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절 낮잠만 잔 국민의힘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이 1월 19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된 서울시장 후보 비전스토리텔링PT에서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경원, 오세훈, 이종구, 오신환, 조은희, 이승현, 김선동, 김근식 예비후보. [뉴스1]
여름 내내 나무 그늘에서 잠이나 자고 노래나 부르던 베짱이한테 겨울이 닥친 격이다. 베짱이는 따뜻한 여름이 자기 능력 덕분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반사적 이익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 온기가 옅어지자 당도 후보자도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름에 개미처럼 준비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두 팔 걷어 부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현실은 반대다. 당은 후보자 탓, 후보자는 당 탓을 한다. 자멸의 길목에 들어선 조직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특징이다.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 시절 웰빙(well-being) 정당으로 불리곤 했다. 당시 베짱이 기질이 지지율 회복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되살아나고 있다.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얼마 전까지 상승세였다. 급기야 민주당을 추월하기도 했다. 강세 지역인 부산은 물론 서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누구나 당선될 것이란 환상이 들 정도였다.
착시 현상이다. 국민의힘이 잘해서 정당 지지율이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실정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반사적 이익을 본 것에 불과했다. 객관적 상황이 이랬지만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도 후보자 차원에서도 이를 능력 덕분이라고 믿었다. 자만했다. 급기야 최근 서울은 물론 부산에서조차 위기 국면을 맞았다. 한파가 들이닥친 것이다.
치고나가는 與 방관하는 野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들이 1월 28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부산시장 후보 비전스토리텔링PT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박성훈·이진복·박민식·이언주·전성하· 박형준 예비후보. [뉴스1]
모든 카드가 유효하긴 어렵지만 똘똘한 이슈 하나면 선거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다. 이번 재보선은 차기 대선 전초전 성격을 지닌다. 유력 대선주자가 재보선 승리를 견인하고 또 그 과정에서 본인 지지율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는 이유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들은 철저히 이 문법을 따르는 중이다.
국민의힘 유력 대선주자들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고작해야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던지는 이슈에 토를 다는 정도다.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다. 판단 착오다.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대선주자급이 뛰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외부 인재영입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조차 성사된 것이 없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던진 단일화 함정에 빠진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인기가 과거만 못하다지만 안 대표는 대선주자급 인사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안 대표가 입당하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본인의 체급이 안 대표보다 아래라는 걸 인정한 셈이었다. 김 위원장이 안 대표의 단일화 선공을 개인기로 막아내고 있지만 이 역시 무기한 통하지는 않는다. 당내 서울시장 후보자들이 안 대표를 능가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김 위원장도 요령부득일 것이다.
단일화 끝에 안 대표가 범야권 후보로 결정돼도 문제다. 서울시장 후보 하나 독자적으로 내지 못하는 불임정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정치공학적 단일화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감동 또한 떨어지는 형국이다. 관객 이탈을 부르는 요소가 산적했다.
국민의힘에는 이것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뉴스1]
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재보선 승리를 바란다면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처럼 이슈몰이 형태로라도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 재보선 승리를 도우면서 자신의 지지율도 제고해야 한다. 커트라인은 김 위원장이다. 국민의힘 내에서 민주당 대선주자들에 필적할 이슈를 제기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 역시 김 위원장 이상의 이슈 제기 능력을 보여야 지지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서울·부산시장 후보자가 넘쳐난다. 이는 강점이자 약점이다. 각자가 동시에 당을 향한 표를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럿이 낫지만 경쟁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심화하면 표 이탈과 분산이 일어난다. 경선이 덧셈의 정치가 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뺄셈의 정치가 되면 안 된다. 후보자 개개인도 자제해야 하지만 당 지도부도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최근 부산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하락한 이유로 후보자 간 과열 경쟁과 네거티브전이 꼽힌다. 이런 식이면 최종 후보자가 결정돼도 정당 지지율을 온전히 가져가지 못한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자기 판단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선거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이유도 김 위원장의 판단이 들어맞아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그 결과물이다. 이번만큼은 상황이 다르다. 김 위원장 주변에 두 대통령과 유사한 권력자가 없다. 당내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김 위원장을 무조건 따르도록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뜻이다. 당장 스스로 계파를 만들어 권력자가 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결국 김 위원장도 힘들고 당내 인사들도 힘들어한다. 천하의 김 위원장이라도 개인기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민주당의 ‘원팀’ 정신이 국민의힘에도 필요하다.
지난해 총선은 민주당의 일방적 압승으로 끝났다. 균형이 깨졌고 민주당이 일방 독주하는 정국이 펼쳐졌다. 독주의 결정판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몰아내기였다. 그 후과로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재보선 완패 가능성도 높아졌으나 국민의힘이 그 지지를 온전히 받아내지 못하면서 재보선 판세가 뒤집힐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불완전 명사인 민주주의는 균형을 먹고 자란다. 국민의힘에는 분발을, 민주당에는 선심성 공약 투척 자제를 요청한다. 원론적 이야기를 푸념처럼 내뱉게 되는 하루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