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 [사진 제공 · 네이버]
3D 그래픽 비용 문제로 사라진 ‘아담’
한국에서 가상인간은 이미 1998년에 등장했다. 바로 국내 1호 사이버 가수를 표방한 ‘아담’이다. 타이틀곡 ‘세상엔 없는 사랑’이 담긴 1집 앨범 ‘GENESIS(제네시스)’가 20만 장이나 판매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아담이 방송 출연까지 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주목받던 아담은 인기를 뒤로한 채 갑작스레 사라졌다. 3차원(3D) 그래픽으로 아담을 구현해 방송에 등장시키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공지능(AI) 기술 덕분에 가상인간을 개발,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크게 줄었다. 그 덕에 아담처럼 가수뿐 아니라 버추얼 인플루언서, 광고 모델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그간 AI 기술은 대체로 B2B(기업 간 거래) 솔루션으로 활용됐다. 콜센터 상담원을 대신하거나 챗봇을 활용해 고객 요청을 처리하는 것이 대표적 영역이다. 큰 손실을 입고 철수하긴 했지만, IBM은 AI ‘왓슨’을 헬스케어 서비스에 도입해 암을 정복하겠다고 나섰기도 했다. HR(인적자원 관리)에 적용된 AI 솔루션은 사람 대신 지원자의 이력서를 검토해 합격자를 추천하기도 한다. 투자, 금융에 적용된 AI는 투자 대상 기업과 부실 채권, 대출 심사 등을 대신한다.
이처럼 일반인에게 생소한 AI가 빅테크 주도로 점차 일상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구글은 2018년 AI ‘듀플렉스’를 시연했는데 사람 대신 미용실, 레스토랑에 전화해 이용자 캘린더의 빈 시간대에 예약을 잡아주는 서비스였다. 삼성전자가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2022’에서 발표한 AI 아바타 ‘세바스찬’도 눈에 띈다. 기존 AI 비서 빅스비보다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특히 3D 아바타가 등장해 음성 명령을 인식했는지를 곧장 시각적으로 확인해주고, 사용자를 쫓아다니면서 즉각 반응하는 게 특징이다. AI가 기계적으로 답변하는 것을 넘어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실감 나게 대화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현실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을 뿐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나타나는 AI 인간은 제법 그럴 듯해 보인다. 이런 속도로 기술이 발전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AI 기술로 구현된 서비스는 지금과 또 다른 수준의 실감을 제공할 것이다. 화면 너머 상대방이 사람인지 AI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할 과제는 크게 3가지다.
메타, AI 알고리즘에 따라 계약직 직원 60명 해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메타’ 본사. [GETTYIMAGES]
둘째, 기술 자체에 대한 신뢰성 문제다. 최근 메타는 AI 알고리즘에 따라 계약직 직원 60명을 해고했다. 사람이 아닌 AI의 판단으로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최근 AI는 금융 분야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대출 승인, 이자율 산정에서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하는 게 더 정의롭고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판단을 AI에 맡긴다면 우리 인간은 어떤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답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
셋째, 일자리 문제다. AI는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뒷단’과 사람이 지각할 수 있는 ‘앞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앞서 지적한 기술 신뢰성이 뒷단에서 불거질 만한 이슈라면, 앞단에선 AI와 인간의 새로운 관계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상인간이 디지털로 구현된 세상에서 다양하게 활동할수록 실제 인간의 일은 줄어들 것이다. 당장 초보적 형태로나마 AI가 도입된 직업 분야로 아나운서, 기상 캐스터, 연예인, 상담사 등이 있다. AI가 산업현장에 본격적으로 투입될 미래에는 노동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도 필요할 것이다.
B2B 솔루션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일상 영역으로 성큼 들어온 AI 기술. 인간을 닮은 AI가 인간의 일과 삶에서 무엇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무대에서 팬들을 감동시키는 AI 인플루언서는 환대할지라도, 나를 해고하는 AI를 용인할 수 있을까. AI는 장밋빛 미래를 선사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닌, 많은 과제를 안기는 현실적 문제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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