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열린 ‘우와페스티벌’ 인포데스크와 대형 포스터, 그리고 페스티벌이 열린 골목을 대표하는 ‘커피프린스 1호점’ 앞(왼쪽부터). [사진 제공 · 김작가,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커피프린스 골목’이라는 별칭이 붙은 건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지였던 카페가 이 길 초입에 있기 때문인데,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잠시 관광지로 떠올랐던 게 전부다. 최근 연남동, 망원동으로 상권이 확대되면서 그나마 있던 유동인구도 많이 줄었다. ‘스트레인지 프룻’ ‘곱창전골’ 같은 음악 술집 몇 곳이 이 동네가 그래도 홍대 앞임을 환기케 할 뿐이다.
음악 놀이터를 지향하는 축제
‘우와페스티벌’이 펼쳐진 10월 12일 하루 세탁소에서 디제잉을 하는 모습(왼쪽 위아래)과 DIY로 CD 케이스를 장식할 수 있게 제공된 소품과 수공예 도구들. [사진 제공 · 김작가, 사진 제공 · 잔다리 페스티벌]
우와페스티벌의 지향점은 ‘음악 놀이터’다. 이 골목에 있는 카페와 빈 점포는 물론, 음악과 상관없는 업장까지 하루 동안 음악 공간으로 변신했다. 오래된 세탁소에서는 디제잉이 펼쳐지고, 공실인 상가에는 노래방 기계가 설치됐다. 전봇대와 건물 벽에 어지럽게 붙은 청테이프 조각을 거래 수단으로 해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살 수 있는 부스도 마련됐다.
이 페스티벌을 주도한, 십센치(10cm)와 옥상달빛의 소속사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사무실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렸으며, 뮤지션 레인보우99와 함께 즉석에서 음원을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인디 뮤지션들로부터 받은 약 700곡의 음원을 바로 콤팩트디스크(CD)로 구워 주고, 참가자가 케이스를 직접 만드는 자리, 루프톱과 카페에서 열리는 공연이 주된 내용이었다. 한국 인디음악의 중심인 홍대 앞에서는 어떤 이벤트가 열려도 더는 신선하지 않지만,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공간이 참여형 음악의 중심이 되는 순간은 분명히 신선했다.
이 페스티벌을 모르고 주말 홍대 앞을 찾은 사람도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세탁소 앞에서 디제이가 트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커피를 마시러 들른 카페에서 공연을 봤다. 평범한 주말에 뚝 떨어진 색다른 이벤트였다. 무료한 일상을 순식간에 바꿔놓은 동네 축제를 구경하고 있노라니, 예전에 찾았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프랑스인 누구나 뮤지션이 되는 날
1982년부터 매년 6월 말 프랑스 전역에서 열리는 ‘페트 델 라 뮤지크’의 다양한 공연 현장들. [사진 제공 · 김작가, 뉴시스]
이런 파리가 미쳐 돌아가는 날이 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메트로폴리스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있다. ‘페트 델 라 뮤지크’가 열리는 매년 6월 말 어느 날이다. 1982년 시작된 이 페스티벌의 기원은 자못 낭만적이다. 당시 프랑스 문화장관이던 자크 랭은 프랑스인의 문화 실태조사에서 약 500만 명의 프랑스인이 악기를 다룰 수 있다는 통계에 주목했다. 그래서 누구나 길거리에서 공연할 수 있는 날을 기획했다. 그해 하지인 6월 21일, 첫 번째 페트 델 라 뮤지크가 탄생했다.
이날은 프랑스 전역에서 공연이 열린다. 평소 프랑스인의 아침을 책임지는 빵집 주인, 퇴근 후 저녁마다 헤드폰을 끼고 혼자 디제잉 연습을 하는 회사원이 이때는 동네마다 설치된 무대에서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펼친다. 대다수 소도시는 광장에 설치된 임시무대에서 지역민들을 앞에 놓고 조촐한 잔치를 갖지만, 파리 같은 대도시는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샹젤리제, 생제르맹 등 번화가는 물론이고 파리 구석구석에 무대가 설치된다. 곳곳에 들어찬 무대에서 하루 종일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서로 다른 장르로 공연을 펼친다. 잘하는 팀도 있고 못하는 팀도 있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딜 가나 음악이 들리고 함성이 들린다. 평소라면 느릿하게 길을 걸을 현지인과 관광객이 자기가 원하는 장르의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줄지어 바삐 움직인다.
일상의 파리 안에 잠들어 있는 저력이 뿜어져 나오나 싶지만, 더 뜨거운 순간도 기다리고 있다. 무대 밖에서 시간들 말이다. 공연이 열리는 무대와 무대 사이를 전통의상을 입은 채 흥겹게 행진하는 아프리카, 이슬람권 주민을 보면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흥의 다양한 결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라면 시끄럽다고 느껴졌을 게 분명한, 일종의 풍물놀이가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그뿐 아니다. 주택가 골목 스튜디오형 주택에 사는 청년들이 창밖을 향해 스피커를 설치하고 방에서 디제잉을 펼친다. 담배를 피우려고 골목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그 음악에 맞춰 춤판을 벌인다. 정식으로 무대를 얻지 못한 뮤지션들은 카페와 술집, 심지어 건물 옥상에서 공연한다. 지금은 불타버린 노트르담대성당 주변의 한 건물 위에서 혼자 레게를 연주하던 어떤 자메이카 청년을 밑에서 올려다본 기억이 생생하다. 대성당의 장관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밥 말리의 음악이 그날만큼은 축제를 자양분 삼아 더할 나위 없이 잘 녹아들었다.
한국의 ‘페트 델 라 뮤지크’를 꿈꾸며
그동안 일이라는 핑계로 세계 여러 페스티벌을 다녔다. 내한을 꿈꾸기 힘든 대형 뮤지션의 공연도 많이 봤다. 유명 뮤지션은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페트 델 라 뮤지크의 하루가 아직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의 페스티벌 또는 축제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거기서 봤기 때문이다. 1년에 하루 정도 시민이 공연자가 될 수 있는 축제, 일상의 공간이 특별한 장소로 바뀔 수 있는 축제, 무엇보다 조금만 시끄러워도 민원을 넣는 사람 모두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음악을 즐기고 여름의 시작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축제 말이다.서울을 비롯한 다른 한국 대도시에서는 지금까지도 볼 수 없는 그런 축제를 파리 페트 델 라 뮤지크에서 경험했다. 그런 축제를 내가 사는 동네에서 만나보고 싶었다. 그 마음은, 바람은 다시 찾아온 서울의 삶에 묻혀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홀연히 찾아온 우와페스티벌에서 그 마음과 바람을 재회했다. 우와페스티벌이 좋은 모델이 돼 홍대 앞 귀퉁이에서 시작해 서울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나아가 전국적인 축제의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어느 이름 모를 디제이가 세탁소에서 트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