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력에 ‘독특함’이 더해진 건 2015년부터. 그해 과학기술부가 발주한 ‘이미지경매 기술개발 및 실증 연구’에 참여한 성 소장은 ‘농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이를 계기 삼아 대학원에 진학, 2019년 농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관련 연구를 계속해 2년 뒤 농식품부장관상을 수상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경제‧경영‧기술 분야에 정통한 농업학자로서 성 소장이 가진 위상은 독보적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학문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최근 ‘농산업 융합’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그가 11월 1일 펴낸 책 ‘가장 오래된 첨단산업 농업의 미래’(이하 ‘농업의 미래’)를 보면 한국 농업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성 소장의 통찰을 만날 수 있다.
한국 농업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 ‘가장 오래된 첨단산업 농업의 미래’를 펴낸 성형주 농산업융합연구소장. [박해윤 기자]
농업, 가장 오래된 첨단산업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건 농업 앞에 붙은 ‘가장 오래된 첨단산업’이라는 수식어. 첨단산업이라고 하면 빅데이터, 나노바이오 같은 하이테크 분야를 떠올리는 게 보통이다. 이런 산업과 비교할 때 농업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듯 느껴지기도 한다. 성 소장은 이 ‘편견’을 단호히 거부하며 “농업이야말로 오랜 세월에 걸쳐 혁신을 거듭해온 첨단산업”이라고 말한다.“정말?” “그럴 리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면 ‘농업의 미래’를 펼쳐보자.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농업 혁신 사례가 눈앞에 펼쳐진다. 처음엔 시대와 장소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이야기를 씨줄날줄로 엮어낸 저자의 글 솜씨에 감탄할 것이다. 그리고 종내는 “농업은 항상 인류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속도로 성장했으며, 이를 위한 적절한 수준의 진보를 채택해왔다”는 성 소장 의견에 동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지금 한국 농업 또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속도’로 성장 진보하고 있는가에 있다. 우리 농업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농업 위기론’이 제기된 건 오래 전부터다. 정부 주도의 산업화가 급속히 이뤄진 1960년대 이후 한국 농업은 각종 자원이 집중된 자동차‧조선‧반도체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쇠락을 거듭한 면이 있다. 최근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일상화 △농산물 완전 개방에 따른 수입 증가 △식품소비 트렌드 변화 등 여러 난제가 추가됐다. 게다가 무엇보다 심각한 농업인구 감소 및 고령화 문제가 악화 일변도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가 인구는 2000년 403만 명에서 현재 약 216만 명으로, 20년 만에 거의 절반 수준이 됐다. 이들 절대 다수가 노인이다. 농민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2030년이면 60%에 이를 전망이다. 이 난국을 돌파하고 ‘첨단산업’으로서 농업의 위상을 제고할 방안이 과연 있을까. 이것이 바로 ‘농업의 미래’에서 성 소장이 논의하는 주제다.
성 소장이 제시하는 해법은 ‘디지털 전환’. 노년에 접어든 농민들의 ‘존엄한 은퇴’를 돕고, 인생 2모작을 꿈꾸는 50대와 엘리트 청년 농부를 농촌에 유입할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디지털’에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모범 사례도 있다. 유럽의 경우 농업부문 종사자가 2000년 3500만 명에서 2019년 1900만 명으로 47%나 급감했으나, 디지털 전환을 통한 농업 혁신으로 농업 생산량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 그 과정에서 젊은이가 농촌에 대거 유입돼 농민 중 40대 이하 비율이 35%에 이른다.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농민=고소득자’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한다. 성 소장은 우리 농촌도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농업 혁신의 골든 타임, 얼마 남지 않았다”
성형주 농산업융합연구소장은 “지금 한국 농업 앞에는 쓰나미 같은 파고가 다가오고 있다. 그 파고를 뛰어넘으려면 디지털 전환이라는 ‘혁신의 급행열차’를 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였다. 한국 농업을 지켜온 농민들이 더 나이 들기 전, 그래서 우리 농촌이 공동화되고 농산업 기반 자체가 무너져내리기 전 ‘판을 바꾸는’ 체질 개선을 시작해야 한다는 게 성 소장 생각이다. 그는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구조를 바꿔야 한다. 농업에 참가하는 주체들이 혁신할 수밖에 없도록 정책을 만들고 제도적 인센티브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가장 시급한 건 산지 변화를 견인할 수 있는 도매유통 단계의 경쟁 촉진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성 소장은 농업과 IT 양쪽을 섭렵한 전문가답게, 농산물 거래 디지털 전환을 위한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 구축’ 사업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도 책에 담았다. 그가 바라는 건 이 책이 ‘농업 혁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것, 그래서 한국 농업 변화와 혁신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언제 한국 농업이 위기가 아닌 적 있었느냐고 반문하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엔 다릅니다. 우리 농업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모두 쓸려가 버릴 수밖에 없는 쓰나미 같은 파고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파고를 뛰어넘을 수 있는 ‘혁신의 급행열차’는 농산업 디지털 전환이에요. 바로 지금이, 한국 농업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혁신 급행열차에 탑승할 수 있는 ‘골든 타임’입니다.”
많은 이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성 소장의 목소리다.
가장 오래된 첨단산업 농업의 미래 l 성형주 지음, 동아일보사, 248쪽, 2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