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상대 약점 노려

미·중 무역전쟁의 최종병기 환율 vs 희토류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9-06-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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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토류(왼쪽). 중국에서 희토류가 가장 많이 매장된 바오터우 광산에서 희토류를 캐내는 모습. [VCG, 위키피디아]

    희토류(왼쪽). 중국에서 희토류가 가장 많이 매장된 바오터우 광산에서 희토류를 캐내는 모습. [VCG, 위키피디아]

    희토류(稀土類·rare earth elements)는 말 그대로 희귀한 흙이란 뜻으로, 21세기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원자번호 57번부터 71번까지 란탄 계열 15개 원소와 21번 스칸듐, 39번 이트륨을 합친 17개 원소를 통틀어 일컫는 희토류는 열과 전기가 잘 통해 전기, 전자, 광학 등 4차 산업 분야에서 사용된다. 특히 스마트폰, 반도체, 전기자동차, 광학렌즈, 특수 자석, 석유화학 촉매제 등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또 스텔스 전투기, 미사일, 레이더, 야간투시경, 레이저 등 각종 군사용 장비와 무기를 제조하는 데도 사용된다. 이 때문에 희토류는 첨단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전략자원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첨단산업의 비타민

    그런데 희토류는 채굴이 어렵고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탓에 생산하는 국가가 많지 않다. 세계 희토류 생산량은 지난해 기준 17만t이었으며 이 가운데 중국이 71%인 12만t을 공급했다. 호주(2만t)와 미국(1.5t)도 희토류를 생산하지만 중국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미국은 연간 기준 1만1000t 규모의 희토류를 수입하는데 중국에서 80%를 들여오고 있다. 또 희토류의 분리, 정련, 합금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발생해 대다수 국가가 중국에 위탁 가공을 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희토류 비축량, 생산규모, 수출량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은 1992년 1월 희토류 생산지인 장시성을 시찰하면서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덩의 발언은 중동 산유국이 석유를 수단으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듯, 중국도 언젠가 첨단산업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전략자원을 가졌다는 점을 예측한 것이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 정부가 희토류를 미국에 대한 보복 카드로 꺼내 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5월 20일 미·중 무역협상의 중국 대표인 류허 부총리를 대동하고 장시성 간저우시에 위치한 희토류 가공업체 진리(金力)영구자석과기유한공사를 시찰한 후 중국 정부가 미국에 희토류 수출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정책 계획과 집행을 담당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5월 28일 미국을 겨냥해 희토류를 보복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중국 외교부와 상무부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으며 중국 관영 언론매체 역시 연일 희토류를 보복 카드로 쓸 가능성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미국은 중국의 반격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5월 28일자)에서 역사상 두 차례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표현을 동원해 미국 정부에 강력하게 경고했다. 런민일보는 ‘중국 희토류로 만든 제품을 이용해 중국의 발전을 방해하려 드는 것을 중국 인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미리 말한 적이 없다고 하지 말라’(勿謂言之不預)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표현은 1962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전쟁 직전, 그리고 1979년 중국과 베트남의 전쟁 직전에 사용된 적이 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런민일보가 이 같은 표현을 쓴 의도는 미국에 희토류라는 보복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도 중국 정부가 상황 악화에 대비해 필요할 경우 희토류의 대(對)미 수출을 제한하는 계획을 준비한 상태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의 가장 강력한 카드

    중국의 환율조작을 감시하는 미국 재무부 건물.  미국 달러화(왼쪽)와 중국 위안화. [위키피디아, dreamstime.com]

    중국의 환율조작을 감시하는 미국 재무부 건물. 미국 달러화(왼쪽)와 중국 위안화. [위키피디아, dreamstime.com]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희토류를 보복 카드로 사용할 경우 미국은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까. 중국이 희토류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는 예측부터 미국이 희토류를 많이 비축해놓아 단기적 충격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엄청난 타격을 입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충격은 불가피하며, 중국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국의 금수조치에 대비해 2010년부터 희토류를 비축해왔다. 하지만 비축량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고, 비축을 많이 해놓았더라도 장기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화학기업 블루라인은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 라이너스와 합작기업을 세워 미국에 희토류 정련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엔 희토류 정련공장이 한 곳도 없고, 캘리포니아주 마운틴패스 광산에서 희토류 채굴만 이뤄지고 있다. 미국 국방부도 방산물자 생산법에 따른 ‘희토류 보고서’를 백악관과 의회에 제출하고 미국 내 희토류 생산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에 대응하고자 환율 카드를 꺼내 들 것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발표한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그 내용을 보면 환율조작국 판단 기준에서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200억 달러(약 23조5800억 원)를 그대로 유지했지만, 대미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에서 2%로 낮췄고, 해당 국가의 외환시장 개입 여부를 따지는 기간은 ‘12개월 중 8개월’에서 ‘12개월 중 6개월’로 변경했다. 이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 미국 정부는 환율조작국을 대상으로 금융 제재는 물론 상계관세까지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해 ‘지속적인 위안화 약세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외환시장을 왜곡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그동안 수출경쟁력을 높이려고 환율을 조작해왔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가 언제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경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국 정부는 이처럼 상대국의 약점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면서 무역전쟁이 본격적인 경제전쟁으로 확대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대결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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