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머니’에서 양민혁 검사(오른쪽 · 조진웅 분)가 변호사 선배와 함께 3억 원짜리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사진 제공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어떻게 술 한 병 가격이 아파트 한 채 값이 될 수 있는지 의아해하는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3억 위스키’보다 더 비싼 술이 여럿 존재한다. 이러한 초고가 술이 ‘로비용’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소장용 또는 재테크용으로 활용된다. 경매시장에서 낙찰받아 마시지 않고 소장하고 있다 다시 경매시장에서 되파는 경우도 적잖다고 한다.
실제 마셔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어
200만 달러 가격으로 현존하는 가장 비싼 술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코냑 ‘앙리 4세 그랑 샹파뉴’. [©Ley.925 & Co.]
위스키는 대부분 3~4년간 숙성을 마치고 시장에 나온다. 고급 제품은 10~30년 숙성 기간을 거친다. 40년 넘게 숙성시킨 위스키는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위스키 회사들은 아주 극소량만 50~60년간 숙성시켜 초고가 제품으로 출시한다. 특정 기념일에 맞춰 소량의 한정판으로만 내놓다 보니 가격도 경매를 통해 결정된다. 맛이 아닌 희소성 때문에 ‘억대 위스키’가 나오는 것이다.
위스키, 코냑과 달리 와인은 숙성 기간과 가격이 무조건 비례하지 않는다. 와인은 증류주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낮아 숙성 과정에서 맛이 변질되거나 식초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와인을 50년 이상 숙성시키면 맛의 변화가 너무 심해 오히려 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와인 가격이 결정되는 데는 생산 당해의 기후, 포도 작황 상황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현존하는 가장 비싼 술은 200만 달러(약 23억5000만 원) 가격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코냑 ‘앙리 4세 그랑 샹파뉴(Henri IV, Cognac Grande Champagne)’. 1776년부터 만들어진 원액을 100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다양한 약초가 들어가 있어 ‘불로장생 술’로도 불린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시조인 앙리 4세의 후손이 만들었다고 알려진다.
6500개 다이아몬드가 박힌 술병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상인 호세 다바로(Jose Davalos)가 디자인했다. 술병 가격만 10억 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술 자체의 가격은 의외로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시기보다 소장하는 술로, 실제 마셔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어 구매자들은 맛도 모른 채 사들인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위스키인 스코틀랜드의 ‘맥캘란 파인 앤드 레어 1926’ 60년산(왼쪽)과현존하는 최고가 와인 ‘로마네 콩티 1945년산’. [©Sotheby’s, gettyimages]
현존하는 최고가 와인은 ‘로마네 콩티 1945년산(Roman′ee Conti, 1945)’. 로마네 콩티는 일반 제품도 병당 1000만 원을 가볍게 넘길 만큼 최고가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다. 매년 생산량도 6000병에 한정한다. 이 와이너리의 1945년산 제품은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55만8000달러(약 6억5500만 원)에 낙찰돼 와인 최고가를 기록했다. 일본 판매가는 이보다 더 높아 병당 1억300만 엔(약 11억 원)에 거래되고 있다.
1945년산 제품이 최고 와인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1945년도 기후와 포도 작황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훌륭했기 때문. 게다가 당시 600병만 생산했다고 한다. 특히 3ℓ짜리는 2병 혹은 4병만 존재한다고 알려진다. 또 이해에는 포도 접목을 하지 않고 프랑스 고유의 포도 묘목에서 포도를 재배했다는 희소성도 있다. 당시 포도나무의 천적이던 ‘필록세라’라는 전염병을 막으려고 포도나무를 접목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로마네 콩티는 이 전염병을 피해 순수 프랑스 포도를 생산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비싼 일본 사케는 500만 원대
중국 마오타이주(오른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3월 중국을 첫 방문했을 때 시진핑 국가 주석과의 만찬에 이 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통신, 마오타이코리아]
마오타이주는 한정량만 생산돼 가격이 계속 급등하는 추세다. 그만큼 이 술이 중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오타이주를 생산하는 구이저우마오타이주유한공사(貴州茅台酒有限公司)의 시가총액은 1조3000억 위안(약 217조6000억 원)으로 삼성전자(314조 원)에 육박한다. 오로지 술만 생산해 이러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놀랍다.
고쿠류 슈조 양조장(왼쪽)과 고쿠류 슈조가 출시한 현재 가장 비싼 사케인 ‘무니(無二) 2013’. [©Kokuryu]
이 술의 가격이 비싼 이유는 65% 이상 도정한 좋은 쌀을 원료로 할 뿐 아니라 빙온숙성(氷溫熟成) 방식으로 제조하기 때문. 빙온숙성이란 물이 어는점에 가까운 온도에서 식재료를 숙성시키는 것으로, 선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본연의 맛을 그대로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로 육류 숙성에 사용되는데, 술에서는 일본 사케에 최초로 도입된 것.
한국 술도 도전해볼 만
오미자 브랜디 ‘고운달’. [㈜제이엘]
물론 초고가가 최고 맛을 보증하진 않는다. 맛은 어디까지나 축적된 경험에 근거해 판단되는 것이고, 사람마다 기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초고가 술의 가치는 맛보다 그것을 지키고자 투입된 사람의 노력과 물리적 공간, 그리고 돈 주고 살 수 없는 세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술은 100만 원 넘는 제품이 전무하다고 할 정도다. 물론 술이 굳이 비쌀 필요는 없지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 술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그런데 초고가로 거래되는 세계 술들도 그 역사가 100년에 불과하다. 준비만 잘 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최근 한국의 고급 술이 조금씩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는 추세다. 오미자 브랜디 ‘고운달’은 30만 원대 가격에도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알고 보면 수억 원짜리 술도 수십 년 전에는 꽤 저렴하게 팔렸다. 긴 세월에 그 가치가 커졌을 뿐이다. 세계 경매시장에 한국 술이 등장하는 것이 그리 먼 미래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