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혐의로 벌금이 부과된 배우 정솽,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가수이자 배우 크리스, 해외 도피설이 나돌고 있는우 배 자오웨이(왼쪽부터). [웨이보, 바이두]
그러다 보니 중국에서 대중문화(엔터테인먼트)산업은 그동안 승승장구해왔다. 심지어 중국 연예계가 공산당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지녔다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중국 팬덤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중국 시장조사 전문업체 아이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의 팬덤 경제 규모는 2016년 1조6000위안(약 278조 원)에서 2019년 3조5000위안(약 538조4700억 원)으로 성장했고, 2022년 6조 위안(약 1076조9400억 원)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중국 아이돌 스타 샤오잔이 4월 싱글 앨범을 발표하자, 장당 3위안(약 538원)인 앨범이 사흘 만에 5000만 장 팔리기도 했다.
연예인 ‘시진핑 사상’ 공부해야
한국 오디션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포맷으로 제작돤 중국 ‘창조 101’. [웨이보]
이에 따라 대중문화를 관장하는 중국 문화여유부는 8월 30일 ‘연예인 교육 관리와 도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규제 사항을 지시했다. 문화여유부는 “일부 연예인이 직업윤리를 어기고, 사회주의 문예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으며, 최근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나쁜 팬덤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시사항에는 연예인은 이론 학습과 연구 교류 등의 방식을 통해 문화예술과 관련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발언을 공부하고 의미와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특히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기치로 삼아 신인을 육성하고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런 지시는 청소년이 아이돌이 되려면 시 주석의 사상을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민법과 저작권법, 세법 교육을 강화해 준법정신을 키우고, 이중계약이나 탈세 등 사회 문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예인을 교육시키라는 조항도 있다. 문화여유부는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법·비도덕적 행위로 적발된 연예인에게 무대와 플랫폼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공산당과 정부가 대중문화산업을 정화하기 위한 캠페인에 나섰다”면서 “이는 일부 아이돌이 탈세와 성폭력 등으로 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거나 국민 정서를 해치는 일이 이어진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산당이 사실상 작성한 ‘연예인 블랙리스트’
중국에서 여성처럼 예쁜 외모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그룹 TFBOYS. [웨이보]
광전총국은 이와 함께 고액 출연료를 금지하고, 출연료 규정 위반과 이중계약, 탈세를 엄격히 규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전총국의 지시사항에는 아이돌 양성 프로그램 방영 금지, 스타의 자녀가 참가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방영 금지, 오디션프로그램의 경우 경연장 밖에서 이뤄지는 투표 금지 등도 포함돼 있다. 광전총국은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의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온라인에서 몰표를 던지는 등의 빗나간 팬덤 문화를 금지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광전총국이 ‘여성스러운 남자’ 아이돌에 대해서도 출연 금지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광전총국은 전통적인 중국 문화, 혁명 문화, 사회주의 문화를 강조하면서 이른바 ‘냥파오(娘炮)’와 저속한 인터넷 스타의 출연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냥파오는 모습과 행동이 여성처럼 예쁘장한 남성을 뜻한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냥파오는 중국 문화의 전형적인 남성상인 ‘마초’에 부합하지 않거나 화장을 하는 아이돌 가수 등을 포함한다”며 “중국공산당은 이런 인기 아이돌이 전통 사회적 가치에 위협이 된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중국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비정부기구에서 활동하는 아창은 “젠더에 대한 표현은 재능이나 성격, 애국심이나 사회 기여도와 관련 없다”며 “이는 중성적이거나 좀 더 여성적으로 표현하는 이들에 대한 차별이자, 현대사회의 개별화와 퇴보하는 미적 기준 간 충돌”이라고 광전총국의 조치를 비판했다.
사회주의 이념 이탈 막으려는 의도
중국 인터넷 감독기구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도 8월 27일 ‘무질서한 팬덤에 대한 관리 강화’ 10대 규제 방안을 내놓았다. 그 내용을 보면 연예인 소속사의 허가·인증을 받지 않은 온라인 팬클럽 운영을 금지하고,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가 연예인 개인 인기 순위를 공표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연예인을 응원하고자 모금하는 행위, 연예인 팬클럽끼리 온라인상에서 욕하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싸우는 행위를 금지했으며, 인터넷 플랫폼이 이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아이돌 인터넷 팬클럽을 단속해 게시물 15만여 건을 삭제하고 4000개 넘는 계정을 폐쇄하거나 정지시켰다.이런 가운데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는 한국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중국 팬들이 개설한 공식 계정을 60일간 정지시켰다. 4월 포털사이트에서 모금해 생일 축하 광고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웨이보는 또 한국 트와이스 멤버인 대만 출신 쯔위의 팬클럽을 상대로 “팬클럽 명칭을 바꾸라”고 통보했다. 쯔위는 2016년 한국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대만 국기를 흔드는 모습이 포착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는 중국 누리꾼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중국공산당이 연예인과 팬덤 문화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은 무엇보다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스타들을 관리해 청소년들이 사회주의 이념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 국무원 개발연구센터의 장위 연구원은 “공산당은 대중문화산업을 이념 통제의 핵심으로 바라보면서 부정적 영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CNN 방송은 “중국공산당은 유명 연예인들이 애국심과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롤 모델이 되길 원하는 것”이라며 “시 주석 체제에서 공산당은 사상적·문화적 통제에 더욱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과 중국공산당이 ‘공동부유’를 내세워 부의 분배를 강조하면서 고소득 연예인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볼 수도 있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함께 잘살자는 기치를 내건 상황에서 엄청난 출연료를 받는 인기 연예인의 행보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팬덤 문화는 청소년의 가치관을 왜곡하고, 나아가 공산당의 통치 체제에도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서방 언론들은 연예계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고강도 홍색 규제 조치를 ‘21세기판 문화대혁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마오쩌둥 전 주석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문화대혁명을 주창하면서 홍위병을 동원해 유교 제례 등 중국 전통문화와 경극을 없애고 각종 공연 등을 검열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연예계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규제 칼날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