국의 장기적 성장 둔화 가능성과 지방정부·국영기업의 부채 문제, 부동산시장 침체 등을 반영해 중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국 정부의 보복을 우려해 베이징 지사 직원들에게 중국을 떠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국제 경제 전문가와 기관은 자칫하면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경제성장 초기에 순조로운 성장세를 보이다가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현상을 말한다. 데릭 시저스 미국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개혁 없이는 2020년대 후반 성장 둔화를 보이게 될 것”이라며 “인구 감소와 부동산 문제도 심각하다”고 밝혔다.
IMF도 “중국 경제성장률이 생산성 저하와 인구 고령화 속에서 2028년까지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토 다카토시 일본 도쿄대 국립정책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가장 큰 리스크는 지도자들이 경제 역동성보다 감시, 통제, 강압을 통한 안보와 안정을 더 우선시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서방 언론들 역시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경제위기설 유포를 강압적으로 틀어막더라도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