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고 있는 파울루 벤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동아DB]
벤투 감독은 기자회견 도중 “다른 시기”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도 그럴 것이 대표팀은 9월부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 돌입한다. 2차 예선을 시작으로 최종 예선까지 거치며 또다시 세계무대로 나아갈 참이다. 스웨덴, 멕시코에 폭삭 무너진 뒤 독일을 잡고 기뻐하던 러시아월드컵이 막을 내린 지 1년여. 이제는 다음 월드컵을 향한 장도에 오른다.
중국에서 금의환향하는 김신욱
중국 슈퍼리그 상하이 선화에서 맹활약 중인 김신욱. [상하이 선화 홈페이지 캡처]
벤투 감독은 이를 앞두고 새로운 공격수를 지명했다. 이번 명단 발표에서 가장 큰 이슈였다. 벤투호 출범 이래 처음 보는 이름은 ‘김신욱’. 러시아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종적을 감췄던 그다. 전북현대모터스에서 K리그를 호령했으나 예비 명단에 오르는 수준밖에 안 됐다. 김신욱은 이번 여름, 중대 결단을 내렸다. 중국 슈퍼리그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고, 이후 기량 대폭발을 거쳐 단숨에 주인공이 됐다. 중국 리그에 진출한 뒤 6경기에서 득점에 실패한 건 딱 한 경기뿐. 그 외에는 8골 2도움이라는 실적을 자랑했다. 현지에서는 난리가 났다. 세계적인 장신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이름을 따 ‘아시아의 즐라탄’이라는 찬사를 보낼 정도다.
기자회견에서 첫 질문의 소재도 김신욱이었다. 벤투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9월이 이 선수를 발탁할 적기”라고 밝혔다. 기존과는 다른 부대에 새 술을 담는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제는 대표팀이 다른 시기에 본격 돌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그는 “김신욱이 대표팀 스타일에 맞춰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 점검할 계획이다. 대표팀 차원에서도 이를 잘 살릴 수 있는 조합을 찾아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신욱의 발탁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대표팀이 앞으로 겪을 일정은 기존과는 판이하다. 우루과이, 콜롬비아 등 남미 톱클래스 팀이나 아시아권 강팀과 겨루던 것과는 온도 차가 크다. 이번 2차 예선 상대는 북한, 레바논, 투르크메니스탄, 스리랑카다. 객관적 전력상 몇 수는 떨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을 요리하기에 김신욱만 한 카드가 없다는 것이 지난 월드컵 예선 등으로 이미 증명됐다.
큰 키 활용 여부가 用人술 좌우
목표는 조 1위다. 쉽지는 않겠지만 전승 욕심도 있다. 뒤집어보면 상대는 바짝 웅크릴 개연성이 농후하다. 한국전에서 최대한 버텨 실수를 줄이려 할 것이고, 조 2위로 다음 라운드 진출을 노릴 테다. 이 덫에 심각하게 걸려든 적도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현 2차 예선에 해당) 때다. 레바논 원정 1-2 패배, 이른바 ‘레바논 쇼크’에 조광래 당시 감독이 경질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만큼 확실한 승리가 필요하다. 무승부마저도 타격이 크기에 골을 넣을 수 있는 모든 공격 옵션을 확보해둬야 한다.벤투 감독은 ‘지배하는 축구’를 그대로 갖고 갈 것임을 확실히 했다. 2차 예선의 경우 후방에서 진행하는 빌드업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전망이다. 상대가 먼저 중앙선 아래로 내려설 것이기에 꼭 공을 잘 돌리지 않더라도 자의 반, 타의 반 지배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상대 페널티박스 내 진입이다. 득점 확률을 높이려면 통상 이 지점까지는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8~9명씩 그 주위를 사수할 게 뻔하기에 때로는 눈에 보이는 단조로운 패턴에도 기대를 걸어야 한다. 대표 사례가 피지컬을 앞세운 제공권 싸움. 키 196cm인 김신욱의 머리가 제격이다. 축구계에서 흔히 쓰는 말로 ‘전방으로 때려놓고 그 지점에서 다시 싸운다’는 식이다.
단, 우리가 김신욱을 겪지 않았던 건 아니다. 문제는 자칫 지나치게 단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신욱만 나오면 공중 볼을 고집하면서 되레 조급해졌다. 이 선수를 잘 써먹던 소속팀과 달리 대표팀 내 활용도는 그리 높지 못했다. 또한 김신욱이 예선에만 국한된 아시아용일지, 아니면 본선에서도 위엄을 자랑할 세계용일지도 연속성 차원에서 지켜봐야 한다.
신태용 전 감독도 다양성에 착안해 김신욱을 러시아월드컵에 데려갔다. 이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조별리그 1차전 스웨덴과 경기에 깜짝 선발로 내보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190cm대 신장이 즐비한 상대 수비수들에 맞서 큰 메리트가 없었고, 기동력도 떨어져 역습이나 압박 모두 안 됐다. 선수 본인도 엄청나게 아쉬워했던 경기. 독일전 승리가 아니었다면 김신욱 카드는 월드컵을 망친 악수로 거듭 회자될 뻔했다. 결론은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벤투 감독이 말했듯 서로 맞춰갈 최선의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오히려 독이 된다.
김신욱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점검해볼 만하다. 일단은 도전자 입장이다. 벤투호는 지난 1년간 틀을 어느 정도 갖췄다. 소집 기간은 물론, 실전을 치른 횟수도 꽤 된다. 최근에는 4-4-2 전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벤투 감독 역시 “먼 미래는 아직 말하기 어려우나 이번 9월은 4-4-2의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시사했다. 그간 손흥민을 측면이 아닌 최전방에 자주 뒀던 터라 ‘손흥민 파트너’ 자리가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걸출한 경쟁자들 때문에 아직은 옵션 중 하나
이번 여름 소속팀 오스트리아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복귀한 황희찬(왼쪽)과 프랑스 FC 지롱댕 드 보르도에서 선전하고 있는 황의조. [뉴시스]
황희찬의 기세도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해 여름 함부르크 SV 임대생으로 독일 2부 리그를 경험한 황희찬은 이번 여름 원 소속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복귀했다. 휴식기에 심신을 달래고 프리시즌을 착실히 소화한 효과로 바로 나타났다. 최근 5경기 성적이 3골 5도움이다. 벤투 감독은 주로 황희찬을 측면에 배치했는데, 섬세한 플레이에 대한 요령만 좀 더 갖춘다면 최전방에서도 쏠쏠할 자원이다. 무엇보다 저돌적인 돌파는 경쟁자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그만의 무기다.
김신욱의 가세로 기존 판도에도 긴장감이 돌게 됐다. 황의조, 황희찬 외에 부산 아이파크의 이정협도 국가대표팀 공격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로 꾸려갈 다양한 조합 가운데 최고를 찾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공격수를 평가하는 데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골이라는 결과물을 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특히 내용보다 결과에 치우칠 2차 예선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