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할까요.”
부동산 전문가가 아닌 기자도 취재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인데, 현직 부동산공인중개사는 어련할까. 2004년부터 공인중개업을 해온 김병권 공인중개사도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170만 명이 가입한 네이버 부동산 카페 ‘부동산 스터디’에 자신의 실무 경험을 녹여낸 글을 꾸준히 올리는 인기 칼럼니스트. 닉네임은 ‘부동산 아저씨’다. 저서 ‘돈이 된다! 부동산대백과’에 이어 최근 신간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할까요?’를 낸 김씨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부동산 아저씨’ 김병권. [조영철 기자]
집, 내 인생 가장 고액 쇼핑
이번 책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요.“부동산중개업을 하다 보면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다들 집을 사고는 싶은데 ‘타이밍’을 묻는 거죠. 왜 집을 사려 하는지 물으면 십중팔구 실거주 목적이라고 해요. 그런데도 타이밍을 묻는 건 투자 목적이 강해서예요. 실거주가 목적인 집과 자산이 목적인 집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고 상담 사례도 같이 나누고 싶어 책을 쓰게 됐어요.”
제목 그대로,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할까요.
“집은 사면 장기투자하게 될 확률이 높거든요. 단기적으로는 집값이 하락할 수도, 상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상향일 때가 많았어요. 특히 실거주 목적의 집을 매수할 계획이라면 외환위기나 리먼브라더스 사태 정도의 매머드급 하락 요인이 없는 한 최대한 빨리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집은 어떨 때 사야 하나요.
“지금이 하락장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면 빨리 사는 편이 좋겠죠. 지금 싸게 사는 것도 좋지만, 하루라도 빨리 무주택자라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도 차익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집값은 어차피 장기적으로 볼 수밖에 없어서 하루하루 오르내리는 데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어요.”
집을 사고 싶지만 돈이 없는데요.
“‘돈이 없어 집을 못 산다’는 분의 특징은 대출 자체도 두려워하지만 실행력, 실천력이 조금 부족한 거 같아요. ‘집을 왜 안 사세요?’라고 물으면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산다고 해요. 모아둔 돈이 적다면서요. 재밌는 건 집을 사본 적이 없을수록 돈을 많이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물론 집을 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지만, 집값의 100%가 필요한 건 아니에요. 레버리지를 활용하면 생각보다 빨리 내 집 장만을 할 수 있어요.
무주택자일수록 첫 집에 대한 로망이 너무 커요. 돈이 부족할수록 투자와 거주를 분리해 생각해야 집을 더 빨리 살 수 있어요. 고민이 많아지면 계속 집 사는 시기가 밀리는데, 일단 집을 사고 실입주 시기를 미루는 쪽으로 생각해보세요. 특히 상승장은 달리는 말과 같아서 근로소득을 모으는 시간 동안 집값이 계속 올라 이걸 따라잡는다는 게 어렵거든요.”
매매가 목표인 무주택자라면 월세와 전세 중 어떤 걸 선택하는 게 도움이 될까요.
“아예 시드 머니가 없다면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전세로 살면서 돈을 모으는 게 좋아요. 반대로 어느 정도 시드 머니가 있다면 거기서 더 모을 생각을 하지 말고 일단 레버리지를 활용해 집을 먼저 사는 편이 좋을 거 같아요. 그런 뒤 매수한 집에 실입주를 못 한다면 그때는 월세를 살아도 돼요. 오해하면 안 되는 점은 보증금이 없어서 사는 월세는 지양해야 하지만, 투자를 위해 사는 월세는 지향해도 된다는 거예요. 이때 월세는 근로소득으로 내는 게 아니라 투자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해 생기는 수익으로 낸다고 봐야겠죠.”
주변에 첫 집을 빌라로 했다 나중에 안 팔린다며 후회하는 경우가 있어요. 첫 집은 무조건 ‘아파트’여야 할까요.
“누구나 서울 역세권, 입지 좋은 신축 아파트를 좋아해요. 문제는 돈이죠. 이제는 예전처럼 한 번에 아파트로 가는 게 쉽지 않아졌어요. 집은 집으로 사는 거예요. 빌라라도 안 오르지는 않으니 투자든, 거주 목적이든 하나를 사고, 거기에 근로소득을 더해 덩어리를 키워 다음 단계,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게 낫다고 봅니다.
다만 오피스텔에 관한 생각은 조금 다른데요. 최근 오피스텔이 핫한 건 사실이지만, 그 자체의 상품가치가 높아진 게 아니라 주택 규제가 워낙 심하니까 풍선 효과를 누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거형 오피스텔이면 몰라도 원룸이나 투룸은 조심해야 해요. 대체할 게 많고 아파트와 달리 언제든 공급할 수 있거든요.”
부동산 고수와 하수의 차이
김씨가 쓰는 글에는 “현실적인 조언이다” “다른 네임드와 차별화되는 따뜻함이 있다” 같은 반응이 따라온다. 그도 그럴 것이 ‘부동산 선생님’이나 ‘부동산 마스터’가 아닌, ‘부동산 아저씨’라는 닉네임다운 글을 쓰기 때문이다.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건네는 그의 조언을 듣고 있으면 ‘이번 생은 망했구나’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부동산 투자 하수와 고수는 첫 질문부터 다르다고요.
“하수는 방법론보다 결과를 많이 물어요. ‘살 아파트 찍어주세요’ 같은 거요. 문제는 설령 특정 매물을 찍어준다 해도 끄덕끄덕한 뒤 ‘그런데 혹시 더 좋은 건 없을까요’ 한다는 거죠. 경험으로 선별한 게 아니라 막연하게 더 좋은 물건이 있을 것 같은 거예요. 반대로 고수는 미시적인 질문은 하지 않아요. 어떤 아파트를 사고 싶으면 단지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시장 흐름을 물어봐요. 어디를 살지는 처음부터 정하고 오는 거죠.”
중개업을 오랫동안 하면서 안타까운 사례도 봤을 거 같아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연봉도 높은데 집을 못 사는 분을 봤어요. 대출에 대한 두려움과 반발이 너무 크더라고요. 의외로 대출 없이 온전히 내 돈으로 집을 사겠다고 하는 분이 많아요. 대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떨치면 좋겠어요.”
최근 많이 문의하는 부동산에 변화가 있나요.
“아파트 가격이 ‘넘사벽’이 된 이후에는 매매 문의도 꾸준히 들어와요. 연세가 있는 분은 수익형 상품 문의를 많이 하세요. 아파트는 있는데 이걸 깔고 있으면 수익이 당장 나지 않는다 싶어 상가나 원룸 월세 건물을 많이 알아보죠.”
연령대별로 투자에 최적인 부동산이 있나요.
“2030 초반은 시드 머니를 만드는 데 집중하면서 재테크에 관심만 가져도 훌륭해요. 30대 중반에 시드 머니를 활용해 첫 투자를 시작하면 좋겠죠. 30대 중후반에는 내 집을 장만하면 좋겠고요. 그럼 다들 ‘요즘 집값이 얼마나 비싼데’ 하지만 앞서 말했듯 투자와 거주를 병합하면 당연히 어렵고, 분리하면 30대 후반에도 충분히 내 집을 살 수 있어요. 40대는 근로소득이 피크일 때니 수익형보다 시세차익형 부동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공격적으로 투자하길 권해요. 50대는 은퇴 준비도 해야겠지만 근로소득이 하향곡선이니 이를 대체해줄 수익원이 필요한데, 그럴 때는 시세차익형보단 수익형 부동산이 좋죠.”
‘부동산 아저씨’ 김병권. [조영철 기자]
지금 퇴사하면 안 되는 5가지 이유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할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요.“수익형 부동산은 수익률이 높을수록 매매가가 상승하는데, 간혹 이걸 부풀리는 곳이 있어요. 상가를 계약할 거라면 주변 시세와 상권을 보고 수익률이 적절한지 판단해야 해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장사하기 어려워진 임차인이 많다 보니, 불경기에는 계약 후 계속 장사할 의사가 있는지도 알아봐야 해요. 막상 계약했는데 다음 달에 임차인이 나가버리면 난감할 수 있거든요. 임차인과 재계약서를 쓰거나 동의서를 받으면 공실 리스크 측면에서 비교적 안전하죠.”
‘파이어족’(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꿈꾸는 이들이 늘면서 MZ세대의 부동산 상담도 크게 증가했다. 김씨는 “20대 중후반에 부동산업을 시작했는데, 요즘엔 나보다 빨리 눈뜬 학생이 많다”며 “대견하고 고무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근로소득을 지나치게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부모가 유산으로 엄청난 액수를 증여하거나 부모 재산을 상속받을 게 아니라면 근로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자본소득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직장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퇴사하면 안 된다고 한 건가요.
“요즘 직장생활 정말 힘들죠. 그래서 전업투자자를 꿈꾸거나 사업하려는 분도 늘었어요. 그런데 직장생활이 힘들어도 직장인이라서 얻을 수 있는 게 많거든요. 퇴사 전 다섯 가지를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첫째, 안정적인 고정 수입이 필요한데 퇴사했을 때 생활비와 이자 같은 고정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둘째, 대출받을 때 직장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메리트라는 점. 셋째, 투자든 장사든 자산을 늘리기 위함인데 직장인은 월급 자체가 큰 자산이라는 것. 수익형 부동산도 비용을 빼고 순수익이 5%면 굉장히 우량한 물건이거든요. 월급이 300만 원인 경우 역산하면 7억2000만 원짜리 부동산인 셈이죠. 이 정도 월급을 벌려면 그런 부동산을 갖고 있어야 해요. 넷째, 국민건강보험처럼 직장에 다니면 아낄 수 있는 게 많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심리적 안정감. 직장에서는 업무 스트레스가 있지만, 반대로 퇴사하면 거기선 해방돼도 수입이 딱 끊겨 결과를 빨리 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자칫 섣부르게 투자하고 손해를 볼 수도 있어요.”
완벽한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자수성가한 분, 큰 자산가일수록 근로소득의 소중함을 잘 알거든요. 젊을수록 근로소득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또 내 집 장만을 포기하지 마세요. 이번에 탑승 못 했어도 다음 사이클이 분명히 오거든요. 너무 낙담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말고 다음 사이클을 준비하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오니 그때 탑승하면 됩니다.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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