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일산신도시 ‘한류월드’에는 호텔, 쇼핑몰, 상업시설, 방송국, 방송지원센터, 아파트 단지 등이 종합적으로 배치돼 있다. 일부는 최근 1년 사이 완공돼 입주를 시작했다. [박해윤 기자]
특히 일산신도시는 면적 대비 공급 물량이 적어 인구밀도가 낮고 녹지 비율이 높은 데다, 교육·상업 등 생활인프라가 체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이런 이유로 분당신도시와 함께 주거 만족도가 높은 신도시 개발 성공 사례로 거론돼왔다.
1기 신도시는 2기 신도시 개발이 발표된 2003년 이후에도 명성을 잃지 않았다. 2기 신도시는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 화성 동탄신도시, 김포 한강신도시, 파주 운정신도시 등 수도권 10곳으로, 대부분 서울을 기준으로 1기 신도시보다 더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서울 접근성이 떨어지고 교통 인프라도 미흡한 탓에 4년 만에 입주가 완료된 1기 신도시에 비해 사업 속도가 더뎠다. 분양과 공사가 아직까지 진행 중인 2기 신도시가 있을 정도다.
그 가운데 판교신도시는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업무지구가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으로의 접근성이 뛰어나고, 자족기능 강화를 위해 조성된 판교테크노밸리에 정보기술(IT) 기업이 대거 둥지를 틀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공급했기 때문. 판교는 분당과 용인 등 인근 지역과 상생 효과를 일으키며 경기동남부의 핵심지로 부상했다.
2006년 경기도청 ‘한류월드’ 사업계획 발표
한류월드 부지는 1구역 테마파크와 상업시설, 2구역 호텔과 복합 상업시설, 3구역 방송지원센터, 호텔로 나뉜다(왼쪽). 일부 상업시설은 임대를 구하는 현수막이 건물 외벽에 붙어 있다. [네이버지도, 박해윤 기자]
자족기능 강화 방안에서 기대를 모았던 ‘한류월드’와 ‘일산테크노밸리’ 사업이 현재까지 더디게 진행되는 것도 문제다. 한류월드는 경기도시공사가 일산 장항동과 대화동 일원에 걸쳐 99만4000여㎡ 규모로 개발하는 한류문화 복합단지를 통칭한다.
한류월드의 중심인 1구역에 30만2000여㎡ 규모로 들어서는 테마파크 개발 사업은 오랫동안 관심을 끌었다. 2006년 한류우드 개발 사업으로 한 차례 지정됐다 무산된 후 2016년에 CJ ENM이 사업자로 선정돼 ‘K-컬처밸리’로 이름을 바꿔 개발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4월 사업계획이 또다시 변경돼 VR·AR(가상·증강현실) 같은 최신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탑승형 놀이기구와 공연장 등으로 구성된 ‘CJ라이브시티’ 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CJ라이브시티 개발은 비교적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이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 변경 심의가 통과됐고, 올해 2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재준 고양시장, 김천수 CJ케이밸리(현 CJ라이브시티) 대표가 상생협약을 맺으며 조속한 개발에 합의했다. 4월에는 CJ라이브시티가 경기도에 사업계획안을 제출해 현재 승인을 기다리는 상태다. 이르면 올 연말 혹은 내년 초 착공에 들어가 2024년 완공이 예상된다.
일산테크노밸리 역시 2016년 6월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및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정됐다.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과 법곳동 일원에 약 80만㎡ 규모로 2023년 완공하는 것이 목표다. 2017년 경기도시공사와 고양도시관리공사가 공동사업시행 협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경기도의회에서 일산테크노밸리 신규투자사업 원안이 가결돼 현재 조사설계 용역과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입주 앞둔 새 아파트 옆, 잡풀 무성한 부지
1 ㈜CJ라이브시티에서 개발할 계획인 테마파크 ‘CJ라이브시티’ 부지에 공사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주 출입구에는 바뀌기 전 명칭인 ‘K-컬처밸리’가 적혀 있다. 2 한류월드 단지를 관통하는 소하천인 한류천 상류는 수변공원으로 조성됐고, 하류는 수질 개선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다. 3 수변공원 일부는 관리가 잘 되지 않아 하천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박해윤 기자]
아파트 단지 서쪽으로 킨텍스 제1·2전시장과 일산테크노밸리 예정 부지가, 동쪽으로는 한류월드 단지가 위치하고 있었다. 이마트타운(킨텍스점)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꺾어 들어가자 공사 가림막이 세워진 CJ라이브시티 부지가 나타났다. 멀찌감치 호텔과 상업시설, 빛마루 방송지원센터, EBS디지털통합사옥, JTBC스튜디오 등이 눈에 들어왔다. 한류월드 개발계획이 본격화된 2016년부터 테마파크 개장 예정 시점에 맞춰 개발에 들어갔다 먼저 자리 잡은 시설들이었다.
CJ라이브시티 부지를 따라 걷다 보니 중간 즈음 가림막이 끊긴 부분이 나타났다. 폭이 짧은 다리 아래로 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바로 한류천이었다. 한류천은 한류월드 부지를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관통해 흐르는 소하천이다. 5~6월 몇 차례 비가 내린 덕에 수위가 어느 정도 올라간 듯했다.
다리 위에서 가림막 안쪽을 들여다보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광활한 들판이 펼쳐졌다. 관리되지 않은 하천과 아무렇게나 자란 잡풀들이 보이긴 해도 전체적으로 경관이 나쁘지 않았다. 테마파크와 공연장, 각종 스튜디오 등이 들어선다면 서울 잠실 롯데월드나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를 타고 동쪽으로 더 가다 보니 수변공원이 나타났다. CJ라이브시티 동북쪽의 호텔, 상업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인 한류월드 3구역 중앙에 자리한 공원이었다. 이는 경기도시공사가 한류월드 조성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270억 원을 들여 만든 시민 휴식 공간이다.
아직 인근 아파트 단지의 입주가 시작되지 않은 터라 산책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참만에야 만난 한 시민은 “인근 아파트에 입주를 앞둔 예비 주민이다. 날이 좋아 아파트 단지도 둘러볼 겸 친구들과 산책을 나왔다. 수변공원 산책로 공사는 잘해놨다. 다만 하천 관리는 아파트 입주가 완료된 후 추가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변공원은 전반적으로 잘 조성됐으나 하천이 흘러야 할 자리에 드문드문 물이 마르고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원래 한류천과 수변공원은 모두 일산신도시의 중앙배수로로 사용돼 그곳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흘려보내는 하천이었다. 더러는 하수가 유입되기도 했다. 또한 경사가 거의 없어 물이 흐르지 않는 통에 녹조 현상도 꾸준히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지속적으로 악취가 났고, 이 때문에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관리 주체인 경기도시공사는 수변공원 조성을 1차적으로 완료했다. 이후 한류천 수질 관리 및 개선책 마련과 관련해 고양시와 조율을 거친 끝에 지난해 1월부터는 고양도시관리공사가 담당하고 있다.
“GTX 뚫리고, 한류월드 들어서면 가치 오를 것”
아파트 단지 사이로 GTX-A노선 ‘킨텍스역’이 뚫릴 예정이다. [박해윤 기자]
고양도시관리공사는 속도를 내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현호 도시개발처 담당자는 “악취 민원이 많은 곳이라 고양시 공원관리과에서 매번 청소하는 등 정비를 통해 상당히 개선됐다. 하지만 관광단지를 조성하려면 지금보다 수질이 더 깨끗해야 한다. 또한 올해부터 인근 아파트 단지 입주가 속속 이뤄지고 있어 시에서도 최대한 빨리 진행하려 한다. 한류천 수질 개선 공사는 2020년 12월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를 타고 수변공원을 크게 돌아 서쪽 한류월드 2구역으로 향하다 보니 일찌감치 들어선 상업시설이 눈에 띄었다. ‘원마운트 테마파크’와 ‘아쿠아플라넷 일산’, 야외 쇼핑몰 등이다. 2008년에 들어선 원마운트는 경기북부의 대표적인 놀이시설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평일 낮에 찾은 탓인지 쇼핑몰은 썰렁했다. 시설물도 11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조금은 낡은 느낌이 들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지리적 맹점 때문인지 1, 2층 상가에 군데군데 공실이 보였다.
쇼핑몰에 위치한 H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직원에게 분위기를 묻자 “옛날에는 그래도 장사가 잘됐는데 지금은 고만고만하다. 최근 몇 년 사이 경기가 나빠져 공실도 늘었다. 초등학교 방학 기간에만 손님이 잠깐 늘기 때문에 가게를 오래 유지하기가 힘들다. 인근 아파트 입주가 연말까지 마무리되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바로 옆으로 49층 높이의 아파트 단지가 접해 있었다. 아파트 단지와 현대자동차 킨텍스 사옥 사이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A노선 킨텍스역이 뚫릴 예정이다. GTX-A노선은 지난 연말 일산 킨텍스에서 착공식이 열렸다.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3개 노선 가운데 진행 속도가 가장 빨라 기대가 높다. 2023~2024년쯤 공사가 완료되면 서울로의 접근성이 개선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역 주변 아파트 가격이 비교적 높게 형성돼 있다.
가장 큰 단지는 2200가구 규모의 ‘킨텍스원시티’다. 킨텍스역과 가장 가까운 1단지의 경우 전용면적 84㎡ 매매가가 7억3000만~9억5000만 원에 형성돼 있다. 분양 당시보다 2억~4억 원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건너편에 위치한 1880가구 규모의 ‘킨텍스꿈에그린’도 킨텍스역과 바로 이어져 있어 비슷한 수준이다. 전용면적 84㎡ 매매가는 7억5000만~8억1000만 원으로 분양가 대비 2억 원가량 프리미엄이 붙었다.
3기 신도시 발표 이후 일산신도시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곳은 큰 영향이 없는 듯했다. H공인중개사사무소 직원은 “전세 매물은 있어도 매매는 많지 않다. 조정대상지역이기 때문에 양도소득세 부담이 높아 집주인들이 선뜻 팔려 하지 않는다. 또한 장기 보유하려는 이도 적잖다. GTX-A노선, 한류월드, 일산테크노밸리 개발이 예정돼 있어 향후 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조8000억 원 투자, 9만 명 고용 창출 예상
CJ ENM이 제작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왼쪽)과 음악방송 ‘엠 카운트다운’에 출연한 예능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참가자들. [사진 제공 · CJ ENM, 동아DB]
한류월드 내 CJ라이브시티 개발 사업을 주관하는 ㈜CJ라이브시티 측은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고자 애쓰고 있다. 안정훈 ㈜CJ라이브시티 커뮤니케이션팀 부장은 “기존 K-컬처밸리 개발계획에서 더 효과적으로 콘셉트를 변경했다. 사업계획안에 대한 승인이 떨어지면 바로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2016년 사업 개발자 선정 이후 매일 금융비용이 나가고 있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CJ ENM은 오락채널 tvN과 영화채널 OCN, 음악채널 Mnet 등 자체 방송국을 통해 지난 10여 년 동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도깨비’ ‘신의 퀴즈 : 리부트’, 예능프로그램 ‘신서유기’ ‘프로듀스101’ 등 각종 킬러 콘텐츠를 생산해왔다. ㈜CJ라이브시티 측은 CJ그룹의 강점인 이러한 문화콘텐츠를 내세워 다양한 즐길 거리를 종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라이브 공연 관람은 물론,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 제작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최신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탑승형 놀이기구도 선보인다. CJ ENM의 대표 콘텐츠를 활용한 먹을거리와 캐릭터 상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예술인 지원 사업도 추진하는데, 우수한 젊은 창작자들이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콘텐츠 산업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영 크리에이터’ 육성 사업이다.
㈜CJ라이브시티는 테마파크 건설에 총 1조8000억 원 이상을 투자한다. ㈜CJ라이브시티 측은 완공 후 연간 2000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방문하고, 10년간 13조 원의 경제효과와 9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안 부장은 “CJ라이브시티는 그동안 CJ그룹이 문화콘텐츠 영역에서 쌓아올린 성과를 집대성하는 현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일산신도시의 이러한 개발계획안에 기대감을 표하면서도 자족도시로의 성장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한류월드는 테마파크라는 점에서 판교테크노밸리의 업무 단지와 비교할 수 없다. 판교의 성공은 분당을 포함해 수도권 경부라인을 따라 200만 배후지역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우리나라는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성장 단계가 아닌 위축 단계에 접어들어 판교 같은 도시개발은 어렵다. 다만 일산신도시의 한류월드가 성공적으로 조성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한류월드 테마파크 개발史
‘CJ라이브시티’가 들어설 예정인 부지의 전경. CJ라이브시티는 CJ ENM의 킬러 콘텐츠를 활용한 신개념 테마파크로 탄생할 예정이다. [사진 제공 · ㈜CJ라이브시티]
그해 5월에는 서울 강동구 테크노마트를 보유한 부동산개발회사 프라임개발을 주간사로 하는 한류우드㈜가 사업자로 선정됐고, 2008년 기공식을 가졌다. 하지만 이후 경기 악화로 4년간 개발 사업에 진척이 나지 않았다. 결국 2012년 프라임개발이 부도가 나면서 개발계획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2013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일본의 대규모 공연장 ‘슈퍼아레나’를 표방한 케이팝(K-pop) 전용 공연장을 한류월드에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이후 개발 사업자를 정하지 못하다 2016년 사업자 공고를 통해 단독 입찰한 CJ ENM이 사업권을 갖게 됐다. 당초 한류월드 1구역에 2000석 규모의 공연장, 테마파크, 상업시설, 호텔로 구성된 ‘K-컬처밸리’ 조성을 목표로 했다.
CJ ENM은 당시 한류월드를 ‘한국의 디즈니랜드, 유니버설스튜디오’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디즈니랜드 혹은 유니버설스튜디오가 들어서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결국 올해 4월 CJ라이브시티 개발계획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