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신도시 왕숙지구가 들어설 예정인 경기 남양주시 일대. [뉴스1]
건설업계 짓누르는 공사비
이번 대책에서 주목할 키워드는 바로 공사비다. 주거용 건물의 건설공사비지수는 2021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연 10%가 넘는 유례없는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그래프1 참조). 국토부가 발표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에는 공사비라는 단어가 20번가량 등장한다. 당국은 수요심리보다 공사비 인상에 따른 민간 공급 위축을 주택 공급 부족의 원인으로 본 것이다.지난해 말까지 급증하던 미분양 물건은 올해 들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 흐름만 놓고 보면 민간 영역에서 공급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국내 건설업계의 영업이익률이 뚝 떨어졌다는 점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건설사들의 영업이익률은 치솟는 공사비로 올해 2분기 0%대까지 급락했다(그래프2 참조). 국토부는 건설사들의 영업이익 악화에 따른 민간 주택 공급 감소를 우려한 것이다. 이번 부동산대책을 통해 공사비 증액 기준을 마련한다지만 솔루션으로 제시된 표준계약서는 일종의 권고라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국토부는 정비사업에서 공사비 분쟁을 줄일 프로세스도 제시했지만, 이 또한 건설자재 가격 인상이라는 글로벌 경제 변수를 해결할 순 없다.
1. 미착공 물량이 주는 시사점
공사비가 급등하는 가운데 민간 영역에서 원활한 주택 공급이 이뤄지려면 분양가 상승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고금리 뉴노멀’ 시대에 분양가 인상은 과거 폭등장에서처럼 쉽지 않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인허가를 받고도 올해 상반기까지 착공하지 않은 주택 대기 물량이 33만 채에 달해 202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착공 비중은 올해 상반기 63%까지 치솟았는데, 주택 인허가 물량의 절반 이상이 삽조차 뜨지 못한 것이다.미착공 물량 급증은 부동산시장에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 번째는 건설사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터진 대규모 준공 후 미분양 사태의 학습효과에 따라 시장 변화에 긴밀히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준공 후 미분양 물건은 시장에서 흔히 ‘악성재고’로 낙인찍힌다. 재고가 언제 완전히 소진될지 기약하기 어렵다. 실제로 2008년 4만 채까지 급증한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예년 수준인 1만 채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6년이 걸렸다. 준공 후 미분양 악몽을 기억하는 건설사들이 지난해 말 시장위기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이에 따라 한때 7만5000채까지 치솟은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올해 8월 기준 6만1000채까지 떨어졌다. 건설사들의 시장 순응적 태도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부동산 파국 가능성은 일단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분양시장 회복세에 건설사들이 그간 미뤄둔 신축 아파트 착공에 나설 전망이다. 그동안 쌓인 인허가 물량이 너무 많을 경우 건설사 간 눈치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 경우 해당 지역 주택 수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착공 실적, 부동산시장 회복 척도
미착공 물량 급증의 두 번째 시사점은 그 비중을 통해 시장 회복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까지 쌓인 인허가 물량 대비 올해 7월까지 전국 시도별 착공 실적을 살펴보자. 대구와 울산은 전체 인허가 건수 중 90%가량이 착공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이들 지역은 아직 시장에 내놓지 않은 ‘그림자 물량’이 상당해 시장 회복이 요원할 것임을 알리고 있다. 반면 광주와 강원은 미착공 물량 비중이 30%에 불과해 시장 회복 흐름을 탈 것으로 보인다.2. 1군 건설사 쏠림 강화
정부는 민간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공공택지 전매제한 완화 △조기 인허가 인센티브 △부실 우려 사업장 재구조화 및 신규 자금 지원 △중도금 대출 지원 카드를 제시했다. 이 같은 대책은 결국 1군 건설사 위주로 주택시장이 재편될 것임을 시사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분양받은 공공주택용지의 대금을 지불하지 못한 사업장은 46개 필지로, 연체 금액이 1조 원에 달한다. 연체 금액이 1000억 원을 넘어 가장 많은 사업장은 성남복정1지구다. 당초 준(準)서울 입지로 분양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은 곳이다. 지난 부동산 호황기에 이른바 ‘벌떼입찰’로 LH 용지를 대거 낙찰받은 중소건설사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땅을 놀리고 있는 실정이다.부동산 PF 문제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자, 정부는 9·26 부동산대책을 통해 공공택지 전매제도를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 중소건설사의 부실 분양 사업장의 경우 시행사 및 시공사를 교체해서라도 다시 살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중소건설사가 내놓은 미착공 현장은 자금력이 양호한 1군 건설사가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중도금 심사를 합리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대형 건설사에 유리한 조치로 풀이된다. 기존에는 초기 분양률 70%를 넘어야 중도금 대출이 가능했다. 이 같은 허들을 낮추더라도 정부가 무작정 대출을 지원해줄 수는 없다. 신용도가 높은 1군 건설사의 분양 사업장에 지원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도가 A급으로 같아도 시공능력평가 20위권과 그 밖의 시공사는 사업장 입지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신용평가 추산에 따르면 20위권 밖 시공사는 20위권에 드는 시공사 대비 지방사업장(자체 사업) 비중이 4배나 많다. 반면 사업성이 유망한 수도권 정비사업 비중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건설사의 재무건전성이 화두가 될수록 20위권 시공사로의 일감 편중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3. 결국, 3기 신도시
이렇다 할 공급대책을 내놓지 못한 가운데 그나마 정부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 3기 신도시다. 이번 9·26 부동산대책에서 3기 신도시와 관련된 핵심 내용은 자족용지와 공원녹지 비율을 줄여 주택을 더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주택공급 대책에서 몇 채를 짓겠다는 청사진보다 중요한 것이 속도다. 3기 신도시는 개발 면적이 넓다 보니 토지 보상을 둘러싼 갈등과 이해관계자 간 대립이 상당하다. 2018년 3기 신도시 계획이 처음 발표되고 5년이 지났다. 3기 신도시는 서울로부터 평균 1.3㎞ 떨어진, 빼어난 입지를 갖췄다. 준서울 주택 공급에 목말라 있는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하다. 이번 공급대책에서 정부가 강조한 공공분양주택 ‘뉴:홈’도 3기 신도시 입지에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현 정부가 남은 임기에 3기 신도시 건설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9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