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이 소유한 콩고민주공화국 한 광산에서 광부들이 코발트를 채굴하고 있다. [VCG]
핵심 광물 선점 및 제련 앞선 中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미국 테슬라가 지난해 3월 뉴칼레도니아 자치정부와 니켈 공급 장기계약을 맺었다. 그럼에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뉴칼레도니아의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앞두고 자칫하면 이 계약이 폐기될 수도 있다며 전전긍긍했다. 뉴칼레도니아는 1853년 프랑스 식민지로 병합됐지만 국방·외교·교육 분야 등을 제외하고 자치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중국은 프랑스로부터 분리독립하겠다는 주민들을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지해왔다. 지난해 12월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뉴칼레도니아가 프랑스에 남는 것으로 결정됐을 때 누구보다 안도한 이는 머스크다.미국과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제조에 필수적인 리튬·코발트·니켈·마그네슘을 비롯해 희토류 등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s)을 확보하고자 적극 나서고 있다. 각국의 탄소중립 노력과 첨단·미래 산업 발전에 따라 핵심 광물 수요가 2050년까지 6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핵심 광물이 특정 국가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리튬·코발트는 호주, 칠레, 중국 등 3개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75%를 차지한다. 백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70%,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이 70%, 희토류는 중국이 60%를 각각 생산하고 있다. 핵심 광물은 광산 탐사부터 생산까지 평균 16.5년이 걸린다. 환경오염 우려로 채굴·정제 과정도 규제를 받아 특정 국가의 독과점 구조를 바꾸기 힘들다. 이 때문에 핵심 광물이 매장된 국가에 꾸준히 투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핵심 광물 매장량이 풍부한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집중 공략해왔다. 중국개발은행과 중국수출입은행은 매년 최대 90억 달러(약 12조8000억 원)씩을 이들 지역 자원개발에 투자했고 이를 통해 핵심 광물을 ‘싹쓸이’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에 사용되는 코발트가 대표적 사례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전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데 그중 80%를 중국 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특히 리튬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은 압도적이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60%가 남미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염호(소금호수) 등 ‘리튬 삼각지’에 몰려 있지만 수산화리튬, 탄산리튬 등 배터리에 쓰이는 리튬 화합물 1위 생산국은 중국이다. 전 세계 수산화리튬 생산량의 24%를 차지하는 중국의 간펑리튬은 7월 아르헨티나 광산채굴회사 리테아를 9억6200만 달러(약 1조3680억 원)에 인수했다. 리테아는 아르헨티나 살타에 2개의 염호를 보유하고 있는데, 탄산리튬 매장량이 1106만t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 배터리업계 1위인 중국 CATL도 지난해 9월 콩고민주공화국 리튬 개발 프로젝트에 2억4000만 달러(약 3412억 원)를 투자해 지분 24%를 확보했다.
더욱이 중국은 핵심 광물의 제련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제련은 열이나 화학적·전기적 방법을 통해 광석에서 금속 등 원소를 추출하는 방법을 말한다. 광산에서 채굴된 광석이 선광 공정을 거치면 유용한 광물이 농축된 정광을 얻을 수 있다. 이때 목적한 금속 원소를 추출한 뒤 정제 과정을 통해 원하는 순도의 화합물 또는 금속으로 회수하는 과정을 제련이라고 부른다. 리튬광과 니켈·코발트광은 이런 제련 공정을 거쳐 배터리 핵심 원료인 수산화리튬, 황산니켈, 황산코발트 등으로 재탄생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리튬 57.6%, 니켈 35.3%, 코발트 64.6%, 흑연 70% 등 핵심 광물들의 절반 이상을 제련하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미래 산업과 전투기·미사일 등 무기 생산에 쓰이는 희토류의 경우 중국의 제련 비중이 85%에 이른다.
1%까지 낮아진 美 리튬 점유율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니켈을 공급하는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 니켈 제련 공장. [Prony Resources]
이후 백악관은 올해 2월 ‘메이드 인 아메리카 핵심 광물 공급망 확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동맹국·파트너들과 협력 △국내 핵심 광물 개발 및 재활용 △핵심 광물 관련 숙련된 인력 지원 등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기존 핵심 광물에 희토류를 비롯해 15개를 추가로 포함시켜 50개 핵심 광물을 새로 지정했다. 미국 정부는 또 6월 15일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과 다변화를 위한 핵심 광물 안보 파트너십(Minerals Security Partnership·MSP)이라는 다자간 협의체를 출범했다. MSP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일본, 한국, 호주, 핀란드, 스웨덴, 유럽연합(EU) 등 11개국이 참여했다. MSP는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중심의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포석이다.
미국은 9월 22일 뉴욕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주재로 MSP 첫 장관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는 MSP 11개 협력국을 비롯해 핵심 광물 생산국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콩고민주공화국, 몽골, 모잠비크, 나미비아, 탄자니아, 잠비아 등 8개국도 참석했다. 블링컨 장관은 당시 회의에서 “핵심 광물은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와 함께할 미래를 가능케 하는 기술의 필수 요소”라면서 “MSP는 각국이 보유한 자원의 경제개발 잠재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핵심 광물을 생산, 가공, 재활용하려 한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또 “MSP를 통해 핵심 광물 공급망에 대한 공공·민간 투자를 촉진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며 높은 수준의 환경·사회·거버넌스 기준을 장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세기는 석유, 21세기는 핵심 광물 싸움”
미국이 주도하는 핵심 광물 안보 파트너십(MSP) 장관급 회의가 9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렸다. [외교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IRA의 주요 목적은 전기차, 배터리, 재생에너지 등에 필수적인 리튬, 니켈, 망간, 흑연 등 핵심 광물의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20세기가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특징으로 한다면 21세기는 핵심 광물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으로 정의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은 자체적으로 핵심 광물을 100% 확보할 수 없는 만큼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협력을 통해 자원 부국을 끌어들여 핵심 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정부가 MSP 협력국들에 ‘당근’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호세 페르난데스 미국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리튬이 풍부한 멕시코를 방문해 IRA에 따른 세제 혜택을 소개하며 파트너가 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 입장에선 핵심 광물 확보와 IRA 대응을 위해서는 MSP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MSP는 전 세계 핵심 광물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활성화와 생산물 확보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며 “향후 재정적·정치적 지원 등을 통해 투자국과 핵심 광물 자원 보유국이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U도 원자재 분야의 탈(脫)중국을 선언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 주요 원자재법’ 제정 방침을 밝히면서 “리튬과 희토류가 조만간 석유나 가스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이제 다시는 특정 국가(중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핵심 광물을 놓고 미국과 EU 등 서방과 중국의 ‘거대한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