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e커머스업체 로고. [ 쿠팡, 롯데온, 신세계 제공]
비대면 시대 총아로 주목받은 e커머스 기업의 주가 하락 원인은 단순하다. 개별 기업뿐 아니라 업계 전반의 성장세 둔화 때문이다. 미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이 지난 수년 동안 뿌린 유동성을 회수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 엔데믹을 맞아 소비자 발걸음도 오프라인 리테일 시장으로 복귀하는 분위기다.
‘장기 성장 잠재력’보다 ‘이익 구조 개선’
한국 e커머스업계 상황을 살펴보자. 올해 첫 기업공개(IPO) 대어로 기대를 모은 마켓컬리는 1월 상장을 철회했다. 마켓컬리는 2021년 2500억 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에 성공해 기업가치 4조 원을 달성한 바 있다. 지난해 시작된 e커머스 투자심리 악화로 마켓컬리 기업가치는 당시보다 4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e커머스 기대주 마켓컬리의 상장 철회는 최근 투자시장의 기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기 성장 잠재력보다는 당장의 이익 구조 개선이 투자자의 요구인 것이다. 국내 e커머스 시장에 변화 바람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국내 e커머스 시장의 태동기는 대개 2000년대 초반 쇼핑몰 열풍 때로 본다. 그 후 20여 년간 e커머스업계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해 “여러 사업자가 덩치를 키우고자 출혈 경쟁한 치킨게임”이라고 하면 무리일까. 명실상부한 1위 없이 춘추전국시대처럼 여러 기업이 경쟁하다 보니 미래 성장을 위한 몸집 불리기만 이어진 것이다. 미국 ‘아마존’, 중국 ‘알리바바’, 일본 ‘라쿠텐’처럼 절대 강자가 있는 시장은 사정이 어떨까. 일단 왕좌에 오른 기업은 유통망 장악, 직매입을 통한 수익률 개선, 광고 수익 등 비즈니스 모델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
반면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기업은 당장 매출 실적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를 상대로 할인 쿠폰을 남발하는 등 박리다매 경쟁에 치중해 적자 늪에서 허우적거릴 가능성이 크다. 국내 e커머스업계에서 그나마 흑자를 기록한 기업이 G마켓이었다. ‘유통 공룡’ 신세계그룹이 2021년 3조6000억 원을 들여 G마켓을 인수한 배경이기도 하다. e커머스 전반의 성장세 둔화에 따라 신세계 품에 안긴 G마켓도 지난해 1~3분기 누적 적자가 525억 원에 달하는 등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엄혹한 시장 상황에 e커머스업계의 경영 기조는 “일단 덩치부터 키우고 보자”에서 사업 효율성 제고로 선회하고 있다. 외형 확장보다 내실을 기하자는 것이다. 2019년 반짝 흑자 전환했다 다시 적자로 돌아선 11번가는 아마존과 연계한 해외 직구(직접구매) 플랫폼, 직매입 중심 리테일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저마다 구체적인 전략은 다르겠으나 과도한 쿠폰 발행과 마케팅 비용 축소 같은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쿠팡 대구 풀필먼트센터. [쿠팡 제공]
큐텐, 티몬 이어 인터파크커머스 인수?
e커머스업체들이 한국이라는 울타리에 국한해선 성장 모멘텀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당장 경영 효율화에 팔을 걷어붙인 기업과 e커머스 진출을 꾀하는 새로운 주자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가령 2021년 인터파크를 인수한 숙박·여행 플랫폼 기업 야놀자가 최근 e커머스 부문을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야놀자 측은 3월 쇼핑 및 도서 사업을 전담할 ‘인터파크커머스’라는 회사를 신설할 예정이다. 기존 인터파크는 여행 및 티켓 사업에 집중케 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e커머스업계에선 분할된 인터파크커머스가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해외 직구 서비스를 운영하는 IT기업 코리아센터가 지난해 하반기 온라인 쇼핑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를 인수하는 등 중견·중소 e커머스의 M&A도 활발하다.e커머스와 인접 산업 간 합종연횡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M&A도 한국을 넘어 글로벌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싱가포르 e커머스업체 큐텐은 지난해 국내 소셜커머스 대표 브랜드 티몬을 인수한 데 이어 인터파크커머스 인수자로 부상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11번가 인수를 검토하다 중단하고, 영국 글로벌 리테일 테크 오카도와 제휴해 선진 물류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떠오른 글로벌 e커머스 산업이 엔데믹으로 숨고르기에 나섰다. 사업 재편과 합종연횡 등 내실 다지기 열풍은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e커머스업계에 부는 성장세 둔화의 혹독한 바람이 옥석 가리기와 새로운 승자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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